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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근 기자의 세상 속으로 풍덩~ ⑥

완장 찬 좌익, 분노한 우익 서로를 죽이다

여섯 번째 르포 : 민통선 이북 분단의 섬 교동을 가다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완장 찬 좌익, 분노한 우익 서로를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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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눈을 뜨고 죽었다고 할머니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1·4후퇴 때 월남했다. 대상포진을 앓다가 지난해 3월28일 죽었다.

눈 뜨고 죽은 할아버지

완장 찬 좌익, 분노한 우익 서로를 죽이다
할머니가 밥을 먹으라고 권한다. 먹었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할머니는 홀로 산다. 자녀 넷이 출가했다. 아들은 현대자동차에서 밥을 먹고, 외손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의사로 일한다고 할머니가 자랑한다.

청국장 냄새가 소박하다. 밥은 식고, 찬은 단출하다. 열무김치 멸치볶음 나물무침. 앉은뱅이책상엔 할아버지 사진을 넣은 액자가 놓여 있다. 할머니가 액자 속 사진을 가리킨다.

“이 할아버지가 평생 북녘만 바라보다 눈 뜨고 죽은 그 할아버지야. 국유지 개간해서 금만 그으면 내 땅 되던 때가 있었는데, 그 쉬운 일도 귀찮대. 남들은 악착같이 사는데 고향 돌아갈 생각만 했으니. 면서기 월급으로 살림 꾸리기가 얼마나 고단하던지. 그래도 6·25전쟁 때 유엔경찰로 일할 땐 멋쟁이였다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마을서 금슬 좋기로 소문났다. 할머니가 안방으로 들어가 가족사진을 내온다. 의사 손자는 배우 뺨치게 잘생겼다. 할아버지 얼굴은 사진에 없다. 액자 속 시(詩) 한 수가 할아버지를 추억한다.

격강천리라더니 / 바라보고도 못가는 고향일세

한강 임진강 예성강은 만나 바다로 흘러드는데

인간이 최고라더니 날짐승만도 못하구나 / 새들은 날아서 고향을 오고가련만

내 눈에는 인간을 조롱하듯 보이누나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위해 지은 헌시(獻詩)의 앞부분이다. 틈나는 대로 시를 짓는다면서 할머니가 웃는다. 할머니가 내준 매실차가 달다.

북한강, 남한강 물은 양수리에서 만나 한강(漢江)이라는 이름을 얻은 뒤 서진한다. 한강은 경기도 파주에서 임진강(臨津江)을 끌어안는다. 한강, 임진강이 몸을 섞은 조강(祖江)은 강화만에서 나뉘어 섬을 휘돌아나간다. 조강은 강이면서 바다, 바다면서 강이다. 짠물, 뭍물이 섞이고, 다투는 경계의 강, 바다다.

조강은 6·25전쟁을 거치면서 이름을 잃었다. 정전협정에 조강을 ‘한강하구 중립지역’으로 표기하면서다. 사람들은 제가끔 한강하구, 한강입구, 강, 바다라고 칭한다. 할머니는 강이라고 불렀다. 할아버지 고향은 강 건너다. 격강천리(隔江千里)라는 한자말이 익숙지 않아 할머니에게 뜻을 물었다.

격강천리는 강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 교류하지 않아 천리나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란 뜻이란다. 할머니가 사는 교동도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속한 바다의 섬이면서 조강의 하중도(河中島). 교동도 북쪽의 강엔 어선 한 척 뜨지 못한다. 황복, 숭어는 뭍물로 거슬러 오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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