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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16

옛사람의 樓閣과 園林 찾는 고상한 여로

전남 담양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옛사람의 樓閣과 園林 찾는 고상한 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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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건대, 유홍준이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우리나라 여행 문화의 패턴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책이다. 물론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여유가 많아지다보면 막무가내로 구경거리를 찾아가는 데서 벗어나 특정 관심사와 관련된 여행을 즐기는, 이른바 테마투어로 양상이 바뀌긴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살림 규모의 변화에 앞서 우리네 평균적 국민으로 하여금 문화여행, 역사여행으로 들게 하는 데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좋은 일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고 읽히리라곤 도무지 생각지를 못했다. 대체로 평이하게 서술된 글이라고 해도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일정의 소양이 전제돼 있지 않고는 읽어나가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기야 예전에는 이보다 훨씬 까다로운 니체며 사르트르의 저술이 베스트셀러가 된 나라이니 내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양 수준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엔 ‘거품’ 역시 상당히 많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소쇄원의 번잡

특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 1권에서 인상적인 문체로 소개한 담양 ‘소쇄원’ 이야기며, 강진 ‘다산초당’ 소개는 그동안 한적하기 짝이 없던 이들 문화 유적지를 경주 불국사처럼 번잡하게 만드는 데도 톡톡히 일조했다고 여긴다. 나는 ‘문화 향유의 대중화’란 말을 그렇게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이것이 수준을 골고루 높여서 함께 즐기는 것을 뜻한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마는 고급한 문화일수록 문화 자체는 그런 속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화 향유에는 개개인의 골똘한 투자가 전제돼야 한다. 그 투자가 무시된 대중화는 저급화와 상통할 뿐 별다른 의미가 없다.

제법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나는 제발 사람들이 소쇄원을 찾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소쇄원, 그곳에 뭣이 있다고 그렇게 많이들 찾아가서 내심 크게 실망하고서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양 억지 표정을 짓고 나온단 말인가.

방법은 있다. 입장료를 엄청 높게 책정한다든지 창덕궁 비원처럼 예약제를 해서 일정 인원만 정해진 시간에 관람하도록 하는 것이다. 못된 궁리를 하고 있다고? 그렇다. 그 별난 정원에서 꽃구경 물구경은 못한 채 사람들의 어깨만 부딪치고 밀려다니다가 나와보라. 나보다 훨씬 독한 주장도 할 터이니.

소쇄원은, 한 시간에 열 사람 정도만 하릴없이 거닐 수 있다면, 무수한 예찬론자가 말하듯이 전통미를 다 갖춘 우리나라 최상급의 정원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관광버스에서 쏟아진 유람단, 수학여행단과 뒤섞여 보노라면 담양 읍내에 있는 것보다 훨씬 볼품없는 대밭 하나와 어린애 오줌발처럼 시원찮은 석간수를 흘리는 바윗덩이 몇 개, 그리고 허름한 정자 몇 채가 비탈에 서 있는 풍경밖에 없다. 이 집을 지키는 안주인의 말에 따르면 시집오던 때만 해도 물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기 힘든 날이 많았다는데, 윗마을 사람들이 다투어 농업용수, 생활용수를 개발한 탓에 이렇게 물줄기가 빈약해졌다고 한다. 결혼사진 촬영장으로, 10대들의 미팅 장소로, 회사원들의 야유회장으로까지 활용(?)되면서 수목과 담장이 망가지고 숲 속에 쓰레기까지 쌓이는 소쇄원은 더 이상 소쇄(瀟灑·맑고 시원하다는 뜻)하지 않다.

계절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던

오후, 세상이 가파르게 기울던 오후

제주 양씨가 살아서 공들인 해묵은 뜨락에 선다

시내는 수백 년을 한 자리, 돌 사이로 흘러

낡은 다리의 자리를 뜻 깊게 하는데

사람들은 계단을 몰라 축담 근처를 서성인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무들은

도대체 죽지 않을 양 오늘도 씩씩하게 자라며

새로 추워지는 날씨에 다만 안색을 꾸밀 뿐

바로 곁에서 그들의 죽은 조상은

도대체 썩지 않을 양, 첩첩한 기와 따위를 들고 있다

신음 하나 없이 문명 또는 운명을 이고 있다

들어설 때 보아서 이 뜨락은 산에 안긴 듯했는데

들어오니 산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마당 끝 어디에 겨우 걸쳐 있다

사람은 산을 사랑하나 산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법

그래서 소쇄옹(瀟灑翁)은 세상 쪽으로만 담을 쌓고

등성으로는 삼가하여 담을 쌓지 않았다

뜨락이 내내 산으로 열려 있는 동안

제주 양씨는 후손들이 지어준 작은 산 속에

누워 있었을 텐데, 지금 쉽게 보이지 않는다

- 이희중의 시 ‘소쇄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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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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