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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장편소설

둔주곡(遁走曲) 80년대

제1부 / 제국에 비끼는 노을, 6화. 불만의 겨울

  • 이문열

둔주곡(遁走曲)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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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1.
일찍 퇴근해 돌아가니 아이 둘과 함께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내가 황급히 일어나 그를 맞아주었다. 어린이 방송이 시작된 지 한참 지난 듯 아이들은 부리부리 박사에 취해 사람이 오고 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늘 웬 일이에요? 일찍 돌아오셨네요.” 

아이들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아내가 가만히 거실로 나오며 물었다. 그도 시끄러운 안방보다는 거실이 나을 것 같아 가까운 소파에 털썩 앉으며 덤덤하게 아내의 말을 받았다. 

“밤에 당직이잖아. 연말연시 특별 당직. 옷 좀 편하게 갈아입고 일찌감치 저녁이나 얻어먹고 가려고.” 

“아, 참 그랬죠. 10·26이다, 12·12다, 안팎으로 뒤숭숭하긴 하지만 그래도 금년은 유별나네. 아무리 올해 마지막 한 주일이라지만 전에 없이 야간 당직이라니.” 

“이전에도 유신 직후 얼마까지는 우리 신문사에도 당직이 있었다더군. 언론이 위축되면서 호외 같은 거 찍는 일도 뜸해지자 당직도 흐지부지 된 것 같다는 거야. 그러다가 10·26 나고 다시 호외를 찍기 시작하면서 신문사에도 비상 걸렸다고 보면 되지 뭐. 그것도 올해 마지막 한 주일 동안이야. 편집국 내근 부서마다 하나씩 나와 서는 당직으로.” 

“어쨌든 알았어요. 월등히 좋아진 전기밥솥 덕분에 밥상은 언제든 차리면 되니까 나가기 10분 전에만 말해주세요.” 

아내가 그렇게 대답해놓고 전에 없이 자신도 맞은편 소파로 가 앉았다. 부부가 정색하고 그렇게 마주 앉는 게 그리 흔치 않은 일이라, 그가 탁자에 놓인 그날치 우편물을 자기 앞으로 쓸어 당기다 말고 아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나한테 무슨 할 말 있어?” 

“아뇨, 그건 아니고.” 

아내가 살풋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가, 금세 마음속에서 무슨 큰 용기라도 낸 사람처럼 물었다. 

“그런데…, 저 아프칸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현대 세계지리에 어두운 것이 무슨 대단한 흠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는 아내를 보고 그는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아프칸이 아니라 아프간이겠지. 아프가니스탄 말이야. 거 왜 파키스탄 옆에.” 

“그런데 거기 사람들 이름이 왜 그래요? 대통령이 아민이고, 또 뭐라고 하드라, 타라키라던가. 거기다가 쿠데타 어쩌고 하니까 저 멀리 아프리카 어디쯤에 있는 줄 알았는데.” 

“헷갈릴 수도 있지 뭐. 워낙 별 볼일 없는 나라니까. 그거 좀 헷갈렸다고 분해할 거 없어. 근데 우리 마님이 왜 갑자기 아프가니스탄에 관심을 가지게 됐지?” 

“관심이 아니라 괜히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요. 아까 뉴스 시간에 ‘아프간의 소녀’라는 예쁜 여자아이 사진이 한 장 떴는데, 그 눈빛이 어찌나 애처롭게 보이던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부다페스트의 소녀’를 다시 본다는 느낌까지 들더군요. 그런데 그 나라 어떤 나라였어요? 그리고 이제 그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글쎄. 그 나라 역사 별로 기억나는 건 없고, 예전에 호라즘이라고 불릴 적에 칭기즈칸을 잘못 건드려 터도 망도 없이 망한 적이 있지.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살되고, 왕은 물론 왕자들까지 수천 수만 리 세상 끝까지 몽고군에게 쫓겨 다니다 결국은 모두 참혹하게 죽었을 걸. 근래에는 영국이 그 나라를 두고 러시아와 일진일퇴하다가, 냉전 체제에 들어가면서 미국과 소련 사이에 끼게 됐지만, 제3세계라는 이슬람 비동맹국가군(群)에 남아 있었는데, 근래 소련군이 침공해 공산주의 위성국가로 넘어갈 판인가봐.” 

그는 참을성 섞인 성의를 내어 생각나는 대로 아내에게 설명해주었다. 그 성의가 통했는지 아내가 뭔가 끼고 듣는 기색 없이 받았다. 

“아, 그래서 ‘부다페스트의 소녀’가 생각났구나. 거 왜 헝가리 사태, 소련군 탱크가 부다페스트까지 막 밀고 들어가고.” 

“아직 그런 소문은 없지만, 그 비슷한 꼬락서니가 날 것 같아 서방 언론이 그리 호들갑을 떠는 거야. 그건 그렇고, 꼭 저물기를 기다릴 것 없이 되는 대로 밥 한술 줘. 이만 공장에 나가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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