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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주한미군, 우리가 나가라고 해도 안나갈 것”

  • 글: 황호택 hthwang@donga.com

“주한미군, 우리가 나가라고 해도 안나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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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을 기다렸는데도 약주를 많이 마셔 잔다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부인이라도 만나자고 했더니 어물어물해요. 30분 가량 추위에 떨다가 노후보를 보내고 이재정 유세본부장과 내가 1시간반 정도 더 기다렸습니다.

이른 새벽 김상현·김원기·김경재·이재정 의원 등 8,9명이 명륜동 노후보 집 문을 두드리니까 그 때까지 자고 있더군요. 권여사가 내복 바람으로 있길래 내가 농담으로 ‘막내 만들고 계셨수’ 했더니 웃어요.

이재정 의원이 성공회 신부입니다. 이의원이 일어나서 큰 소리로 10분 동안 기도를 했어요. 감격적이었습니다. 간절하게 기도를 하니까 노당선자가 ‘아멘 아멘’ 하더니만 주섬주섬 옷을 입고 따라 나왔어요.

노후보는 당사에서 ‘아직 공조가 살아 있다’고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하기 싫어하는 것을 우리가 억지로 시켰습니다. 그리고 노후보를 김해 진영에 있는 부모님 산소로 내려보냈습니다. 털털 털고 고향에 가는 모습이 국민한테 괜찮게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선 며칠 후 정몽준 대표를 만났죠? 뭐라고 하던가요.



“정대표가 먼저 술 한잔 하자고 전화를 했어요. 만나는 게 꺼림찍해 노무현 당선자한테 보고를 했더니 마음대로 하라고 그래요. 정몽준 의원과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2년 동안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던 적이 있지요. 정대표는 ‘평창동 집까지 찾아왔는데 안 만나 죄송하게 됐다’면서 ‘소주 먹고 떨어져서 그랬다’고 말하더군요. 내가 ‘문 안 열어줘서 당시에는 갑갑했지만 국민적 동정을 사는 바람에 선거에는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말했더니 정대표도 웃더군요.”

―한 시간 반만 참았으면 공동 정권이 탄생했을 판인데 후회하지 않던가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더라구요.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 거죠. 유학 가겠다는 계획을 말하기에 제가 위로했습니다.”

“꼬리곰탕끼리 해보자”

정대철 의원은 노후보보다 나이가 두살 많다. 그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과 후보경선을 벌인 경력이 있다. 그러나 그 후로 국회의원 낙선과 구속 수감이라는 암초에 부닥뜨려 대통령 후보의 꿈을 일단 접었다.

―선대위원장을 선뜻 맡기가 쉽지 않았을텐데요.

“9월 초 김원기 고문과 노무현 후보가 함께 나를 찾아오겠다고 하더군요. 집 근처 타워호텔에서 만났습니다. 내가 ‘당신이 잘 나갈 때 같으면 선대위원장 안 한다’고 했지요. 그 때 노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14.5% 였어요.”

노후보 지지율이 더 추락해 한 자릿수까지 내려가면 대통령선거 경쟁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와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로 압축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올 무렵이었다.

“민주당은 해공 신익희, 유석 조병옥, 운석 장면 그리고 정일형 박사, 김영삼·김대중씨가 만들어놓은 정당입니다. 이 정당을 흔들어서 붕괴시키면 되겠습니까. 115명 국회의원 중에서 절반 이상이 당을 뜨겠다는 판이었습니다. 정치혁명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국민경선을 통해 선출한 후보를 일시적으로 인기가 떨어졌다고 해서 바꾸자는 것은 언어도단이었습니다. 나는 조순형씨에게 ‘꼬리곰탕’끼리 공동 선대위원장을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조순형씨는 유석 조병옥 박사 아들이고 정의원은 8선의원에 제2공화국에서 외무부장관을 지낸 정일형 박사의 아들이다. 부모 꼬리라는 의미로 2세 의원들 사이에서는 ‘꼬리곰탕’이라는 은어를 쓴다.

“꼬리곰탕끼리 모여 민주 정당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느낌을 국민한테 줘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김근태 의원은 재야운동 대부이고 정동영 의원은 호남의 떠오르는 별이니 국민들한테 인기가 있고 젊은 계층을 대변할 수 있습니다.

김원기 의원은 ‘노당선자와 통추를 함께 한 내가 선대위원장을 맡으면 당신한테 집중이 되지 않는다’며 ‘바깥에서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단일화 전까지 권유를 했는데 안 맡았습니다. 정대철·조순형·정동영 3인 공동위원장으로 가면서 내가 집행위원장으로 수석 공동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이상수 사무총장과 선거자금 모금을 하면서 노후보에게 자세한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노후보는 ‘알아서 적법하게 하시다가 잘못되면 두 분이 감옥소 가세요’라는 말만 했습니다. 민주당의 선거자금 한도가 340억원이었는데 300억원도 못썼어요.”

정치교체 vs 정권교체

이회창 대세론이 계속되면서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 한나라당 쪽에 몰렸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거자금 면에서도 한나라당이 훨씬 풍족한 편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선거 전에 쓴 돈까지 합치면 여야가 뒤바뀐 형국이었습니다. 한나라당 쪽의 조직과 자금이 윤택하게 돌아가는 것을 우리도 금방 느낄 수 있었지요. 우리는 조직 선거보다는 미디어와 인터넷 선거에 맞추었습니다. 그 결과 돼지저금통 모금에서 무려 74억원이 들어왔습니다.

대기업으로부터는 돈을 받지 말자고 이상수 사무총장과 의견을 나누었는데 재벌들이 불안하게 생각하더라고요. 한나라당에 열을 줬으면 우리한테도 하나나 둘은 줘야 안심이 되는 거지요. 일종의 보험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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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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