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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모욕적 협상 응했다 뒷돈 요구한 적도 없다”

남북 정상회담 비밀접촉 주역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북한은 모욕적 협상 응했다 뒷돈 요구한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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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상회담 등 6개 項 협의완료… 실무만 남은 상황서 깨져
  • ● MB, 평양서 납북자·국군포로 ○명과 함께 돌아왔을 것
  • ● 부처 간 불협화음… “소관 의식도 좋지만…”
  • ● “회담장소 판문점으로 바꾸자 하면 얘기가 되겠어요?”
  • ● 나와 김성환 외교 장관은 생각 같았으나…
“북한은 모욕적 협상 응했다 뒷돈 요구한 적도 없다”
“평양으로 가야 국군포로를 데려오는 거지, 장소를 판문점으로 바꾸자고 하면 그게 되겠어요? 생각해보라고요.”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이명박 정부 남북관계의 극적인 순간과 관련해 아쉬운 게 많은 듯했다. 그는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을 만났다. 남북은 임태희-김양건 협의로 정상회담 문턱까지 갔으나 최종협상은 결국 결렬됐다. 이듬해 3월 천안함 폭침,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나면서 남북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정상회담이 성사됐더라면 한반도 정세는 다른 국면으로 흘렀을 것이다. 임 전 실장이 김 부장을 만난 2009년 10월부터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 3월까지 남북한 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임태희-김양건 협의 전모와 결렬 과정은 지금껏 베일에 싸여 있다. 임 전 실장이 그간 철저하게 함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임 전 실장이 1월 9일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증언을 직접 듣는 것은 남북관계를 취재하는 기자라면 누구나 욕심내는 특종이다. 그가 싱가포르 접촉의 전말과 협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신동아’ 인터뷰가 처음이다. 그는 작심하고 증언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북측과 접촉하던 시기에 실제로 있었던 일과는 다른 얘기가 언론에 사실처럼 보도되면서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게 우려돼 내가 한 일의 팩트(fact·사실)를 공개하기로 했다. 입 다물고 있으면 남북관계가 더 악화될 것 같았다.”



“얘기 다 끝난 상태에서 깨졌다”

임 전 실장은 ‘북한이 정상회담 뒷돈 요구를 거절당하자 천안함 폭침을 저질렀다’는 최근 언론 보도와 관련해 “북한이 정상회담 대가를 요구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김양건 부장을 설득해 비핵화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다루기로 했으며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고향 방문과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6·25전쟁 전사자 유해 공동 발굴 등을 협의해 서면으로 정리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큰 그림에 최종 합의한 후 남북이 실무 논의를 거쳐 북한이 인도적 조치를 실제로 이행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쌀, 비료를 지원하는 프라이카우프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임 전 실장은 특히 이 대통령이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한 뒤 국군포로, 납북자와 함께 귀환하는 이벤트가 무산된 것을 아쉬워했다. “싱가포르 협의 결과가 쌀, 비료가 급한 북한으로서는 얼마나 모욕적인 협상, 자존심 상하는 협상이었겠나”라고도 했다.

그는 협상 결렬과 관련해 “얘기가 다 끝나고 실무적 사안이 조금 남은 상황에서 깨졌다”면서 “협상이 깨지는 과정의 팩트를 정확히 해두는 것은 앞으로 남북이 신뢰를 구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1월 9일 인터뷰에서는 ‘싱가포르 합의’ ‘장관급 회담에서 합의한 내용’ 등의 표현을 썼으나 1월 14일 ‘합의’라는 표현을 ‘협의’로 바꿔달라고 했다. 합의문이라는 표현도 ‘서면으로 정리한 문서’로 바꿔달라고 했다.

임 전 실장이 ‘신동아’에 싱가포르 협의 전모를 밝히기로 한 것은 일부 언론매체가 정부 고위 관계자 A씨의 발언을 대서특필하면서다. A씨는 1월 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상회담은 조건이 맞지 않았다. 쌀 갖고 와라, 기름 갖고 와라 하면서 북한이 구체적 요구조건을 들고 왔는데, 우리는 그런 조건에서는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은 원하는 조건대로 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북한식으로 저항한 것이다. 북한이 어느 언론 보도처럼 5억~6억 달러의 현금을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돈으로 환산하면 그 정도가 될 수도 있겠다.”

‘비선(秘線) 접촉’ 아닌 ‘장관급 회담’

이튿날 언론 지면에 A씨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가 실렸다. ‘北, 정상회담 뒷돈 요구 거절당하자 천안함 폭침’ ‘北, 정상회담 대가 요구…거절하자 천안함 도발’ ‘北, 쌀·비료 5억 달러 요구했다’등의 제목이 붙었다.

A씨 발언대로라면 정상회담 개최 대가로 쌀, 비료를 내놓으라는 북측의 요구를 남측이 들어주지 않으면서 2010년 1월 북한의 ‘보복 성전’ 선언→3월 천안함 폭침→11월 연평도 포격이 발생한 것이다.

임 전 실장은 A씨의 발언에 대해 “적어도 내가 북측과 접촉하던 시기의 사실과는 다르다”고 반박했다.

▼ A씨는 “북한이 우리를 ATM처럼 생각했다”라고도 했습니다.

“언제 어떤 경로로 그런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제가 상대한 사람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A씨는 관료 출신의 정부 고위 인사다.

“쉽게 말해 제가 당시 일을 가장 잘 압니다. 그냥 간 것도 아니도 장관 신분으로 싱가포르에 다녀온 겁니다(임 전 실장은 당시 노동부 장관이었다).”

언론은 이제껏 ‘임태희 비선(秘線)’이라고 보도하곤 했으나 임 전 실장은 ‘장관급 회담’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대한민국 장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보낸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공식적으로 정상회담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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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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