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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 제안

“소위 민족주의자들이여! 당신네 자식이 선택하게 하라”

소설가 복거일의 영어공용화 주장 제2탄

  • 복거일 소설가

“소위 민족주의자들이여! 당신네 자식이 선택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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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어의 득세로 다른 민족어들과 그것을 쓰는 사회들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이것은 무척 중요하고 그만큼 논쟁적인 주제다. 분명한 것은 영어의 득세가 불러올 영향이 무척 크리라는 점이다.

단기적으로는 민족어들이 영어에 점점 깊이 침윤될 것이다. 지금 영어의 침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민족어는 없다. 영어의 득세와 침윤에 가장 거세게 반발하고 국가적 대응책을 강구해온 프랑스조차 자신의 민족어를 지키는 데에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거의 포기한 상태다.

중기적으로는 거의 모든 사회들에서 영어와 민족어가 공존해서 시민들이 둘을 함께 쓰는 상태(bilingual)가 될 것이다. 인도, 필리핀, 싱가포르와 같은 나라들이 이미 그런 상태다.

궁극적으로는 영어가 단 하나의 국제어로서 거의 모든 부문에서 쓰일 것이다. 영어의 그런 융성은 당연히 민족어의 소멸을 뜻하니, 민족어들은 점점 활력을 잃고 일상생활에서 내몰릴 것이다. 그래서 많은 민족어가 사라질 것이다. 현존하는 3000 내지 6000개 가량의 언어 가운데 100년 안에 절반이 소멸하리라고 추산하는 이도 있다. 또 다른 추산에 따르면, 적어도 300년 동안 생존할 가능성이 있는 언어들은 스페인어, 중국어, 영어 뿐이다.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와 같은 중요한 언어들도 그 뒤로는 지역적 방언으로 명맥을 유지할 것이다.

이런 추산은 무척 대담한 예측 같아 보인다. 그러나 국제어를 불러오는 사정들과 역사적 증거들을 살펴보면, 그런 예측도 실은 너무 보수적인 것일 가능성이 높다. 현 추세가 지속된다면 다섯 세대 안에 영어가 대부분의 사회에서 공용어가 될 가능성은 무척 높다.



여기서 지적할 것은 이런 상태가 민족어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쉽게 사라지기엔 민족어가 담고 있는 민족의 역사와 지적 자산이 너무 많다. 그래서 민족어들은 대중의 외면을 받지만 전문가들에 의해 쓰이고 보존되고 이어질 것이다. 그런 상태에선 민족어들은 거의 진화하지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박물관 언어’로 남을 것이다.

6. 국제어를 모국어로 해야 하는 이유

너무 대담해 보이는 이런 예측은 물론 국제어가 지닌 엄청난 망 경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런 예측은 동시에 언어의 습득과 사용에 관한 생물학적 사실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근년에 생물학과 심리학이 보인 빠른 발전은 언어에 관한 종래의 생각들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먼저 지적할 것은 사람들이 지닌 언어능력은 특정 언어에 매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난 몇만 년 동안 많은 언어가 나타났다 소멸했지만, 사람들의 유전자적 모습(genetic profile)은 그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종과 관계없이 어떤 언어나 배워서 쓸 수 있다. 프랑스 사람이 프랑스어를 쓰고,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쓰는 것은 생물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프랑스어나 한국어를 쓰는 사회에서 태어나 그것을 모국어로 배웠기 때문에 그것을, 그리고 그것만을 잘 쓸 수 있는 것이다.

다음엔, 사람이 첫 언어를 배울 때 쓰는 뇌의 부분과 차후에 언어들을 배울 때 쓰는 뇌의 부분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첫 언어, 곧 모국어를 배우는 것과 차후의 언어들을 배우는 것 사이엔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모두 모국어는 아주 잘 하지만 커서 배운 외국어들을 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를 느낀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간 사람들이 흔히 겪는 ‘의도하지 않은 대조실험’의 결과도 잘 알려졌다. 중학생인 아이는 영어를 배우는 데 애를 먹지만 초등학생인 아이는 쉽게 영어를 배워서 익숙하게 쓴다.

근년에 미국에서 한국인 2세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그렇게 다른 영어 습득능력에서 열두 살이 경계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 실험은 사람이 대개 열한 살까지는 첫 언어를 배우는 뇌의 부분으로 언어를 배우지만, 열두 살부터는 차후 언어를 배우는 뇌의 부분으로 언어를 배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사정을 설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뇌는 어떤 종합적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라, 사람이 진화하면서 필요한 기능들이 계속 덧붙여진 기관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자기 종족의 언어만 배우면 됐다. 그래서 사람의 뇌에서 언어를 관장하는 부분은 한 언어를 다루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고대 문명이 일어나고 다른 종족들과 교류가 활발해지자, 많은 사람이 둘 이상의 언어들을 배워야 했다. 그렇게 갑자기 닥친 상황에 맞춰 뇌가 빠르게 진화할 수는 없었으므로, 뇌는 첫 언어가 아닌 차후의 언어들을 관장하는 일을 원래 언어를 관장하던 부분이 아닌 다른 부분으로 돌렸다. 그래서 우리는 수학문제를 풀 듯 외국어를 쓰는 것이다.

이 사실은 국제어를 모국어로 갖지 않은 사람들이 겹으로 불리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들은 모국어말고도 국제어라는 언어를 하나 더 배워야 할 뿐 아니라 그 국제어나마 제대로 배워 쓸 수도 없다.

이 불행한 소식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단 하나의 길은 국제어를 모국어로 갖는 것이다. 다른 길은 없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은 서서히 국제어를 모국어로 삼을 것이다. 국제어를 첫 언어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안게 되는 불이익이 워낙 큰지라 국제어를 모국어로 갖지 못한 사람들은 비록 자신들은 너무 늦었지만, 자식들에겐 국제어를 모국어로 배울 기회를 주려고 애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언어를 아주 쉽게 바꾸는 이유를 잘 설명한다. 미국에 이민간 사람들이 영어를 배워 쓰는 데에는 한 세대면 족하고, 모국어를 잊는 데는 세 세대가 채 안 걸린다.

7. 유대인의 역사적 예

유대인의 역사는 이 점을 아주 또렷이 보여준다. 혹독한 여건 속에서 엄청난 값을 치르면서도 유대인들은 줄곧 자신의 동질성을 유지하고 정체성을 지켜왔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그들의 언어를 소중하게 여기고 꿋꿋하게 지켜왔으리라고 여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으니,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여러 번 가볍게 바꾸었다.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들은 기원전 6세기에 바빌로니아에 종속됐고 이어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자연히 유대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는 바빌로니아 제국 상인들의 국제어였고,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였던 아람어에 점점 깊이 침윤했다.

마침내 기원전 2세기경엔 유대인들은 히브리어 대신 아람어를 쓰기 시작했고, 히브리어는 지식계층만이 읽을 줄 아는 ‘박물관 언어’가 됐다. ‘성서’의 ‘느헤미야’는 기원전 3세기 전반에 편집됐는데, 그것이 바로 히브리어가 산 언어였을 때 쓴 마지막 책이다.

대부분의 유대인이 히브리어를 잊었으므로 그들을 위한 아람어 성서가 나왔다. ‘번역’ 또는 ‘통역’을 뜻하는 아람어 ‘targum’으로 불린 이 성서는 구전으로는 이미 기원전 6세기 말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기록된 것은 기원후 1세기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뒤 팔레스타인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집권한 이집트에 종속됐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이, 특히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이집트의 유대인들이 아람어를 버리고 그리스어를 쓰게 됐다. 자연히 히브리어도 아람어도 모르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에 걸쳐 알렉산드리아의 박물관에서 번역판을 냈는데, 그것이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뒤에 기독교도들의 성전이 된 ‘그리스어 성서(Sep-tuagint)’다.

로마제국이 득세했을 때 유대인들은 로마에 대항했다가 참담하게 패하고 흩어졌다. 그 뒤로 유대인들은 아람어나 그리스어를 버리고 그들이 이민 가서 정착한 곳의 언어를 쓰거나 이디시어(중세에 독일어의 여러 방언들에 바탕을 두고 유럽의 여러 언어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진화한 언어. 주로 중부 및 동부 유럽의 유대인들이 썼다)나 라디노어(발칸반도, 그리스, 소아시아의 유대인들이 쓴 로망스어)와 같은 혼성어를 공용어로 삼았다. 고유의 언어인 히브리어는 유대교 학자들에 의해 명맥이 이어지는 ‘학자들의 언어’가 됐다.

그 동안에도 히브리어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런 노력은 근세에 특히 활발해서, 히브리어를 글로 쓸 뿐 아니라 말해지기도 하는 언어로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나왔다. 그리고 1948년에 이스라엘이 세워지고 히브리어가 공용어로 채택되면서 그런 노력은 마침내 열매를 맺었다.

언어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한 이 사실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언어를 버리고 채택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세계 곳곳에서 모여 들어서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정치적 이유에서 일부 지식층이 주도하는 움직임에 따라 2000년 넘게 ‘학자들의 언어’로 남아서 현대어로선 적절치 못한 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할 수 있다면, 영어처럼 큰 활력을 지닌 언어를 지금 사람들이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이 어찌 어렵겠는가?

8. 영어 못해서 발생하는 손해들

그러면 우리 시민들이 국제어인 영어를 능숙하게 쓰지 못해서 우리 사회가 보는 손해는 얼마나 클까? 아쉽게도 아직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실제적인 연구를 수행해서 손해를 금액으로 환산한 사람은 없다. 따라서 그런 손해에 대한 추산은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그런 손해가 언뜻 보기보다는 훨씬 크리라는 점이다.

그런 손해 가운데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개인적 차원의 손해다. 우리 시민들 대부분은 영어를 제대로 쓸 줄 몰라서 당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거나 물질적으로 손해를 본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전형적인 일화는 미국에서 활약하는 야구선수 박찬호씨의 경험이다. 한번은 코치가 흥분한 그에게 “감정을 다스리게(control your emotion)”라고 말했다. 그러자 박씨는 그의 말을 “동작을 조절하게(control your motion)”라는 말로 알아듣고 투구 동작을 열심히 연습했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의 손해가 모두 박씨의 일화처럼 웃어넘기거나 조금 손해보고 말지 하면서 체념해도 좋은 수준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남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재앙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은 항공기나 배를 부리는 사람들의 경우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불완전한 의사소통은 곧바로 엄청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서투른 영어로 인한 항공사고들은 끊임없이 나오고, 그런 사고들은 영어가 널리 쓰이지 않는 대륙들에서 훨씬 많다. 그래서 미국의 항공기 조종사들은 관제사들과의 의사소통이 시원스럽지 못한 아시아로 비행하는 일을 ‘암흑 속으로 들어간다’고 표현한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우리 시민들이 보는 그런 크고 작은 손해들을 모두 모으면 엄청난 금액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손해는 영어로 된 정보들이 아예 우리 사회에 유입되지 않아서 우리가 보는 줄도 모르고 보는 ‘보이지 않는 손해’보다는 훨씬 작을 것이다. 정보의 유통에는 비용이 든다. 따라서 정보는 찾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쏠린다. 영어로 된 정보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들에만 공급된다. 중요한 정보들이 대부분 영어로 된 세상에서 우리 사회에 들어오지 않는 정보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로선 추산하기도 어렵다. 단편적 일화들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생산되고 유통되는 정보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지난 번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 정부는 미국에 대표단을 파견해 월스트리트의 금융 전문가들과 협상을 벌였다. 막상 회담이 시작되자 우리 대표들은 상대방의 얘기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제도와 상품이 빠르게 진화하는 국제 금융계인지라, 우리 대표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개념들과 용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요 경제와 금융에 나름의 지식을 가졌고 물론 영어도 잘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실제로 협상에 들어가자 영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협상은 미국인 변호사가 주도했다. 나중에 협상이 그런대로 잘 끝나자 정부 대표들이 그 변호사에게 훈장을 주자고 했다는 얘기에서 우리는 회담장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중요한 최신 정보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아예 들어오지도 않고 있다. 물론 언어 장벽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런 정보의 부재 때문에 우리가 모르고서 보는 손해는 엄청날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그런 손해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으로 그냥 넘기기엔 사정이 너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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