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되는 프로젝트는 재벌 계열 IT 대기업 싹쓸이
- 하도급 업체 절반 이상이 영세 인력파견업체
- 4~6단계는 인력 하도급…인건비 10~20% 꿀꺽
- 체불, 해고, 착복, 경력 조작…편법·불법 판쳐
- 밤, 휴일 없이 일하다 온갖 질병…산재, 수당 없어
- ‘조폭’ 출신 인력 하도급 업체 등장, 협박 난무
다단계 하도급의 최하단에 위치한 IT 근로자들은 저임금과 임금체불, 불법해고,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 건설 분야의 하도급 관행은 뉴스 거리도 아니다. 대형 건설사가 사업을 수주해 시행사 또는 시공사가 되면 전문건설업 면허를 가진 중소 건설사는 1~2차 도급을 받아 보다 규모가 작은 회사로 다시 일감을 내려보낸다. 보통은 2~3차 하도급에 그치지만 4차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도급 단계를 따라 내려가면서 각 회사가 자기 몫을 떼고 나면 실제로 공사를 하는 도급업체가 받아 쥐는 공사비는 늘 빠듯하다. 중소 건설사가 줄도산을 하고, ‘날림’ ‘부실’ 공사로 종종 대형사고가 터지는 것도 건설업계의 이런 구조적 모순에 기인한다.
이 같은 하도급 구조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은 먹이사슬의 최하단에 위치한 일용직 건설노동자와 임시직 기술자들이다. 실제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건설 기술자와 인부의 대부분은 그들이지만 하도급 구조에서 깎이고 깎인 인건비는 최저생계비를 겨우 넘는 정도다. 그나마 도급 단계가 늘어나면 쥐꼬리 만한 노임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도급 건설사가 부도라도 나면 생계조차 잇기 힘들어진다.
대형 IT업체의 횡포
그런데 ‘망국적’ 하도급 관행은 비단 건설 분야에 한정된 게 아니다. IT 관련 분야에선 건설업계보다 더한 살인적 행태의 하도급이 벌어지고 있다. 4~5단계는 기본이고 프로젝트에 따라 6~8차까지 도급이 이어지는 곳이 부지기수다. 중간 하도급 단계 업체가 파산하거나 프로젝트를 포기하면 원청 업체와 상위 도급 업체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줄도산을 하는 구조다. 그만큼 영세하다.
IT 다단계 하도급의 출발점은 대그룹 계열사인 삼성SDS, LGCNS, SKC·C, 포스코ICT, 롯데정보통신, 한화S·C 등 IT 대기업이다. IT업계에선 이들을 ‘시스템통합(SI·System Integration) 사업자’라고 하는데, 기업에 필요한 정보시스템의 기획에서부터 개발, 구축, 운영까지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시스템의 설계, 최적의 하드웨어 선정에서 발주 및 조달, 사용자의 요구에 맞춘 응용 소프트웨어의 개발, 시스템의 유지 보수 등이 포함된다. 주로 컴퓨터 제조회사, 정보처리 서비스회사,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부가가치 통신망 사업자, 컨설턴트 회사 등이 진출해 있다.
국내 SI 프로젝트 중 단위가 수십억 원이 넘는 대규모 사업은 그룹 계열사인 이들 대형 SI업체가 싹쓸이하고 있다. 발주처가 대부분이 국가기관이나 그룹 계열사이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이들 외에도 중소 SI업체가 300여 곳 있지만 국가기관 발주 프로젝트의 경우 과거 사업 경험, 수주금액 등 입찰 조건을 만족시키기 어렵고, 대기업은 그룹 내 계열 대형 SI업체에 일감을 몰아준다. 중소 SI업체에 낙찰되는 경우는 가물에 콩 나듯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7월 그룹 내 계열사로부터 일감을 많이 수주한 대형 SI업체에 대한 단속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이들 그룹 계열 SI업체는 해외 수출이 활발한 일부 업체를 빼고는 수주 사업의 절반가량을 계열사로부터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형 SI업체들은 일단 수주를 하면 자사 임원 출신이 차린 업체나 자회사에 1차 도급을 주고, 이들은 또다시 시스템 설계, 하드웨어 조달, 소프트웨어 개발, 시스템 유지 보수 등 분야별로 2차 도급을 중소규모 SI업체들에 맡긴다. 명목은 ‘비용 절감을 위한 아웃소싱’. 중소업체들은 이렇게 맡은 일을 다시 3~4개 분야로 쪼개 3차, 4차, 5차까지, 심하면 7~8차까지 도급을 준다.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하도급 과정에선 대형 SI업체들의 횡포와 불공정거래 행위가 판을 친다. 발주처로부터 대금을 지급받고도 60일 만기 어음을 지급하거나 세금계산서만 발행한 후 실제 대금은 3개월 후에 주는 경우도 있다. 매월 인건비를 줘야 하는 하도급 업체는 자금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고, 견디다 못한 중소 하도급 업체는 일만 대신 해주고 파산하는 절차를 밟는다. 공정거래법상 하도급 업체에 대한 대금 지급은 발주처와 원청 업체가 맺은 계약에 준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현실에선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한 원청 업체는 입찰에 필요한 제안서를 대신 작성해주면 5억 원에 도급을 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한 후 하도급 업체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 최종 낙찰을 받자 하도급 대금을 2억 원으로 일방적으로 낮춰 통보했다. 금융기관에 납품할 전산시스템 하도급 계약서를 쓰면서 ‘반드시 원청 업체가 시스템 설치완료 승인을 해야 대금을 지불한다’는 조항을 삽입하고는 금융기관에선 설치완료 승인이 났는데도 원청 업체가 승인을 1년이나 늦춰 대금 지급을 회피한 사례도 있다.
이외에도 핵심기술 제공을 전제로 도급을 준 후 담당 임원의 교체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고 그 기술을 이용해 제품을 출시한 전자회사, 협력업체에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2차, 3차 하도급을 한 준 뒤 프로젝트 원천기술을 가진 4차 하도급 업체에 2차, 3차 하도급 업체의 적자 부분을 보전하게 한 악덕 대형 SI업체도 있다.
공정거래위는 이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지난해 11월 하도급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배포하는 한편,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한시적으로 불공정하도급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에선 새 양식의 계약서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으며, 하도급 불공정 사례를 신고한 경우는 대부분 이미 파산 위기에 몰렸거나 도산한 업체들이다. 대기업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꺼리기 때문이다.
밤이 되어도 등이 꺼지지 않는 구로디지털단지.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최대 약자인 IT 근로자에겐 밤낮이 따로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도급 중간 단계에서 IT 근로자(개발자)의 수수료만 떼먹는 SI업체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은 IT 관련 용어를 그럴듯하게 넣은 간판만 달고 있을 뿐 실상은 개발자를 모집하는 영업사원 한두 명만 둔 인력파견업체, 일명 ‘IT 보도방’이다. IT업계 하도급 구조에서 4차 하도급 이하는 대부분 인력파견업체라고 보면 된다.
이들은 인터넷 구인 사이트나 블로그 등을 통해 시스템·소프트웨어 개발자(이하 개발자) 인력을 확보한 다음 상위 단계 도급업체에 파견 또는 소개만 하고 보수(인건비)의 10~20%를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간다. 이런 먹이사슬이 적게는 5~6차, 심하게는 7~8차까지 내려가는데, 2~3차 하도급 업체 사무실에는 3차에서 8차 하도급까지 각 단계 업체에서 파견된 다양한 개발자가 섞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7~8차 하도급을 거쳐 원청 업체 또는 2~3차 하도급 업체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개발자들은 자신이 그렇게 많은 도급단계를 거쳤는지 알지 못한다. 중간 단계에선 인력파견업체 간에 서류만 오가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프리랜서 개발자의 평균 보수가 일반 기업의 대졸자 평균 보수를 훨씬 밑도는 것도 도급 단계마다 인력파견업체가 수수료를 떼가기 때문이다. 이들 명목상의 SI업체, 즉 인력파견업체는 IT 관련 기술이 전혀 없어도 개발자를 모집할 능력만 있으면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원청 업체가 특정 프로젝트에서 책정한 개발자 1인당 인건비가 월 500만 원이라면 8차 도급을 거쳐 실제 개발자의 손에 들어오는 보수는 각 도급업체가 떼는 수수료를 10%로 잡을 경우 215만 원으로 줄고 20%로 잡으면 83만 원에 불과하다. 거꾸로 중간 하도급 단계의 각 인력파견업체들은 개발자 1명을 소개 또는 파견할 때마다 가만히 앉아서 매달 50만 원에서 100만 원의 수입을 챙길 수 있다. 수수료를 10%로 잡고 개발자 20명을 상위 인력파견업체에 소개하면 최소 3개월 최장 1년 이상 매달 1000만 원을 벌 수 있는 구조다. 프리랜서 개발자의 프로젝트가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 이상 진행되기 때문이다.
죽도록 일하고 뺨 맞고
정규직 40여 명과 파견직 10여 명을 상시 채용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소 SI업체 이모 사장은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에만 인력파견 SI업체가 50곳이 넘는다. 이러다간 실제로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개발하는 업체는 모두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우려했다.
주로 인력파견업체에서 개발자를 지원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소 SI업체 김모 대표는 “대기업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1인당 연봉을 9000만 원 정도로 책정해 인건비를 산정한다고 가정하면 2~3차 하도급 업체에서 직접 고용한 개발자는 경비를 포함해 4000만~6000만 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 밑으로 내려가면 2000만~3000만 원밖에 못 받는다”고 전했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원청 업체 또는 하도급 과정의 중소 SI업체가 어떤 이유로든 보수를 지급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사업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파산하는 경우, 또는 개발자의 능력을 꼬투리 잡아 해고하거나 보수 지급을 거부하는 경우, 중간 단계의 인력파견업체가 인건비를 모두 떼먹고 폐업 신고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프리랜서 개발자들은 일만 죽도록 하고 보수는 한 푼도 못 건질 위기에 처한다.
중소 SI업체 김 대표는 “인력 장사를 하는 회사와 근로계약서도 안 쓰고 일하거나 계약을 했어도 실질적으로 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누구인지 모를 때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다”며 “이런 경우엔 해고 당하거나 보수를 못 받아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억울한 사연은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일상사처럼 벌어진다. 소프트웨어 개발 5년 차인 홍모 씨(32)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는 서울지역 4년제 대학 전산 관련학과를 졸업하고 대형 SI업체 SI개발팀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중급 소프트웨어 개발자다.
“지난해 3월 말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이름과 주특기, 희망 연봉을 써놓았더니 구로디지털단지 내에 있는 P업체에서 이력서와 경력증명서를 보내라고 연락이 왔어요. 며칠 후 대뜸 채용이 됐다며 P업체 사장이 4월부터 3개월간 T업체에서 일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P업체에 가서 근로계약서를 쓰고 출근해 소프트웨어 개발 작업을 했습니다. 같이 일한 개발자 10명 중 2명만 T업체 직원이고 나머지는 모두 저처럼 소개를 받고 온 개발자들이었습니다.
한 달을 일했는데 보수가 안 나왔어요. P업체 사장이 T업체에서 프로젝트를 마치면 한꺼번에 주겠다고 했다 해서 참고 일했죠. 3개월쯤 지난 어느 날 T업체 직원이 회사에 문제가 생겨 프로젝트가 중단됐다는 거예요. P업체와 T업체 사장이 서로 짠 듯 모두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두 업체 다 폐업신고를 하고 도망을 갔더군요. 나중에야 알았지만 P업체는 인력파견회사였고 P업체와 T업체 사이에 6단계나 하도급 계약이 맺어져 있었습니다.
P업체와 체결한 근로계약서를 들고 상위 하도급 6개 업체와 원청 업체에 밀린 임금을 달라고 매달렸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중간 업체들은 ‘우리 역시 한 푼도 못 받았다’고 발뺌하고 원청 업체는 ‘법적 책임이 없다’고 했어요. 결국 죽도록 일하고 1000만 원을 날린 겁니다. 더 놀라웠던 건 3개월 프로젝트에 원청 업체가 T업체에 지급한 제 보수가 3000만 원이 넘는다는 거예요. 3000만 원이 8단계 하도급을 거치면서 1000만 원이 된 거죠.”
노무법인 A·D의 오영택 노무사는 “계약 당사자가 폐업을 하고 도망갔지만 다행히 P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했으므로 이를 근거로 원청 업체와 중간 하도급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며 “건설업체는 하도급 업체가 부도가 날 경우 원청 업체가 일용직 근로자들의 보수를 책임지는 게 관례가 됐지만 IT업계엔 아직 그런 판례가 없다”고 말했다.
수당 안 주고 경력 ‘뻥튀기’
IT업계 인력파견업체는 중소 IT업체 간판을 걸고 개발자들의 인건비를 떼먹고 있다. 사진은 건설업계 새벽 인력시장.
“하도급 인력파견업체 H사에서 면접을 보고 일주일 후부터 원청 업체인 A그룹 계열사 사무실에 파견돼 일했습니다. 프로젝트팀 8명 중에는 프로젝트 매니저(PM)를 포함해 원청 업체 직원이 3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20여 일 일하는 동안 PM과 원청 업체 직원들은 프로젝트와는 관계도 없는, 예를 들면 원청 업체의 홈페이지 수정 작업 같은 일을 시켰어요. 그래서 ‘프로젝트 외 다른 업무는 할 수 없다’고 했더니 ‘그만두라’는 거예요. 다음 날 출근했더니 책상조차 치워버렸더군요.
그래서 H사에 ‘근무일수만큼의 보수를 달라’고 했더니 ‘못 준다’는 거예요. ‘계약서도 안 썼고, 20여 일 일하는 동안 오히려 원청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화를 냈습니다. 지방노동청을 찾아갔지만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말만 들었어요. ‘원청 업체 직원이 파견 근로자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건 법 위반이 아니냐’고 했더니 ‘그건 공정거래법의 문제이고 체불임금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다’며 ‘보수를 받으려면 소송으로 해결하라’는 겁니다. 소송을 하려니 소송비가 받을 보수보다 더 들었어요. 포기했죠.
H업체와 원청 업체인 A그룹 계열사 사이에는 무려 7단계의 하도급 업체가 있었어요. 더욱이 1차 하도급 업체인 B사는 A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였습니다. 갑을병정…으로 이어진 다단계 하도급 계약의 맨 마지막에 몰려 몇 단계에 걸쳐 떼고 뗀 보수를 받으면서 원청 업체의 허드렛일까지 강요받는 개발자의 현실에 화가 치밀었습니다.”
오영택 노무사는 “보통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연장수당, 주휴수당, 야간휴일 수당, 연차수당, 퇴직금 등을 받기 힘들다. 파견, 용역계약서를 쓰거나 계약서를 쓰지 않은 경우라 해도 실제 한 사무실에 소속돼 일하고 그 회사의 지시를 받은 정황이 드러나면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것조차 안 되면 소송을 통해 시급으로 계산된 보수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IT 학원을 갓 수료하거나 대학을 막 졸업한 초급 개발자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으로 채용한 뒤 3~4년 차 중급 개발자로 위장해 상위 하도급 업체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불법 파견업체도 있다.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소프트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 회사 대표 김모 씨는 초급 개발자들에게 중급 개발자에 해당하는 허위경력서를 만들어주고 상위 하도급 업체에 거짓 면접을 하는 방법까지 가르친다. 이들이 상위 하도급 업체의 인터뷰를 용케 통과해 일을 시작하면 개발자에겐 초급 개발자 수준의 보수(물론 수수료는 따로 뗀다)를 주고, 중급 개발자로서 받는 나머지 보수는 자신이 챙긴다. 거짓 인터뷰에 실패해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못하면 참가할 때까지 임금을 주지 않은 채 회사나 집에서 대기하게 한다. 허위 경력으로 상위 하도급 업체에 진출한 개발자 대부분은 업무 진행을 못해 보수 한 푼 못 받고 쫓겨나기 일쑤다.
중소 SI업체 이 사장은 “서울 강남의 IT 학원 중에는 6개월 속성과정으로 자바(JAVA)교육을 받는 원생에게 ‘해당 과정을 이수하면 인력 소싱 회사에서 경력 뻥튀기를 해줄 것’이라며 ‘회사에 취직해 1~2년 죽어라고 일하면 뻥튀기한 경력을 따라가고 충분한 보상도 받을 수 있다’고 교육하는 곳도 많다. 이런 사람이 면접을 통과해 파견되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업체도 큰 타격을 받는다”고 개탄했다.
‘조폭’ 업체의 횡포
지난해 9월 15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환경미화원들을 찾아 “사내 하도급 근로자보호법 등을 발의하겠다”고 약속했다.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중소 SI업체를 운영 중인 박모 사장은 최근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인력을 찾던 중 ○○○○산업이라는 인력업체에서 개발자 3명을 파견 받았다. 프로젝트 진행을 하던 중 검수에 문제가 생겼다. 검수가 완료될 때까지 원청 업체의 대금 지급이 다소 늦어졌다. 그러자 ○○○○산업 대표 이모 씨가 원청 업체를 찾아가 문신을 보여주며 “내가 조폭인데 너희들 다 죽고 싶냐. 왜 개발자 보수를 제때 주지 않느냐”고 온갖 욕설을 하며 행패를 부렸다. 박 사장은 급한 대로 빚을 내서 파견 개발자의 보수를 대신 지급하고 일을 수습했지만 IT 업계에서 더는 발붙이기 힘들게 됐다.
이처럼 다단계 IT 하도급 구조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당사자는 개발자 등 IT 근로자들이다. 인력파견업체가 도급 단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임금은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지고, 프로젝트별로 고용되다보니 IT 근로자의 삶에는 저녁과 휴일이 없다. 매일처럼 야근에다 토·일요일 없이 일하지만 시간외수당이나 야근수당, 주휴수당,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이 정한 각종 보수를 지급하는 업체는 드물다. 여기에다 도급 프리랜서에 대한 원청 업체나 상위 도급 업체 직원들의 횡포, 업주들의 임금 체불은 개발자들을 병들게 한다. 온갖 질병에 시달리다 장애인이 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산업재해 보상조차 받기 힘들다.
2010년 4월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이 IT 근로자 16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IT노동 실태 긴급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는 그들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준다. 주당 평균 노동시간 61.7시간(법정근로시간 40시간), 휴일 출근 한 달 평균 3.3일, 연간 3000시간의 살인적 노동. 이는 1일 8시간 노동 일수로 환산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근로자 평균보다 154일을 더 일하는 것이다. 야근수당조차 전혀 못 받는 경우만 76.5%인 것으로 드러났다. 법대로 야근수당을 받는 경우는 2.3%에 불과했다. 이 설문에 참가한 IT 근로자의 80% 이상이 정규직임을 감안하면 하도급 파견 IT 근로자의 피해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IT 근로자는 항상 아프다
이렇듯 살인적인 노동조건에서 IT 근로자 대부분이 만성피로(82.2%), 근골격계 질환(79.2%), 거북목 증후군(73.1%), 두통(69%) 등 각종 질병을 호소하고 있다. 과다한 업무와 무리한 야근으로 인한 폐렴으로 폐 일부를 잘라내거나 갑작스러운 경추 디스크로 전신마비가 된 경우에도 산업재해로 인정돼 보상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2010년 2월에는 국민은행 전산팀장이 한강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오영택 노무사는 “업무과다와 무리한 야근을 증언과 증거 등으로 증명할 수 있으면 산업재해 보상은 물론, 각종 수당도 소송을 통해 받아낼 수 있다. 최근 모 대기업에서 일하다 반신불수가 된 IT 근로자가 산업재해 소송을 벌여 승소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은 대선 당시 차세대 신성장동력 공약으로 IT와 BT의 융·복합을 꼽았다. 경제민주화 공약과 관련해서는 “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IT 분야의 하도급 불공정 계약을 막아 중소 사업자의 피해를 방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공약에 하도급 불공정 계약의 최대 피해자인 IT 근로자에 대한 내용은 없다. 새 정부에서도 IT 근로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세계 1위 IT 강국의 명성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