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고롱고로 자연보호구역의 한 호숫가 풍경. 독수리 한 마리가 유유히 사냥감을 찾고 있다.
동서 20km, 남북 16km에 이르는 거대한 화산지대에 펼쳐지는 응고롱고로의 새벽 풍경은 평온하고 한적하다. 그러나 아침 햇살이 거대한 칼데라를 비추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치열한 생존게임이 시작된다. 사자, 표범 등의 육식동물은 사냥을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초식동물들은 사방을 경계하느라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약육강식의 세계
흔히 지프를 타고 동물을 찾아다니는 것을 사파리 투어라고 하는데, 응고롱고로에서는 ‘게임 드라이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동물을 찾는 방문객과 자신의 안전을 위해 몸을 숨기는 동물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이 흡사 쫓고 쫓기는 게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게임 드라이브는 일출부터 일몰까지만 허용되며 지정된 차량에서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이토록 까다로운 규정을 두는 이유는 관람객과 희귀 동물들을 동시에 보호하기 위해서다.
천에 아프리카의 풍경을 그려 파는 현지 기념품. 가격은 보통 미화 20∼30달러 수준이다.
특히 사자와 코끼리, 솔개 등에게 인간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일종의 공생관계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어떤 사자들은 아예 게임 드라이브 차량 옆에 다가와 사람들의 생김새를 ‘관람’하듯 두리번거리곤 한다. 이들에게는 게임 드라이브 차량이 ‘인간이라는 희귀동물을 실은 이동식 전시대’인 셈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새들은 사람을 친구처럼 여기는 것 같다. 독수리와 솔개 등은 관광객이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식사시간을 기다린다. 관람객이 식사를 하고 음식을 남겨주기를 기다릴 만큼 한가하지는 않은 이들은, 사람들이 음식을 꺼내 손에 드는 순간 잽싸게 날아와 음식을 낚아채 사라져버린다.
전통생활 고수하는 마사이족
법적으로 자연보호구역에서 거주할 수 있는 사람은 오래 전부터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았던 마사이족뿐이다.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는 방문객 숙소와 달리, 마사이족 마을과 삶의 방식은 옛 모습 그대로다.
일부 청소년과 노인들 중에 동물관리를 담당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소한 집안 일부터 아이를 키우는 일까지 일상은 모두 여성들이 담당하고 남자 전사들은 사냥 외에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의식주도 거의 변한 것이 없다. 난방과 조리에 사용하는 연료 역시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하고, 동물의 피와 젖을 짜 즉석에서 마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자연보호구역 내에 서식하고 있는 코끼리가 먹이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왼쪽) 자신들만의 구역인 하마 풀에서 휴식을 즐기며 하품하는 하마들(오른쪽)
동물 가죽을 이용해 전통 문양으로 장식한 기념품
얼룩말과 사자도 갈대숲에서 잠들고
거대한 분화구 너머로 해가 지기 시작하면 붉은 노을이 넓은 초원을 감싼다. 낮 동안 피말리는 추격전을 벌였던 얼룩말과 사자도 갈대숲 어느 사이엔가 누워 달콤한 휴식을 취할 시간이다. 수천년 동안 자신들의 전통과 풍습을 고스란히 이어온 마사이 마을에도 어둠이 밀려온다. 응고롱고로에서 보내는 밤은, 인간과 동물 그리고 대지와 초원이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함께 어우러지는 태초의 느낌이 온몸으로 밀려오는 황홀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