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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파문, 그들은 알고 있었다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황우석 파문, 그들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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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파문, 그들은 알고 있었다

과학을 성찰이 아닌 열광으로 맞이할 때 겪게 되는 파국을 경고한 책.

얼마 전 방영된 미국의 TV 드라마 ‘대지진 10.5’는, 미국 서부 해안 지역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육지의 일부가 바닷속에 잠기고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대재앙의 상황을 현실감 있게 묘사했다. 10.5는 지진의 규모를 가리키는 것으로, 지난해 8만여 명의 사망자를 낸 파키스탄 대지진이 리히터 규모 7.6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10.5라는 설정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지진은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돼 북부 캘리포니아로 확산된다. 지진학자 사만사는 머지않아 샌프란시스코에 더 큰 지진이 발생할 거라고 경고하지만, 연방재난관리청장 로이는 시민이 불필요한 혼란에 빠진다며 이를 일축해버린다.

재난 드라마의 전형적인 전개방식이 그러하듯, 사만사의 경고대로 샌프란시스코의 상징 금문교가 지진에 맥없이 무너지고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다음에야 연방재난관리청장은 사만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사만사는 미국 서부 해안 지역 전체가 바닷속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지하에서 핵폭탄을 터뜨려 단층을 녹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다음 이야기는 예상하는 대로다. 초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에서 재난관리청장의 살신성인으로 핵폭탄이 제시간에 폭발해 단층을 녹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현실감은 지진의 위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6개의 핵폭탄은 지진의 강도를 약화시킬 수는 있어도 지진 자체를 막아주는 ‘신의 손’은 아니었다. 결국 10.5의 대지진은 미국 서부 해안의 지도를 바꿔놓는다.

재난 드라마는 항상 도입부에서 수많은 위기의 징후를 보여준다. 누가 봐도 빨리 짐 싸들고 도망쳐야 하는 상황인데 사람들은 태연하게 일상을 반복한다. 그중 한두 선각자가 경고해도, ‘미친 놈’ 취급을 할 뿐이고, 설령 그들의 말에 귀기울였다고 해도 “설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다. 그래야 영화가 된다지만 이것이 현실이라면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하긴 2004년 지진해일이 동남아를 덮칠 때도 많은 사람이 해안에서 산만한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도 도망갈 생각을 하기는커녕 “어, 저 파도 좀 봐” 하며 구경하고 있다가 휩쓸려 가버렸다.

인간의 위기감지 능력은 이처럼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지난해 연말부터 지금까지 전 국민을 공황 상태에 빠뜨린 ‘황우석 파문’을 보더라도 우리는 수많은 징후를 지나쳐버렸다. 줄기세포 진위 논쟁이 불거졌을 때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이충웅 지음, 이제이북스 펴냄)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맞아, 그 책에서 다 얘기했어’ 하며 뒤늦게 서가에서 먼지가 수북이 쌓인 그 책을 뽑아들었다. 과학사회학을 전공한 저자는 2005년 여름 펴낸 이 책에서 그해 겨울에 우리가 맞을 재앙을 예고했다. 저자가 쓴 ‘맺는 글’의 한 대목을 보자.

과학이 아닌 영웅담

“황우석 신드롬은 과학이 ‘실험실 밖’과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말해주는 좋은 예다. 그 신드롬은, ‘과학’이 아닌 ‘영웅담’과 관계한다. ‘복제 배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승리한 한국인’에 대한 열광이다. 월드컵에서의 응원과 많이도 닮아 있다.

…열광은 열망에 기인한다. 온갖 열망들이 거기에 뒤섞여 있다. 열광은 겉으로는 ‘확신’에 기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열망은 말 그대로 ‘바람’이다. 그 열광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부담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꿈꾸는 상태’ 자체가 만족스러울 수 있는 까닭이다. 그것은 현실을 견디기 위한 진통제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꿈을 꾸고 있지는 않다. 진통제가 과하면 독이 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기술적 문제를 좀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치료용’이라는 표현에 주의해야 한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효과적인 치료가 얼마나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아직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성체줄기세포나 다른 ‘대안’과의 관계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엄청난 치료효과를 전제로 한 그 반대편의 ‘윤리적 문제’라는 식의 대결구도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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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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