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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피해! 주한미군도 한국정부도 나몰라라

  • 글: 조재국 KCBL 집행위원장·안양대 교수 jkcho@anyang.ac.kr

지뢰 피해! 주한미군도 한국정부도 나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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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월15일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Korea Campaign to Ban Landmines·이하 KCBL)는 ‘한반도 내 주한미군 매설지뢰와 그 피해현황 조사결과’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2년 한해 동안 실시한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주한미군이 기지를 철수하는 경우에도 주변에 매설했던 지뢰를 제거하거나 관련정보를 한국군에 이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아 상당한 민간인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양국 정부가 부정하고 있는 ‘미군 매설 지뢰피해’에 대한 KCBL의 직격 고발.
지뢰 피해! 주한미군도 한국정부도 나몰라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금파리에 살고 있는 이덕준(85)씨는 1979년 지뢰사고로 왼쪽 발목을 잃었다. 미군부대 부근에서 소와 말에게 먹일 건초를 모으던 중 매설돼 있는 지뢰를 밟았던 것. 오른쪽 다리 또한 파편이 박혀 감각을 느낄 수 없고 잘 움직일 수도 없다. 의족을 한 채 걸어다닐 수는 있지만 오래 움직이는 것은 무리다. 이씨는 “아직도 가끔씩 잘린 부분이 저릿저릿한데 그럴 때는 밤에 잠도 이룰 수가 없다”고 한다.

사고 이후 이덕준씨는 아무런 피해보상도 받지 못했다. 치료비는 작업을 지시한 관리자가 부담했지만 이후 생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이씨도 생계대책을 요구하지 않았다. “작업중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서 일절 항의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썼던 데다, 어떻게 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슬하에 6남매를 둔 이씨는 “다른 가족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죽으려고 했다”고 당시의 답답했던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씨는 “그때 사고를 낸 지뢰는 미군이 설치한 게 분명하다”고 말한다. 사고가 나기 십수 년 전 이씨 본인이 미군부대에서 군속으로 일하면서, 미군 병사들이 사고지점 부근에 지뢰를 매설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는 것이다. 지뢰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던 ‘USA’라는 글자 또한 이씨가 확신할 수 있는 근거였다.

이덕준씨와 같은 동네에 사는 조만손(71)씨도 1965년 미군부대 내에서 나뭇가지를 잘라내던 중 지뢰를 밟아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당시 민간인 접근을 막기 위해 지뢰 근처에 설치한 철조망은 이미 쓰러져 풀숲에 파묻혀 있었고, ‘지뢰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미군 측 사전경고도 없었다는 것이 조씨의 증언이다.

사고가 나자 한국인 노무자를 관리하는 미군들이 급히 헬기를 동원해 조씨를 병원으로 옮겼다. 조씨는 부평에 위치한 미군병원에 입원해 미군 부담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보상은 받지 못했다. 조만손씨는 “치료해준 것만 해도 다행인데 생계까지 어떻게 말하겠냐”고 이야기한다. 조씨의 부인은 “그동안 내가 날품팔이를 해서 겨우 먹고 살았다. 밥 한끼로 이틀을 끓여먹어야 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전한다.



조씨 또한 이덕준씨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밟은 지뢰는 미군이 설치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조씨는 “직접 미군이 매설하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당시 사고지점 근처에 한국군 부대는 없었다”고 말했다.

民軍, 전후방 안 가리는 지뢰사고

두 사람의 사례를 수십 년 전 이야기라고 쉽게 넘길 일은 아니다. 지뢰피해의 악몽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KCBL의 조사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지뢰피해자 숫자는 총 164명. 민간인 53명(사망 15명, 부상 38명)과 군인 111명(사망 47명, 부상 64명)이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1997년은 특히 피해가 심각한 해였다. 한해 동안 강원도 고성, 철원, 양구 등에서 무려 12명이나 되는 20대 군 장병이 목숨을 잃었고 세 명의 장병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또한 민간인의 지뢰피해도 적지 않아서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도창리에서 수해복구중이던 김영진 최이환씨가 지뢰사고로 사망하는 등 모두 다섯 명의 주민이 사고를 당했다.

지뢰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은 물론 민통선 주변지역. 과거 지뢰가 대량 살포되거나 매설된 지역으로 원래는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었지만, 1950년대 후반부터 정부는 농민들이 이 지역 전답을 경작하도록 허락했고 나아가서는 군데군데 민통선 안에 거주할 수 있도록 입주촌을 건설해,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과 같이 면 단위의 마을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지뢰에 희생당한 사람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 민통선 안에 거주하는 주민은 2533가구 8135명. 민통선 내의 유일한 면단위 부락인 해안면의 경우 주민 668명 가운데 지뢰피해자가 50명으로 알려져 있어, 단순 계산으로도 8%의 높은 피해율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철원읍 대마리가 649명 중 29명, 생창리가 349명 중 20명, 마현리가 884명 중 20명 등으로, 모두 세계 최대의 지뢰피해국인 앙골라의 수치(200명당 1명)와도 비교할 수 없는 높은 피해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뢰피해가 최전방지역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999년에는 충남 청양군 대흥리에서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인 김유정양이 지뢰사고를 당해 발목을 절단하는 부상을 입었다. 이 해의 군인 피해자는 총 13명으로 사망 1명, 부상 12명으로 집계되었다.

2001년 8월12일에는 경기도 화성시 고포4리 어도 해변에서 가족과 함께 피서를 즐기던 차철호씨가 지뢰를 밟아 왼쪽 발목을 절단하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2002년에도 10월말까지 모두 14명이 지뢰사고를 당해 2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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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재국 KCBL 집행위원장·안양대 교수 jkcho@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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