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삼 열풍이 거세다. 심마니는 물론이고, 학생·주부 가릴 것 없이 산으로 산으로 향한다. 여기저기서 산삼을 캤다는 소식도 무성하다.
- 비싼 값을 치르고 선물한 산삼이 실상은 장뇌삼이었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들린다. 산삼이 갑작스레 흔해진 건가, 세인의 눈이 유독 밝아진 건가. 요지경을 방불케 하는 산삼 열풍 백태.
그런데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무엇이 진짜 산삼이고 또한 아닌가. 산삼은 어떤 경로를 통해 어디로 팔려나가는가. 산삼의 진위 여부도 과학적으로 감정해낼 수 있을까…. 산삼에 대해 냉철히 따져봐야 할 필요성은 무르익은 듯하다.
시중 산삼 90% 이상 장뇌삼
결론부터 말하면, 요즘 산삼의 처지는 ‘풍요 속 빈곤’이다. 경력 오랜 심마니들은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산삼의 90% 이상이 장뇌삼 또는 유사 산삼이라 단언한다. 진짜 산삼으로 통하는 이른바 천종(天種)산삼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30년 경력을 지닌 한 심마니의 말부터 들어보자.
“천종산삼은 전국을 통틀어도 1년에 20∼30뿌리가 나오기 어렵다. 그만큼 귀하다. 그 외에 산삼이라고 하는 것들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보면 된다. 과거부터 산삼 장사는 ‘전국구 장사’였다. 강원도에서 산삼이 많이 나긴 하지만 그게 어디 강원도에서만 소비되나. 요즘 산삼 많이 캔다고 하는데 ‘거품’이 많이 섞여 있다.”
심마니들의 산삼 분류는 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토양 등 자생지의 여건에 따라 천종(天種), 지종(地種), 인종(人種) 하는 식이다. 천종은 산삼씨가 자연적으로 떨어져 성장한 산삼, 지종은 새들이 산삼씨를 먹고 이동한 후 산중에 배설해 생겨난 삼(蔘), 인종은 사람이 인공적으로 산삼씨를 뿌려 자라난 삼을 각각 뜻한다. 심마니에 따라선 지종을 자연산 장뇌라고도 부르는 등 용어도 제대로 통일돼 있지 않다.
그러나 대체로 산삼은 깊은 산속에서 자생한 천종산삼과 심마니들이 산삼씨를 채취해 산삼이 자생할 수 있을 만한 곳에 심어 자연상태에서 수십년간 양생시킨 장뇌삼(長腦蔘 : 산에서 기른 삼이라 하여 산양삼(山養蔘)이라 불리기도 한다)으로 대별할 수 있다. 장뇌삼은 천종산삼에 비해 뇌두(腦頭 : 산삼 몸통과 줄기 사이에 기린 목처럼 길게 뻗은 부위로 산삼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함)가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마니들은 잎과 줄기 수에 따라 산삼을 분류하기도 한다. 산삼은 성장속도가 느리다. 3개의 잎으로 발아하여 5개의 잎으로 발전하는데 보통 4∼5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이 5개의 잎을 심마니들은 1구라 부른다. 세월이 갈수록 산삼은 싹대에 줄기가 갈라져 2구(5개의 잎이 붙은 줄기가 2개로 모두 10개의 잎), 3구, 4구, 5구, 6구 등으로 자라난다. 특히 7구는 ‘두루무치’, 8구는 ‘동자삼’으로 부른다. 그러나 6구 산삼은 간간이 나오지만, 아직 두루무치나 동자삼을 직접 캤거나 봤다는 심마니는 없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500년 묵은 산삼을 선물받아 먹었다는 이야기가 구전(口傳)되고 있지만, 오늘날 그와 같은 산삼은 그야말로 ‘전설의 고향’에서나 등장할 법한 상상 속의 산삼일 뿐이다. 실제로 심마니들은 가장 오래된 산삼이래봐야 100∼200년근으로 본다.
수요는 있는데 산삼은 귀하다 보니 최근엔 중국산 삼이 보따리상을 통해 밀수입돼 불법유통된다. 산삼은 본래 한국, 중국, 러시아 극동지역 등지에서 주로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 지역과 기후가 비슷한 미국, 캐나다 등 북미지역에서 캔 삼들까지도 시중에 나돈다. 이들 삼에서도 진짜 천종산삼을 찾기란 지극히 어렵다.
탈북자 출신의 한의사인 서울 백년한의원 석영환(39) 원장은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산삼의 절대 다수는 장뇌삼이다. 북한산이라며 파는 것들도 중국산이 대부분”이라며 “북한에서도 천종산삼은 희귀하다”고 말한다. 그는 북한에 있던 1995년 당시 청암산연구소(일명 김일성장수연구소)에서 6개월간 일한 적이 있는 데다 산삼을 주원료로 몇가지 한약재를 발효시켜 태고환(太古丸)이란 약까지 만들고 있어 다른 한의사들과 달리 산삼을 자주 다룬다.
결국 요즘 유통되는 산삼은 대개 장뇌삼이거나 유사 산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도 산삼 성분을 넣었다는 여성용 화장품이 시판되고, 몇몇 바이오벤처는 천종산삼 체세포를 이용해 조직배양했다는 산삼 부정근(산삼 뿌리 부분) 제품들을 만들어낸다. 과연 천종산삼도 ‘풍년’인 것일까.
산삼 가격도 들쭉날쭉이다. 100년 이상 묵은 천종산삼은 1억원대를 호가한다. 지난해 2월 124년근으로 감정받은 천종산삼의 경우 한 70대 남성이 1억원에 구입해갔다. 지난 6월 한 약초꾼이 캐낸 산삼 21뿌리(170년근 추정 산삼 2뿌리 포함)는 7억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통상 산삼 가격은 산삼의 나이, 중량, 모양, 채취지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따진다. 이를테면 똑같은 100년근 산삼이라 하더라도 이런 기준에 따라 300만원이 될 수도 있고 3000만원을 호가할 수도 있는 것. 흔히 ‘산삼 가격은 임자 만나기에 달렸다’고들 하는데, 이는 워낙 산삼 가격이 천차만별인 데서 나온 말이다. 그 이유는 희소하고 규격화되지 않은 산삼 자체의 특성과 은밀하고도 독특한 산삼 유통 메커니즘 때문이다.
그러면 산삼 유통 경로는 어떨까. 한 산삼수집상이 털어놓은 경로는 이렇다.
대체로 산삼은 2가지 경로를 통해 팔려나간다. 그 하나는 소비자가 심마니와 직거래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심마니들이 캐낸 산삼을 산삼수집상이 사들인 뒤 이를 보통 ‘일꾼’이라 부르는 산삼 위탁판매업자에게 판매를 부탁하는 케이스다. 수집상이 일일이 판로를 개척하기 힘들기 때문에 새 ‘일꾼’을 구할수록 판로는 넓어진다. 통상 수집상은 위탁판매업자에게 산삼을 얼마에 팔아달라고 가격을 제시한다. 그러면 위탁판매업자는 어떻게 이익을 낼까. 위탁판매업자는 수집상이 제시한 가격보다 조금 더 올린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산삼을 팔아 이문을 남긴다. 때문에 위탁판매업자는 자신에게 산삼을 대주는 수집상에게도 고객 명세를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번째 경로의 경우, 심마니들은 수집상에게 산삼을 팔아야 하니 소비자와 직거래할 때처럼 높은 가격을 받지 못하고, 소비자 또한 수집상과 위탁판매업자 등 3∼4단계를 거친 산삼을 사게 되므로 직거래 때보다 비싼 값에 산삼을 산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수집상들의 말은 또 다르다. 심마니와 소비자가 직거래할 경우 소비자는 산삼을 감정할 능력이 없으므로 오히려 심마니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 반면 수집상을 거칠 경우 1차적으로 산삼 감정이 이뤄지므로 소비자는 심마니와 직거래할 때보다 훨씬 싼 가격에 산삼을 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그들대로 심마니보다는 위탁판매업자가 파는 산삼에 가짜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찌됐건 산삼에 무지한 소비자들만 ‘봉’인 셈이다.
25년의 심마니 경력을 가진 경기도 가평군 북면의 산삼수집상 이상민(45)씨는 “평생 한 번도 못 캐는 심마니도 있을 만큼 천종산삼은 귀하다. 경력 오랜 심마니들도 잘해야 1년에 2∼3건 정도 천종산삼을 거래할 뿐”이라며 “요즘 산삼이라고 쏟아지는 것들은 대부분 심마니들이 20여년 전부터 ‘후일 다리품값이라도 벌충하자’는 뜻에서 산을 다닐 때 산삼씨를 심어둔 것들이 자라난 장뇌삼으로 보면 된다”고 말한다.
산삼 거래는 현금 결제가 원칙. 따라서 심마니는 물론 수집상들 또한 산삼 판매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는다. 하지만 드물게 약초가게를 운영하며 산삼을 취급하는 일부 수집상들은 근래 산삼값을 신용카드로 결제하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어 세금을 내기도 한다.
가을엔 산삼 가격이 조금 오른다. 보관기간이 2개월 가량에 불과한 여름 산삼과 달리 가을에 캔 산삼은 이듬해 봄까지 7개월 정도 보관이 가능한 데다 산삼 뿌리에 영양분이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산삼에 정해진 가격이 없다 보니 ‘산삼 인플레’ 현상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산삼과 장뇌삼은 보통 20∼30년근은 돼야 거래가 이뤄지지만, 최근엔 산삼수집상일 경우 뿌리당 2만∼3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10년근 미만 중국산 장뇌삼이 소비자들에겐 국내산 장뇌삼으로 둔갑해 10만∼30만원씩에 팔리기도 한다.
현역 의원도 심마니협회 자문위원
현재 산삼업계가 추산하는 전국의 직업적인 심마니는 대략 1000∼2000명. 산삼 관련단체는 크게 3개가 있다. 한국심마니협회, 한국산삼협회, 한국산삼감정협회 등이다.
1999년 12월 결성된 한국심마니협회(회장 박만구)는 260여 명의 심마니가 회원으로 가입한 일종의 이익단체. 그러나 아직 사단법인화하진 못하고 있다. 관련기관인 산림청이 사단법인화를 불허하기 때문. 산림청 사유림지원과 관계자는 “현재 러시아산 산삼은 한국도 가입해 있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상 국제보호종으로 등재돼 있다”며 “이런 국제적 동향 때문에 심마니협회를 사단법인화해줄 경우 한국정부가 산삼 캐는 것을 방조한다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어 허가해주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산삼협회가 지난해 10월 개최한 산삼 공개경매 행사
이유야 어찌됐건 정치인들과 산삼은 그리 멀지 않은 사이인 듯하다. 2002년 1월 결성된 한국산삼감정협회의 회장도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석무씨다. 산삼감정협회측은 “박회장이 산삼과 깊은 인연은 없지만, 무료감정을 통해 가짜 산삼의 유통을 근절하려는 감정협회의 창립 취지가 좋다며 협회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라 밝힌다.
농업법인 형태로 2000년 11월 창립한 한국산삼협회(회장 채준기)는 산삼 직거래 외에도 2001년부터 매년 10월에 산삼 공개경매 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도 10월11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3번째 경매행사를 개최할 예정. 그러나 경매행사장에서 고가의 산삼이 팔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산삼협회 이인식(49) 사무국장은 “진짜 고가의 산삼을 원하는 사람들은 신분 노출을 꺼려 경매 때는 물건만 보고 간다. 그 뒤 매스컴의 관심이 잠잠해지면 나타나서 조용히 사가거나 개인적으로 찾아온다”며 “요즘의 산삼 열풍은 지난 봄에 천종산삼을 캔 사례 2∼3건이 언론에 잇따라 보도되면서 로또복권처럼 ‘돈이 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커진 데다 외환위기 때보다 경기상황이 안 좋다고 하니 ‘대박’을 노리고 산삼을 찾아 산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분석한다.
산삼 1인분은 1억원대
그렇다면 이 많은 삼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산삼은 말 그대로 만병통치약일까.
인천 K한방병원 C한의사는 “보통 난치병 환자들이 찾는다. 말기암 환자이던 한 전직 장관은 죽기 전에 꼭 한 번 복용해보고 싶다며 산삼을 구입해 먹었지만, 안타깝게도 다음날 결국 사망한 사례도 있다”며 “2001년 종영된 KBS 1TV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견훤의 부친 ‘아자개’가 1000년 된 산삼을 먹고 기사회생한 뒤 장수했다는 내용이 방영되자 VIP 말기암 환자들이 너도나도 산삼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해프닝마저 있었다”고 털어놨다.
일반적으로 산삼은 인체의 기력을 크게 돋워주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산삼과 오래된 장뇌삼의 성분 차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산삼은 씹어서 생식하는 것이 통례. 심마니들은 한 사람이 3냥(1냥은 37.5g)은 먹어야 산삼의 약효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천종산삼 1냥이 3000만원대를 호가하니 3냥을 다 먹으려면 1억원 가량이나 드는 셈이다.
그러나 산삼이 단순히 건강관리나 치료 목적으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지인(知人)들로부터 산삼을 구입해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는 한 한의사의 말.
“개인적 경험에 비춰볼 때 산삼의 30∼40% 가량은 구입자 본인이나 그 가족이 건강관리용으로 소비한다. 나머지 60%는 거의 다 선물용이었다. 주로 중소기업 사장들이 산삼을 ‘선물용’으로 사가는 경우가 많은데, 선물의 ‘종착지’에 대해선 스스로 말하기 전엔 알 수 없다. 처음부터 선물용으로 장뇌삼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은 편이다.”
이 때문에 산삼이 신종 뇌물로 각광받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돈다. 선거철이면 가격이 오른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산삼 판매업자들의 말은 다르다. 30여 년간 심마니 생활을 하다 현재 강원도 원통에서 산삼 위탁판매업을 하는 김덕수씨는 “1980년대만 해도 개인사업자들이 고위층에게 산삼을 상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옛날 얘기”라며 “천종산삼은 구입자 본인이 건강관리 차원에서 먹거나 노부모에게 드리는 경우가 많지, 요즘 선물용으로 사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몇십, 몇백만원짜리 장뇌삼을 선물용으로 사가는 경우는 가끔 있다”고 잘라 말한다. 과연 그럴까.
산삼 유통 자체가 은밀한 만큼 판매된 이후의 산삼 경로를 추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산삼 선물’의 존재를 방증하는 정황은 찾을 수 있다. 기자는 8월5일 인터넷 검색사이트 ‘엠파스’에서 ‘산삼’이라 입력한 뒤 모니터에 뜬 10여 개의 산삼유통 사이트 중 게시판을 운영하는 6개 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이메일 주소도 남겼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상급자에게 선물을 할까 합니다. 그런데 산삼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그리고 제 신분(공무원)에 고가의 선물을 하는 게 좀 망설여지네요. 혹시 선물했다가 괜히 역효과만 나는 것 아닌가 해서요. 자기 상관에게도 선물하는 사람이 있나요? 산삼을 자기 돈 주고 사 먹는 사람은 재벌들밖에 없다던데…. 산삼 가격을 알고 싶습니다. 메일 주시면 연락처를 가르쳐 드릴 게요. 생각하는 가격대는 1000만∼2000만원 가량입니다. 구체적인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당일 바로 답변 메일이 3통이나 왔다. 모두 “진짜 산삼을 팔고 싶다”는 내용. 그 중 한 통의 내용은 이렇다.
‘안녕하세요. 저의 홈을 방문하여 주시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선 전화로 통화부터 하여야 될 것 같군요. 전화는 01X-9XXX-2XXX로 연락을 주세요. 가격은 그 가격대면 됩니다. 그리고 윗분한테 선물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상당수 있습니다. 대부분 선물용으로 사 가시는 분들은 그 가격이면 떳떳한 선물이 됩니다. 그리고 받으시는 분은 상당히 만족해하시고 충분한 효과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중략)… △△산삼 운영자 올림.’
한국심마니협회 박석화 총무는 “누구라 밝힐 수는 없지만, 가끔은 선물받은 산삼을 감정받으러 오는 사람도 있는데, 이 경우 장뇌삼이나 중국산 삼으로 드러나 선물한 사람이 톡톡히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안 준 것만 못한 셈이다. 심지어 선물받은 것을 되팔려고 문의하는 경우마저 있다”며 “그러나 가을철, 명절, 연말 등을 제외한 다른 시즌에 산삼가격이 등락하는 경우는 없다”고 덧붙인다. 그에 따르면 재벌들은 건강관리 차원에서 고가의 천종산삼을 찾는 반면 중소기업인들은 주로 거래처 선물용으로 100만∼200만원 정도의 중국산을 다량 구입할 때가 많다는 것. 예전엔 ‘한보그룹에 삼을 대량으로 넣었다’는 얘기도 나돌았다고 한다.
실제로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산삼 선물 공세가 없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은 지난 2월 한 50대 개인사업자에게서 산삼 선물을 제의받고 거절한 일이 있다. 이 50대는 이총장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로 지역구 주민도 아닌데, “사무총장이 고생하시는 것 같다”면서 170년 묵은 산삼이라며 선물을 하려 했고,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전해달라며 또다른 산삼을 내밀더라는 것. 이총장의 한 측근은 “대가성이 없다고는 하지만 산삼을 받을 경우 모양새가 안 좋은 데다 산삼에 대해 조금 알아보니 캐나다산까지 유통된다길래 거절했다. 만일 받았다가 혹 가짜이면 무슨 망신이겠는가. 감정해본 뒤 다시 가져오라고 할 수도 없어 결국 받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가끔 봉삼(鳳蔘)이 산삼으로 둔갑하는 일도 있다. 봉삼은 봉황이 날아가는 모양을 한 산삼이라 하여 귀하게 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봉삼은 산삼이 아니라 산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약재의 하나인 백선피(白鮮皮)를 일컫는다.
한국민약연구회 홍진수 회장은 “백선피는 약초로 분류되는데, 절터에서 많이 자라는 탓에 ‘스님산삼’으로도 불린다. 날로 먹지 않고 주로 술을 담가 먹는데 가격도 5000원 정도로 매우 싼 편”이라며 “가끔 일반인들이 ‘귀한 봉삼을 캤다’며 들고 오는 경우가 있는데 ‘별 값어치가 없다’고 말해주면 무척 황당해한다”고 말했다.
“5共 때 헬기로 인삼씨 뿌렸다”
요즘 특히 산삼이 흔해진 것으로 여겨져서일까. ‘박정희 정권 때 산림청이 헬기로 산삼씨를 여러 산에 뿌렸다’는 믿기 어려운 소문도 들린다. 산림청은 “오래 전 일이라 확인이 안 된다”고 말하지만, 직접 씨를 뿌렸다는 사람까지 있다. 소문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기자는 소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30여 년간 영주 풍기인삼조합에서 전무와 조합장을 지냈던 김계화(74)씨로부터 소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풍기인삼으로 유명한 영주 풍기지역에 인삼 재배가 시작된 것이 조선조 중종 때로,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 선생이 중국이 공물로 요구하는 산삼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당시 산삼이 많이 자생하던 소백산 인근 풍기지역에서 산삼종자를 채취해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했을 때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소백산에서 산삼 구경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1982년이던가 이듬해던가, 어쨌든 그때쯤부터 몇 년간 인삼축제기간 중 행사의 하나로 헬기를 동원해 연간 한 가마 정도씩 인삼씨를 소백산 일대에 뿌렸다. 산에 뿌리고 오라며 학생들 손에 인삼씨를 쥐어주기도 했다. 요즘 간혹 소백산에서 15∼20년쯤 된 장뇌삼이 나오는데 당시 뿌려둔 인삼씨가 그동안 자연상태에서 자라난 것 아닌가 싶다.”
어쨌든 산삼을 분간하기란 쉽잖은 일. 산삼을 판별하지 못하는 한의사도 수두룩하다. 한 심마니가 전하는 사례.
“재작년 경기도의 한 산에서 나무하러 온 서울 사람들이 ‘이상한 풀이 있어 캐봤더니 산삼 같다’며 인근 한의원 원장에게 감정을 해달라고 했는데, 판별 못하겠다고 해서 나한테 감정을 하러 왔었다. 그런데 턱 보니까 삼도 아니더라. 산삼이 아니라 개당귀였다. 개당귀는 약재로도 못쓰는 당귀를 말한다.”
산삼 감정은 거의 육안검사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왕왕 소비자들을 직접 데리고 다니며 즉석에서 산삼을 캐주는 이색 산삼마케팅을 하는 심마니들도 있지만, 이중엔 사기행위도 있다는 게 산삼을 잘 안다는 사람들의 전언. 즉 심마니 자신이 몇 년 전 은밀히 산삼씨를 뿌려뒀던 산속의 ‘텃밭’으로 소비자들을 안내한 뒤 마치 전혀 새로운 천종산삼을 발견한 것처럼 속여 파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 또 인삼씨를 산에서 키웠거나 3∼4년근 인삼이나 중국산 장뇌삼을 산에 이식했다 캐내 국내산 장뇌삼이라고 속이는 경우마저 있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그야말로 산삼을 ‘농장’에서 ‘재배’하는 셈이다.
DNA검사로도 천종·장뇌 구분 못해
그러나 산삼에 대한 과학적 감정시스템은 아직 전무하다. 공인된 감정기관도 없을 뿐더러 산삼 관련 연구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심마니협회는 산삼 감정 의뢰가 들어오면 협회 내 감정위원(심마니 경력 15년 이상)들이 육안검사를, 한국산삼협회도 자체 감정위원단의 육안검사와 잔류농약검사 등을 통해 산삼의 나이와 진품 여부를 가린다.
한국산삼감정협회 역시 심마니들이나 산삼을 직접 캔 일반인의 의뢰를 받아 감정을 해주고 있다. 산삼감정협회 정형범(46) 감정위원장은 “육안검사는 잔뿌리와 뇌두 등 산삼의 이모저모를 세밀히 살펴 감정하는 것으로 대강 산삼의 나이와 외국산 여부 등을 판별할 수 있다. 중국산의 경우 모양은 예쁘지만 잔류농약검사를 해보면 거의 100% 농약성분이 검출된다. 그래도 가끔은 도저히 판별 불가능한 삼들이 나오기도 한다”고 털어놓는다. 결국 모든 산삼 감정 결과는 전적으로 감정인 개인의 경륜에 의존하는 ‘추정치’일 뿐이라는 말이다.
이와 관련, 경희대 생명과학부 양덕춘 교수(한방재료가공학)팀은 올해초 산삼과 재배인삼을 구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산삼 특유의 단일염기서열(SNP)의 존재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유전자 시발체 제작에 성공한 것. 쉽게 말하면 산삼 DNA 중 인삼 DNA와 다른 염기서열을 찾아내 산삼임을 가려내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 기술은 산삼과 장뇌삼을 구별할 수준엔 이르지 못한 상태다. 양교수는 “장뇌삼의 경우 원종자가 어디서 유래하는지가 불분명해 산삼과 장뇌삼을 구분하기 어렵다”며 “향후 산삼 DNA칩이 완성되면 그 차이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 말한다.
지난해 10월 산삼협회는 한국산 자연산삼, 즉 천종산삼이 시중에서 거래되는 산삼의 3.3%에 불과하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산삼 180뿌리를 대상으로 한 이 조사도 육안검사와 중국산을 가려내기 위한 잔류농약검사만 거쳤을 뿐, DNA검사까지 거쳤던 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천종산삼만의 고유한 DNA에 관한 아무런 데이터도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종종 진위 시비도 벌어진다. 1998년 인공재배한 6∼7년생 장뇌삼인 걸 알면서도 15∼25년생 산삼이라며 허위 감정인증서를 재배업자에 발급해주고 모 TV홈쇼핑사의 산삼 판매 광고방송에 출연해 소비자에게 거액의 피해를 입힌 K대 한의학과 교수 2명이 적발되기도 했다.
“장뇌삼 정책적으로 육성하라”
희귀한 산삼 대신 장뇌삼을 정책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영채(76)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중앙전매기술연구소와 고려인삼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것을 계기로 40여 년간 인삼과 산삼을 연구해온 그는 지금도 강원도 원주의 ‘치악산 고려산삼연구소’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한박사는 “전국토의 68%가 산지이고, 특히 강원도는 73%가 산지”라며 “산지를 자원화하기 위해서라도 시중에서 고가에 팔리는 장뇌삼을 정책적으로 재배해 전국의 산지를 장뇌삼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전대 한상수(66) 교수(국문학)는 류배근씨(민주당 정대철 대표 특보) 등 같은 교회에 다니는 신도끼리 산삼 동호회를 만들어 3년째 매년 5∼10월 산삼을 캐러 다닌다. 다음은 한교수의 얘기.
“산삼은 산신의 계시를 받아 심산유곡에서만 캘 수 있으며 굉장히 비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유통도 은밀하다. 그러다보니 일반인들은 그동안 산삼을 캘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인삼을 재배했던 지역이면 대부분 산삼이 나온다. ‘천종’이니 ‘지종’이니 하는 용어들은 산삼 등급화를 위해 일부 심마니들이 지어낸 말일 뿐이다. 산삼이 자생하려면 물과 햇빛, 토양, 공기 등 여러 생육조건이 맞아야 한다. 즉 100년 된 산삼이 나오려면 100년 이상 된 숲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6·25전쟁 이후 몽땅 벌거숭이산이 되지 않았었나. 중요한 건 인삼씨라도 자연상태에서 오래 자라면 토양에서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한 것이고, 그것을 캐내 먹으면 비록 10년쯤 된 장뇌삼이라도 건강에 좋다는 사실 아니겠는가. 돈 없는 사람들에겐 천종인지 장뇌인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의 말은 ‘산삼 대중화’란 측면에서 보면 한영채 박사의 견해와 맥을 같이한다. 일반인들도 산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자는 데 의미가 있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산삼’이라 불리는 상당수가 진짜 천종산삼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면 어렵사리 산삼을 손에 쥔 이들의 표정이 마냥 흐뭇할 수만 있을까. 한 산삼수집상이 들려주는 에피소드는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10년 전쯤이다. 한 50대 남자가 고가의 산삼을 사러 왔다. 물건을 보여줬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산삼과 자신이 가져온 1억원어치 현금다발을 번갈아 쳐다보며 한참을 망설이더라. 결국 그는 산삼 대신 돈다발을 택했다. 돈의 약발은 산삼보다 강했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