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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

왕따 당한 한국외교의 외로운 늑대

외교부 인사난맥상 폭로파문 이장춘 대사

  • 송문홍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왕따 당한 한국외교의 외로운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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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이 이장춘 대사로 하여금 ‘튀는 행동’을 하게 했을까? 한국외교의 장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애국심의 발로였을까? 아니면 그가 그동안 겪은 인사상 불이익으로 인한 불만 때문이었을까? 》
“…그레고리 헨더슨이 쓴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란 책을 보면, 조선왕조 기간중 가장 효율적이었던 세종대왕의 통치기간(이때 황희는 약 23년간 정승직에 있었다)을 빼고는 참으로 가관이다싶을 정도로 보직이동이 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한 예로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장에 해당되는 한성판윤은 조선왕조 518년 동안 1375번이 바뀌었는데, 평균 재직기간이 약 130일이었다.”

‘서울경제신문’ 2월14일자 독자칼럼 난에 재미있는 글이 하나 실렸다. 내친 김에 ‘관료사회 잦은 보직이동 없어야’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글을 조금 더 인용해보자.

조선시대 관료와 현대 관료

“태조는 대사간을 1년에 1.7번 바꿨으며, 그의 아들(태종)은 그 자리를 평균 1년에 3번 바꿨다. 그리고 1400년부터 1406년까지는 대사간이 평균 60일마다 새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계산도 있다. 이러한 교체비율은 그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세조 때는 연간 평균 3.6명, 성종때는 2.5명, 그리고 연산군 때는 4.2명, 중종의 처음 12년 동안에는 6.6명, 그 이후에는 수십년 동안 평균 4.7명을 기록했다. 1571∼1574년의 단기간 동안에는 평균 거의 매달 새로운 대사간이 임명되었다.

대원군은 분명히 대사간의 불만과 권력을 억누르기 위하여 대사간을 1864년 1월3일부터 1873년 12월16일까지의 기간 동안에 183번이나 교체하였는데, 이는 약 10년 동안 평균 20일에 한 사람꼴로 갈아치운 셈이다. 1860년대초 같은 기간에 대사간의 또 다른 주요 관리인 대사헌은 193번 교체되었다. 조선관리들의 경력을 보면 약 30년의 관직기간 중 100회 또는 그 이상 보직을 바꿨다는 기록이 있다. 율곡은 대사간을 수일간씩 두 번 했다.”

투고자가 ‘kangilee@hotmail.com’으로만 돼 있는 이 글은 외교통상부 이장춘(李長春·특1급·59) 본부대사가 2월10일자 ‘문화일보’ 포럼난에 기고한 글을 읽고 ‘서울경제신문’에 낸 글이다. 투고문 말미에서 ‘kangilee’씨는 “국제회의 때마다 대표가 바뀌어 우스갯거리가 되고 있다는 이대사의 말에 슬픔을 느낀다”고 썼다.

이장춘 대사는 외교통상부의 인사난맥상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문화일보’ 기고문으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외교통상부는 다음 날인 11일 이정빈(李廷彬) 장관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었다. 정부 일각에선 이대사에 대한 징계까지 거론됐지만 곧이어 “문제가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하고 징계하지 않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한편 이대사 자신은 ‘문화일보’에 칼럼이 실린 10일 외교통상부에 사표를 내버렸다. 도대체 그가 뭐라고 썼길래 이 난리일까?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10개월 남짓 지나는 사이에 3번째 외무장관이 등장했다. 이런 추세면 현정부에서 7명 정도의 외무장관이 나올것 같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한 사람의 외무장관이 5년 동안 계속 재임하더라도 외교에는 속성(速成)이 있을 수 없는 그 자체의 속성(屬性)상 5년이 결코 길다고는 볼 수 없다. (중략)

우리는 이번에도 우리 식으로 외무장·차관을 한꺼번에 바꾸었다. 재임 6개월밖에 안 된 차관보급 직원도 교체하였다. 신설한 지 9년도 안 된 외교정책실에 11번째의 장이 임명되었다. 그 자리에서 겨우 1년을 넘긴 자는 단 한 명이고, 3명이 6개월 이내에 자리를 떠났다. 그럴 때마다 국제회의 수석대표가 바뀌게 되어 국제외교가의 우스갯거리가 되어 왔다.

엇갈리는 반응들

지난 1년10개월 동안 한 자리에서 1년 반도 못 채우고 국비 외유에 가깝게 지내다가 퇴임한 재외공관장과 1년 미만으로 외무본부의 국장급 간부직에서 물러난 자가 50여명에 이른다. 조직 전체의 규모로 볼 때 굉장한 요동이고 국가적으로 엄청난 낭비다. 관료조직의 기초부서장인 과장들도 예비후보들의 압력에 밀려 한 자리에서 1년 이상 버티지 못한다. (후략)”(문화일보 2월10일자 ‘외교부 인사·조직 이대로 안된다’에서)

조선조 이래 우리의 ‘유구한 전통’은 관료사회의 잦은 인사교체에까지 이렇듯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안면과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그것도 ‘국제적 젠틀맨의 집단’인 외교통상부에서 잔뼈가 굵은 최고참 외교관이 공개리에 이런 식의 지적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은퇴 시기를 얼마 안 남긴 처지라면, 설령 다소간 불만이 있더라도 ‘점잖게’ 옷을 벗고 나오는 게 한국사회의 미덕처럼 돼 왔던 게 사실이다.

무엇이 이장춘 대사로 하여금 ‘튀는 행동’을 하게 했을까? 떠나는 선배로서 뒤에 남는 후배들을 위해서 남기는 충정(衷情)의 발로였을까? 혹은 한국 외교의 장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애국심의 발로였을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가 그동안 겪었을지도 모르는 인사상 불이익으로 인한 불만 때문이었을까?

“이대사의 문제 제기는 대부분 옳은 말이다. 그런데 예전에 ‘잘나가던’ 시절에는 가만히 있다가 왜 하필이면 지금 그걸 밝히는가.”(외교통상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원 관계자 A씨)

“그런 지적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이 30년 이상 몸담았던 조직에 대한 문제 제기를 굳이 언론에 기고하는 방식으로 해야만 했을까?”(외교통상부 중견 간부 B씨)

“이장춘 대사의 이번 기고문은 단지 외교부 조직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한국 외교의 장래를 위해서 매우 적절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전직 원로 외교관 C씨)

그의 이번 행동에 대한 반응은 갖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외교통상부 현직 간부들의 표면적 반응은 ‘당연히’ 비판적인 쪽이 강하다. 외교통상부의 한 내부 인사는 “이대사는 5월이 되면 어차피 대명(代命) 제도로 인해 옷을 벗어야 할 처지였다”며 “이번 언론기고는 그런 맥락에서 그동안의 인사불만에 대한 반격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명제도란 외무공무원법상 공관장에 임명되지 않은 채 1년이 지나면 자동 퇴직하도록 돼 있는 제도다(그러나 대명제도의 규정에 따라서 옷을 벗은 외교관은 2000년 2월 현재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외교통상부 내부에서는 “이대사가 이번에 후배들을 위해서 큰 일을 했다”는 얘기도 조심스레 나온다. 그동안 우리 외교가 청와대나 안기부에 휘둘려온 건 사실이고, 그런 맥락에서 이대사의 이번 기고는 방법은 좀 서툴렀는지 몰라도 정당한 지적을 했다는 것. 다만 현직 공무원으로서 이런 식의 ‘긍정적인’ 평가를 드러내놓고 하지는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외교통상부 바깥의 반응은 압도적으로 이대사 편이다. 대부분 언론들이 이대사가 지적한 내용을 비중있게 다룬 것이 그 예다. 처음 정부 일각에서 이대사 징계 얘기가 나올 정도로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서도 “내부 고발자를 ‘왕따’시켜서 자기 조직의 치부를 가리려는 방어술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외교통상부는 이를테면 ‘전문가 집단’이다. 바깥 사람들로서는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어떤 조직원리로 운영되는지, 웬만하면 알기가 어렵다. 이는 업무의 특수성 탓도 물론 있지만, 구성원들의 조직이기주의 탓도 크다. 외교통상부의 인사 문제에 대해서도 그동안 이런저런 비판들이 제기돼왔지만 대부분 피상적인 비판에 그쳤고, 이대사처럼 구체적으로 사실을 적시해가며 비판한 예는 없었다. 이장춘 대사는 과연 어떤 배경에서 이번 파문을 일으켰을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장춘 대사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알 필요가 있다.

호불호(好不好) 뚜렷한 강성

이대사는 자신이 4·19 핵심 주역 중 한 사람이라는 데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로 그는 정부로부터 건국포장(63년)까지 받았다. 그는 또 대한민국 엘리트들의 상당수가 이런저런 온갖 이유로 군 복무를 면제받거나 짧은 기간만 복무한 데 비해 자신은 공군장교로서 4년 4개월을 복무한 뒤 외무부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은근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상대적으로 뒤늦은 출발 때문에 관료생활에서 손해본 측면이 없지 않지만, 도덕적인 면에서는 한점 꿀릴 게 없다는 것.

이런 이력에다 그의 ‘강한’ 성품은 그를 보수적인 관료사회에서 상대적으로 ‘튀는 존재’로 만들었다. 퇴직한 한 원로 외교관은 이대사에 대해서 “굉장히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러나 입바른 소리를 많이 해서 고위층 중에는 그를 싫어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고 말했다. 일례로 그는 상사의 지시라도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대들었다고 한다.

과거 해외공관에서 함께 근무했던 외교부의 한 중견 간부는 이대사에 대해서 “한 마디로 자기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유형”이라며 “그 분을 영어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eccentric(괴짜)’쯤 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업무와 관련해서는 “본인이 관심을 가진 분야, 예컨대 ASEM이나 ASEAN 같은 분야에선 탁월한 능력을 보였고 외교철학적인 담론을 즐겼지만, 관심이 덜한 부분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놀고 먹는 인간’으로 취급했다”고 한다.

과거 이대사를 접했던 기자들의 평가도 엇비슷하다. 이대사가 외교정책기획실장이던 시절 외무부를 출입했던 한 기자는 “자기 부하든 기자든 일 잘하고 마음에 들면 확실하게 봐주고, 빌빌거리면 사람 취급도 안했다”며 “기본적으로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가 오스트리아 대사였던 시절에 특파원으로서 그를 만났다는 한 중견 언론인은 “공문서에서 3인칭 단수 동사에 붙이는 ∼s, ∼es까지 챙길 정도로 철저한 사람”이었고 “본국에서 오는 훈령도 대사 본인이 직접 챙겨 보고 돼먹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에 쳐넣었다”고 술회했다. 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그가 오스트리아 대사였던 시절 북한 핵문제가 국제사회에서 핫이슈로 부각됐다. 한국은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국이어서 이대사가 IAEA 이사로서 회의에 참석했는데, 그는 북한 핵문제에 관한 한 시종 정공법으로 일관해 북한측을 괴롭혔다. 한번은 연설 도중에 북한 김일성을 ‘미스터 김일성’이라고 지칭해서 북한측 대표가 미쳐 날뛴 적도 있었다.”

종합하면, 이장춘 대사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으로 보인다. 대인관계에서도 호불호가 분명한 만큼 외교통상부 안에서 그에게 호감을 가진 이도 있겠지만, 적 또한 많아 보인다. 이번에 그가 언론 기고를 통해 외교통상부의 인사난맥상을 비판한 것에 대해서 많은 간부들이 내용의 진위 여부는 젖혀두고 일단 부정적인 반응부터 보인 것도 그의 이런 성품이 어느 정도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고별사”

그러나 대국적으로 보면, 보신(保身)과 처세술에 능한 공무원 사회에서 소리내지 않고 지내는 것이 꼭 능사는 아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도 못본 체 지나치는 조직이기주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나라 구석구석을 얼마나 멍들게 하고 있는가? 오히려 조직의 발전은 적당히 대세에 순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의 잘못을 용감하게 고발하는 ‘호각부는 사람(whistle blower)’의 존재로 인해 이뤄진다는 것을 역사상 수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지 않은가?

‘기고문 소동’이 일어난 지 사흘 후인 13일, 시내 모 호텔 커피숍에서 기자와 마주친 이대사는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영어로 얘기하면 그건 ‘valedictory report’ 즉 고별사다. 30여년 봉직했던 외교부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양에도 대사로서 고별사를 써서 유명해진 사람이 있다. 지금 기억에 이름이 핸드릭슨인가 하는 영국 외교관인데, 79년 5월 마가렛 대처 영국수상이 취임하기 직전에 세계적인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에 글을 기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당시 영국경제가 쇠퇴하고 나라가 기울어가는 이유를 적시하면서 대외관계에 대한 몇 가지 건의를 했다. 이걸 은퇴 직전에 써서 영국사회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내가 주영대사관 참사관으로 런던에 주재할 때 있었던 일이다.”

그는 또 그 날 아침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 외교관이 전화를 걸어와 “미국의 러스크 전 국무장관 시절에 조지 볼 국무차관이 존슨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썼는데, 현직 외무차관이 그런 글을 썼는데도 차관직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해주면서 자신을 위로하더라고 말했다.

“굳이 언론에 기고하는 센세이셔널한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부적으로도 공관장회의 같은 자리에서 많이 얘기했다. ‘우리가 모두 천재냐. 이렇게 자주 자리가 바뀌니까 해외에 나가서 상대방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 지도 모르고, 주재국에 친구를 만들 여유도 없고…’ 이렇게 입이 아프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퇴직하면 정치를 한다는 소문도 있던데…”라고 질문하자 그는 “10여년간 태극기를 매단 차를 타고 다니던 대사가 일개 초선의원보다 못하단 말인가”라며 화를 냈다.

“영어 표현에 ‘Professional soldier and professional diplomat are not expandable’이라는 말이 있다. ‘직업 군인과 직업 외교관은 마음대로 팽(烹)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 외교관의 처지가 안타까워서 그 글을 썼고, 이제 공직을 떠나지만 외교관으로서의 자부심은 갖고 간다.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일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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