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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근 기자의 세상 속으로 풍덩~ ⑥

완장 찬 좌익, 분노한 우익 서로를 죽이다

여섯 번째 르포 : 민통선 이북 분단의 섬 교동을 가다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완장 찬 좌익, 분노한 우익 서로를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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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찬 좌익, 분노한 우익 서로를 죽이다
강화에서 교동으로 가는 배가 뜨는 창후리 선착장은 고즈넉하다. 해병대 장갑차가 서 있으나 경계는 삼엄하지 않다. 군복을 입고 조랑말 꼬리모양으로 머리를 묶은 군인이 장갑차 앞에 서 있다. 어깨에 K1소총을 둘러멘 해병들은 친절하고, 느긋하다. 머리 묶은 여군이 앳되다면서 일행이 우스갯소리를 한다.

아침 7시 반 배가 교동 가는 첫 배, 저녁 7시 배가 강화 오는 막배다. 막배는 붐벼서 다 못 타니 서둘러 나오는 게 좋다고 적은 경고문이 붙어 있다. 뱃삯은 1500원. 자동차를 싣느라 1만4000원을 냈다. 시간표는 따로 없다. 15분 거리인데, 물때가 어긋나면 50분 걸린다. 간조 때는 수위가 낮아서 배가 돌아간다.

해병대 2사단 창후검문소는 주차장에서 포구로 나가는 길에 있다. 방문 신청서에 연고자 이름을 적어야 했다. ‘이범옥’이라고 썼다. 해병이 어떻게 아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할머니라고 답했다. 쇠창살 모양의 문을 지나니 표지판이 서 있다. 민통선 지역이므로 민간인 출입을 금함이라고 적혀 있다. 갈매기 한 마리가 표지판 위로 내려앉는다.

바다는, 아니 강은 맑다. 햇볕이 아침부터 짱짱하고, 숲은 진녹색으로 울창하다. 강안에 안개가 짙은데 6월엔 걷힌다고 뒷자리에 앉은 이은창(67) 할머니가 말했다. 1·4후퇴 때 월남한 할머니는 B29가 굉음을 내면서 날던 것 외엔 전쟁 때 일이 기억나는 게 없다고 말했다.

나는, B29라는 단어를 들으면 미군 폭격기가 아니라 농심에서 만든 같은 이름의 과자를 떠올리는 세대다. ‘맛있는 카레의 세계로 Let′s go’라는 카피를 적은 과자봉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군침이 돈다.



내가 아는 6·25는 책으로 읽거나 들은 게 전부다. 책으로 읽은 것도 헛갈린다. 저자 성향에 따라 해방 전후사, 6·25전쟁사를 보는 인식은 하늘과 땅 차이다.

6·25를 모르는 건 나의 아버지 세대도 똑같다.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전쟁 났을 때 다섯 살이었는데, 당신이 기억하는 6·25는 “정치인이던 아버지의 할아버지를 인민군이 끌고 가는 걸 목격했다”는 게 전부다. 추측건대, 어릴 적 어른한테 들은 얘기가 기억으로 둔갑한 것일 게다.

폭격기 B29, 카레맛 비29

이은창 할머니는 좋은 의미로 수다쟁이다. 사고 나면 미안할까봐 가족 아닌 사람을 차에 태우는 걸 꺼리는데, “잘생긴 총각, 장동건 닮았다”는 너스레에 넘어갔다. 올해로 결혼 10년 차인데, 총각 오빠라는 호칭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태워달라고 말할 때는 혼자였는데, 할머니 셋이 차에 오른다. 싫은 내색할 겨를도 주지 않고 말을 건다.

“총각은 고향이….”

“아, 서울. 정말로 장동건 닮았네.”

할머니 셋이 목을 빼고 나를 본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지고, 사람 다루는 법이 느나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교동엔 왜 왔어. 처음이야? 놀러? 여인숙 좋은 곳 많아.”

“황해도 연백서 온 어르신 뵈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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