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평양에 다녀왔는데, 유엔과 세계은행, IMF에 대해 집중적으로 묻더군요. 놀라웠던 것은 아직 한국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있는 EU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더라는 점이에요. 이들의 지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어디로 줄을 대야 하는지 이런 걸 가르쳐달라는 겁니다. 미국과 중남미 국가들이 참여하는 미주기구(OAS·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아프리카단결기구(OAU·Orga- nization for African Unity) 등과 북한을 연결해주기 위해 내 경험과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노하우라는 건 이런 겁니다. 가령 영국의 고위층에 줄을 대려면 승마협회 같은 데로 접근하면 쉬워요. 우리야 주로 서민들이 경마장에 가지만 영국은 최상류층이 대개 경마팬들입니다. 여왕이 경마를 갖고 있을 정도니까. 그래서 한국마사회장이 영국에 가면 웬만한 사람은 다 만나볼 수 있어요. 또한 중미에는 난(蘭)이 국화인 나라가 있는데, 내가 10여년 동안 한국난협회장을 한 덕분에 그 나라 대통령 내외를 만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나라마다 관심 분야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외교를 할 때는 이런 걸 가장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거죠.”
한국에서 정치를 하고 싶은 게 그의 소망이었다고 한다. 그가 졸업한 워싱턴의 조지타운 대학은 미국과 중남미 국가의 명문가 정치 지망생들이 많이 들어오는 곳이다. 그 또한 명문가 출신(그의 선친은 미륭상사 창업주인 고 박미수씨)으로, 이 대학에서 학생회장을 지냈다. 정치적 야심이 없었을 리 없건만, 한국의 정치무대에 근거지 없는 이북 출신이 설 땅은 없었다고 한다.
“호남 사람들이 영남 사람들한테 당하고 살았다는데, 그래도 이북 출신들이 겪은 설움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거예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디 가서 국회의원 노릇 할 생각을 해봤겠어요. 그래서 이민도 많이 갔죠. 통일에 대한 내 열망은 이런 감정에서 나온 측면도 있어요. 남북한이 합쳐야 우리 이북 출신에게도 좀 기회가 올 거라는….”
최근 그가 인삼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경제적 가능성과 함께 이를 매개로 한 남북한의 협력사업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두산그룹으로부터 충남 금산에 있는 국내 두 번째 규모의 인삼공장을 인수했다. 북한에 갔을 때는 인삼 재배에 최적의 토양조건을 갖췄다는 개성에 인삼공장을 설립하는 문제를 협의했다.
“요즘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엄청난 양의 인삼을 생산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그쪽 인삼 재배업자들은 한국을 인삼의 종주국으로 여깁니다. 누가 특별히 홍보한 것도 아닌데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인삼이 고려인삼, 개성인삼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프로모팅만 잘하면 인삼처럼 유망한 작물도 없어요. 쌀시장이 완전 개방되어 우리 쌀의 가격경쟁력이 추락하는 상황을 가정하면 인삼이 우리 농민의 대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 인삼은 아무리 값이 비싸도 경쟁력이 있으니까요. 북한과 손을 잡으면 시너지 효과를 낳을 수도 있어요. 북한에서 생산한 인삼을 남한에서 가공해 수출한다든지, 남북한이 인삼을 테마로 한 관광자원을 개발한다든지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겠죠.”
나는 ‘로비쟁이’
박씨가 요즘 가장 공을 들이는 사업의 하나는 대만의 고속철도사업이다. 타이페이와 카오슝을 잇는 340km 구간의 이 고속철은 토목공사와 토지보상비를 포함, 200억달러가 투입되는 대형 사업. 프랑스 알스톰과 독일 지멘스가 연합한 유럽 컨소시엄(유로트레인)과 일본의 미쓰이 미츠비시 도시바 등이 참여한 일본 컨소시엄이 사업권을 놓고 경합을 벌여왔다.
박씨는 지난 3년간 유로트레인의 에이전트를 맡아 대만과 유럽을 뛰어다녔는데, 97년의 운영권 입찰에선 유로트레인이 일본을 눌렀다. 때문에 열차 및 운행관리시스템 사업권도 유로트레인이 따낼 것으로 낙관하고 있었는데, 지난해에 열린 입찰에서 일본 컨소시엄에 지고 말았다. 그는 입찰이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따라 아직 최종 결정이 보류된 상태다. 그는 EU의 지원을 등에 업고 마지막 승부를 벼르고 있다.
―이젠 로비라면 도가 틔셨겠군요.
“내 자랑처럼 들리겠지만, 30년 넘게 이 일을 하다 보니 이젠 ‘쟁이’가 다 된 것 같아요. 대학 강단에 세워놓고 ‘로비란 무엇인가’를 강의하라면 교수보다 못하겠지만, ‘이러이러한 일은 어떻게 하면 최단기간에 성사시킬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거의 본능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올 겁니다.”
―한국에선 로비라는 말이 부정부패, 뇌물, 브로커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로비는 왜 필요하고, ‘잘 된 로비’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의 예를 들지요. 고도의 의회주의 국가인 미국에선 모든 게 국회에서 결정되고 행정부는 이를 집행할 따름입니다. 미국에 그룹이 얼마나 많습니까. 각양각색인 직업에 따라, 민족에 따라, 출신지에 따라 모두 이해관계와 관심사항이 달라요. 워싱턴엔 이들이 만든 조합들이 우글우글합니다. 각 조합은 경쟁적으로 유능한 로비스트를 채용해 국회로 보내죠. 90년대 들어 미국이 유일한 슈퍼 파워로 위상을 굳히자 외국 정부와 기업들도 미 의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됐어요. 이해 당사자들은 로비스트가 없으면 찾아 먹을 것도 못 찾아 먹는다고 생각합니다.
로비스트는 의원 주머니에 돈이나 찔러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빈틈없는 논리로 의원들을 설득해야 해요. ‘이런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룹의 이익을 프로모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직접 법안을 만들어주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이론과 실무에 다 정통해야 돼요. 그래서 미국에선 로비스트를 상원과 하원에 이어 ‘제3원(院)’이라고 부를 정도예요.”
로비 못해 얻어맞는다
―한국의 대미(對美) 로비 실태는 어떻습니까.
“국가간의 로비에선 인맥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한국은 인맥이 없으니…. 우방국이니 대통령끼리 만나는 건 어려울 게 없겠죠.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그리고 그 아래 장관들의 대화에서, 또 그 아래 실무자 간의 대화에서 어떤 얘기가 오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해마다 수백억 달러어치의 물건을 사주면서도 계속 얻어맞기만 하는 것은 인맥도 없고 로비할 줄도 모르기 때문 아니겠어요?
코리아게이트 때 쌀 수출 관계로 한국을 도와주겠다고 한 의원이 86명이었어요. 그런데 의원들끼리는 ‘당신이 이 법안심사에서 날 도와주면 나도 당신을 위해 표를 던지겠다’며 서로 트레이드 보팅을 하는 관행이 있어요. 86명이 한 명씩만 트레이드 보터를 확보해도 172명의 의원이 한국 편을 들게 되는 겁니다. 그 정도만 해도 전체 의원수의 3분의 1을 훨씬 넘으니 한국 원조법안이라면 무조건 다 통과됐던 거죠. 내가 잘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의원들이 선거구민을 의식해서 한국을 지원하는 데 발 벗고 나선 겁니다. 인맥이란 것이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한국이 IMF 위기에 몰렸던 97년 말, 세계은행의 고위 인사를 설득해 긴급 차관을 조기 지원받도록 하는 등 현 정부에도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로부터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으신 게 있습니까.
“공식적으로 미션을 받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현 정부나 여당 인사 중에 나와 인맥이 닿는 사람들이 많고, 이들이 처음 여당을 하다 보니 경험이 짧아 내 의견을 물어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 내 능력이 닿는 범위에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미국과 관련된 사안들이 많죠.”
일정 때문에 아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그는 “기자 앞에서 인터뷰를 한 게 아니라 하소연만 잔뜩 했다”며 “그만큼 맺힌 얘기가 많았던 모양”이라고 했다.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평행선을 달린다. 어려운 시절 갖은 차별의 장벽을 딛고 미국 정계를 휘어잡으며 당당하게 고국의 이익을 대변했다는 찬사를 받는가 하면, 독재정권과 결탁해 자기 잇속을 차렸다는 비난도 쏟아진다.
그는 여전히 베일 속의 인물이다. 그가 스스로 베일을 걷어 보일 때 비로소 정당한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다만 그가 30년 동안 축적한 인맥과 노하우를 단지 그 개인의 자산으로만 묶어두는 것은 아깝다는 게 현실적인 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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