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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강덕지 과장의 범죄심리학 노트

사람들 속의 섬, 경계성 인격장애 외면하면 ‘걸어다니는 살인무기’

  • 강덕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범죄심리과장

사람들 속의 섬, 경계성 인격장애 외면하면 ‘걸어다니는 살인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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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범죄자들은 누구인가. 왜 범죄를 저지르는가. 그들은 악인(惡人)인가. 우리 사회는 범죄자를 정면에서 바라본 적이 없다. 어둠의 세계에 그들을 방치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가둘 수 있어도 죄는 가둘 수 없다. 죄의 ‘싹’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어디선가 또 다른 범죄가 일어난다. 국과수 강덕지 과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범죄 피의자를 만나 심층 면접했다. 그 ‘어둠의 자식들’이 털어놓은 진실과 우리 모두의 자화상.
사람들 속의 섬, 경계성 인격장애 외면하면 ‘걸어다니는 살인무기’

희대의 살인자 유영철도 여성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까.

“캄캄한 밤에 대문 앞 쓰레기통 옆에서 누나 손을 잡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어디에 가셨나요.

“교회에 가셨어요.”

-기다리다가 안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냥 굶고 잡니다.”

몇 해 전 서울에서 세 여성을 강간한 뒤 목졸라 살해한 H씨. 교도소 면회실에 마주 앉은 그는 훤칠한 키에 호남형인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여자들한테 인기를 끌었음직했다. 직업은 레스토랑 웨이터. 청소부였던 아버지는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2층집을 지었으며 남매를 키웠다. 이런 것만 보자면 그는 평범하게 자랐을 법했다.

문제는 어머니였다. 교회 활동에 몰두한 나머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남매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지치면 밥도 굶고 잠들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H의 마음속에 공허감이 쌓여갔다. 우울증은 약물로 어느 정도 치료가 된다지만 공허감은 약물로도 치유할 수 없다. 신체는 건강했지만 마음은 유약했던 H는 어린 시절 반복된 공허감으로 마음의 상처가 컸다. 어머니가 없는 자리에 대신 들어간 것은 여자에 대한 증오심이었고 그 뿌리는 깊어 보였다.

여자에 대한 분노

그는 중학교 때부터 이상한 행동을 자주 했다고 한다. 여자친구는 잘 사귀었지만 매번 끝이 좋지 않았다. 늘 그들의 소지품을 빼앗거나 훔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은 물건들이 그가 살던 옥탑방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나중엔 이상하게 여긴 부모가 정신과 치료를 권했고, 스스로도 답답했던지 순순히 부모의 뜻을 따랐다. 진단 결과 병명은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Disorder). 이 같은 성격장애의 특징은 대인관계가 불안정하고 분노감을 자주 표출하고 행동이나 기분이 수시로 바뀌는 것이다.

여성을 괴롭히는 데서 묘한 희열감을 맛본 그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그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집에 침입해 그곳에 살던 여자를 강간한 뒤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 뒤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나선 그는 두 명의 여성을 똑같은 방식으로 죽였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까지 질렀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아주 어릴 때 어머니가 죽으면 아이들은 아예 단념하고 산다. 하지만 함께 살던 어머니가 사라진 경우엔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청주에서 발생한 엽기적인 살인사건(여자의 가슴을 도려냈다)의 장본인 역시 그랬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계모와 살게 됐으나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혹독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의 마음에 여자에 대한 분노가 쌓였고 결국 여성을 상대로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거리 활보하는 ‘예비 살인자’들

과거의 우리 사회를 떠올려보자. 담은 있어도 그리 높지 않았다. 까치발로 서면 앞집 마당이 보였다. 바람막이도 되고 낯선 사람도 막는 정도의 높이다. 담이 있어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과 방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 가족끼리 서로 마주치는 일이 잦다. 아버지가 아들의 얼굴을 자주 보면 할 말도 많아진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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