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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놀랄 만큼 우리와 닮은 중국인 대해부

  • 김영수 사학자 all-china@hanmail.net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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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에 살고 체면에 죽고

암호니 비밀이니 한 것은 다소 어감이 지나치지만 중국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만큼은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인과 한국인은 아주 많이 닮아 있다. 한국인이 생활에서 가장 중시하는 ‘체면’을 중국 사람들은 어떻게 보는지 살펴보자.

진나라 말기 유방과 더불어 천하의 패권을 다투던 항우는 절대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방에 패하여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마지막 해하 전투에서 패한 항우는 고향으로 돌아가 재기하라는 뱃사공 노인의 권유에 자신이 무슨 면목으로 고향 사람들을 보겠느냐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여기서 ‘면목’은 바로 ‘체면’과 동의어다. 목숨보다 체면을 더 중요시한 것이다. 항우의 체면은 거의 못 말리는 경지였던 걸로 보인다. 그는 천하 평정을 코앞에 두고 느닷없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떼를 썼다. 참모들이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러면서 그는 “부귀해져서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좋은 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며 면박을 주었다. 이 역시 체면을 중시한 결과다.

이 대목에 이르면 고시에 합격하거나 장관이 되어도, 심지어 서울에 있는 대학에만 합격해도 동네방네 현수막 따위를 내거는 우리네 풍경이 오버랩된다. 그런데 이런 항우를 두고 누군가가 ‘원숭이가 모자를 쓰고 인간 흉내를 낸다’며 비웃었다는 사실에 이르면 가슴이 뜨끔해진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이런 특성이 있었다.

‘중국의 체면주의 때문에 항상 이 두 가지(예술과 현실, 허구와 사실, 겉치레와 실속) 경계선을 잊고 자기기만에서 타인기만이 되고,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넘어가는 점이 유감스럽다. 그 결과 반드시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자기 자신을 해쳤다.’



근현대사를 겪으면서 중국과 한국은 많은 점에서 달라졌다. 그러나 지금도 두 나라 사람들의 생활 양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찌 그렇게 닮았는지 감탄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이중톈 교수의 이 책이 흥미를 끄는 점도 이 때문이다.

가부장적 의식, 집단(단체, 국가) 의식이라는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중국인의 생활이 급변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전히 가정과 국가는 이 탯줄을 끊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식들의 결혼과 교육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간섭하려는 변태적 행위가 다반사로 자행된다. ‘잘못된 사랑’을 내건 채. 이중톈의 중국인 분석에서 우리가 읽어도 가장 아픈 대목은 바로 이런 것이다.

‘다이내믹 한국’ vs ‘파워풀 중국’

‘더욱 걱정되는 것은 자식을 도둑 지키듯 지킨다는 관념이 상당히 보편적이라는 점이다. 많은 부모가 꼭 때리는 것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자녀를 감시하거나 심지어는 직접 나서서 자녀의 행위에 참견하고 간섭하며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 이런 행위는 무력을 행사하거나 일신상 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사회의 주목을 받지 않는다. 때로는 사회적으로 용납되거나 장려되기도 하는데, 그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 사실 자녀의 마음에 가한 상처는 육체에 가한 상처 못지않다. 육체의 상처는 치명적이지 않다면 치유될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어쩌면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수 있다.’

저자는 가정에서 시작된 지나치고 비뚤어진 잘못된 사랑이 가족관계와 교우관계와 사회관계를 망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왜곡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중국 사람의 모습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중국 사람의 모습 한 켠에서 어른거리는 우리의 어두운 모습을 착잡하고 씁쓸한 심정으로 흘겨본다.

먹고 입는 것으로 시작해 수다를 뜻하는 한담으로 끝나는 이 책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그리고 아홉 개의 장이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의식주가 사회와 직장 그리고 관료 사회의 처세 방식이자 수단으로 연결되고 그것은 결국 권력과 정치 및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로 나타난다. 우리 삶의 기본 단위인 가정과 결혼 그리고 연애의 문제도 마찬가지로 그 사회와 국가의 문화를 반영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이 책은 ‘다이내믹 코리아’와 ‘파워풀 차이나’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문제점들을 심도 있게 확인해가며 의미있는 책읽기를 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한자와 중국어의 묘미도 느낄 수 있으며, 웃음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속담이나 격언을 짚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동아 200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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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사학자 all-chin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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