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관용 의장이 의사진행 발언권을 달라고 항의하는 민주당 의원을 제지하고 있다(2003.2.26).
하지만 정작 TV에 비쳐지는 의원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못해 근엄하기까지 하다.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되는 모습은 그야말로 ‘국회의 겉모습’이다. 법안 통과를 둘러싸고 의원들간에 벌어지는 신경전과 물밑작업, 국회의원들의 회의참석 태도 등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이면(裏面)인 ‘국회의 속’을 적나라하게 아는 것은 아마도 국회의 ‘안방 마님’인 국회의장일 것이다. 국회의 겉과 속을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의 눈을 통해 들여다봤다.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은 높은 단 위에 위치해 있다. 의장석에선 본회의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박의장은 의원들이 ‘갑론을박’할 때 이 의장석에 앉아서 뭘 할까.
“의장석에 앉아 있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밑에 앉아 있는 의원들의 행동을 볼 때면 ‘나도 예전에 저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지지. 회의에 늦게 오거나 아예 빠지고, 상대당 의원이 뭐라고 하면 고함을 지르고…. 그 짓 하는 것 보면 정말 밉다.”
2003년 2월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선 한나라당이 제출한 1차 대북비밀송금 특검법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이 번갈아 단상으로 나와 ‘의사진행발언’을 하며 시간 끌기에 나섰다.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대표와 정균환(鄭均桓) 총무는 끊임없이 의사진행 발언자를 선정, 의장석에 그 명단을 제출했다. 하지만 막상 단상에 나와 의사진행 발언을 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얘기는 하나같이 “특검법 처리는 안 된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11명째 민주당 의원이 단상으로 나왔다. 박의장은 “이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의사진행 발언을 받지 않겠다. 발언 내용이 모두 같으니 취지는 모두 전달된 것 같다”며 의사진행 발언을 직권으로 막았다.
민주당 의원들 자리 곳곳에선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의장이 독단적으로 국회를 운영하면 되느냐” “의장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제출해야겠다” 등등.
“본회의 시작 전 의장실을 찾은 정균환 총무에게 토론은 얼마든지 허용하겠다고 약속을 했었지. 그런데 의장석에 앉아서 들어보니 똑같은 내용만 반복되는 거야. 정말 무의미하더라고. 이건 아니다 싶었지. 그래서 의사진행 발언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았는데, 난리가 아니더라고.”
박의장은 의장석에 앉아 가장 답답할 때가 정족수가 모자라 회의가 진행되지 못할 때라고 말했다.
“정족수가 안 될 경우에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의원이 모자라는 거야. 한두 사람씩 들어와 겨우 정족수를 채울까 싶으면 앉아 있던 다른 의원이 또 나가는 거야. 화장실을 가는 건지. 그때는 정말 의장석에서 ‘김아무개 의원’이라고 이름을 불러 붙잡고 싶을 지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