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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 스타 열전 ⑪

90년대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

“내 음악의 정서적 기반은 哀而不悲”

  • 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90년대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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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축하드립니다. 얼마 전 한 주간음악순위차트지로부터 ‘1위를 가장 많이 한 가수와 작곡가’로 꼽혔더군요. 1위를 차지한 곡을 전부 신승훈씨가 작곡했다는 사실에 저도 놀랐습니다.

“고맙습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상을 받고 새삼스레 제가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사실 제가 ‘가수’ 이미지가 강해, ‘작곡자’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아직도 제가 곡을 직접 쓴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최다 1위곡 가수보다 최다 1위곡 작곡가로 인정받은 게 더 기쁜가 보죠?

“그럼요. 제 자신이 싱어송라이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제 필생의 영웅이 고 유재하씨인데, 그의 유작 앨범에 작사 작곡 편곡자가 모두 유재하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사망한 날과 제가 데뷔한 날이 11월1일로 같아요. 역시 싱어송라이터로 제가 평소에 존경했던 김현식 선배도 11월1일에 돌아가셨지요. 그런 연유 때문에라도 싱어송라이터를 제 숙명처럼 생각해왔습니다.”

-언론에 소개된 대로 중국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게 사실인가요. 이제는 나이도 있고 전성기도 아닌데다, 중국에 진출했던 한국 가수들이 댄스음악 일색이었음을 감안하면 걱정도 있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중국에 가서 내가 할 게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앞서 진출한 가수들에게 마땅한 성과가 없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조용필 선배가 제게 이런 충고를 해주신 적이 있어요.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섰을 때는 시선을 해외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 말에 자신을 얻었어요. 지금은 면밀하게 준비중입니다.

발라드가 약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음악 시장이 원래 발라드 중심이고요. 중국을 다녀온 후배가수 강타(전 H.O.T.의 멤버)도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는 전부 빠른 노래만 있느냐고 한다. 형이 한번 가야 될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부른 ‘I believe’가 중국과 홍콩에서 호응을 얻었고 중국 최고의 인기여가수 쑨난도 제 노래 ‘Loving you’를 불러 현재 1위에 올라있습니다. 중국 진출은 성공 여부도 고려해야겠지만 우리의 음악 이미지를 알리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이 대목에서 그는 “중국에서는 가수보다 작곡자나 프로듀서로 활동해달라는 요청이 더 많다”고 전하면서 어떤 쪽으로 가는 게 좋겠느냐고 솔직하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포기할 수 없는 ‘哀而不悲’

-신승훈 음악의 정체는 말할 것도 없이 발라드입니다. 그간 줄곧 발라드만을 해왔는데 지겹지는 않습니까. ‘신승훈표 발라드’의 시장 파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일각에서는 너무 패턴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한번 음악 스타일을 바꿔볼 의향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뭐든지 우열이 있지요. 음악에도 우열이 존재해서 통상적으로 급진적인 음악은 우(優)로, 저처럼 서정적인 음악은 열(劣)로 규정되는 것 같아요. 특히 음악적 패턴이 너무 빨리, 너무 크게 변해온 1990년대에는 ‘바뀌는 음악’이 우가 되고 ‘바뀌지 않는 음악’은 열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열일지라도 신승훈에게는 신승훈만의 색깔이 있고 그 색깔은 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제 음악의 정서적 기반은 ‘애이불비(哀而不悲)’예요. 속으로는 슬프지만 겉으로는 울지 않는다는 거죠. 특히 저는 요즘처럼 사랑이 인스턴트화하는 시점에서 그런 전통적 사고가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맘에도 맞고요. 새를 보더라도 서양은 ‘새가 노래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새가 슬피 운다’고 하잖아요. 전 사랑과 이별의 발라드를 계속 부를 겁니다.”

-하지만 발라드가 일정한 틀 속에 있는 음악이기 때문에 창작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줄 압니다. 그 안에서 신승훈만의 스타일을 지켜야 하는 고통이 만만치 않을 텐데, 신보를 구상하는 데 고민은 없습니까.

“자세히 보면 아시겠지만 저도 적잖이 실험을 해왔어요. 하지만 틀을 지키면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발라드를 만들어내는 게 힘든 것은 사실이에요. 어떤 때는 진정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고민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악상이 막히면 장비를 모두 챙겨 조그만 별장이 있는 안면도에 내려가 곡을 쓰기도 하고요. 어떤 스타일의 곡을 쓸까 구상하는 데만 6개월이 걸릴 때도 있죠. 변화를 꾀하려고 노력하지만 참 어렵습니다. (크게 웃으며) 주변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저절로 음악이 달라질 거라고 하더군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왜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나요. 너무 늦었다고 설마 포기한 것은 아니겠죠(1968년생으로 알려진 신승훈의 실제 나이는 올해 서른 일곱이다).

“포기는 아니에요. 인륜대사를 저버리지는 않을 겁니다. 음악 때문에 한 해 두 해 미루다가 이렇게 된 것뿐이죠. 옛날에는 음악과 여자의 비중이 9대1이었다면 요즘은 6대4 정도로 달라졌어요. 그런데 막상 그런 마음이 생기고 나니까 여성들이 지레 부담감을 갖고 절 바라봅니다. 절대 그렇지 않은데…. 제 마음은 열려 있는데 저에 대한 여성들의 마음은 열려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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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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