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검과 차별화해야 검찰이 산다”
- “이익치의 역할을 주목하라”
- 권노갑 비자금은 특검수사와 상관없는 것
- 김영완, DJ 통치자금 관리했나
그러나 특검에 이은 검찰 수사는 가슴 한구석에 초라하게 웅크리고 있던 마지막 자존심을 여지없이 뭉개버렸다. 같은 비자금이라도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건네졌다는 150억원은 ‘정상회담 준비용’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 드러난 200억원의 비자금은 부도덕한 기업가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정경유착의 증표일 뿐이었다.
정몽헌 회장이 자살한 직후 검찰은 한 가지 거짓말을 했다. KBS가 “대검 중수부가 박지원씨와 관련된 150억원 이외에 별도의 현대 비자금 수사를 벌였고 정몽헌 회장을 추궁해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확인했다”고 보도하자 사실과 다르다며 강하게 부인했던 것.
하지만 이같은 부인은 검찰 수사가 정회장의 자살을 초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차단하기 위한 검찰의 연막이었다. 8월11일 권노갑씨를 긴급체포하면서 현대 비자금 수사 사실을 공개한 대검 중수부는 정몽헌 회장을 세 차례 불러 이와 관련된 조사를 벌였다고 뒤늦게 시인했다.
이익치 진술 앞에 무너진 듯
대검 중수부 수사상황을 알 만한 위치에 있는 검찰 관계자는 정몽헌 회장이 자살한 직후 기자에게 “정회장의 자살은 검찰의 현대 비자금 수사에 대한 항거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익치의 역할을 주목하라”고 귀띔했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으며 그것이 현대 비자금 수사의 결정적 단서가 됐다는 얘기였다. 그는 “정회장도 이익치 진술 탓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비자금 관련 사실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 주변에 알아본 결과 이씨가 여러 차례 검찰에 비공식적으로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는 정황이 감지됐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검찰은 이씨가 현대 비자금 수사의 주요 참고인 자격으로 몇 차례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검찰은 권노갑씨가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하자 이씨를 불러 대질신문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이씨의 진술이 현대 비자금 수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미뤄보면 정몽헌 회장의 자살은 위 검찰 관계자의 말대로 대검 중수부의 현대 비자금 수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또 정회장이 비자금 관련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데는 현대 비자금을 관리했던 이익치씨의 진술이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특검수사 과정에 관심을 끌었던 이익치씨와 현대가(家)의 악연이 검찰 수사에까지 이어진 셈이다.
강금실 장관 말 들었다면…
정몽헌 회장을 자살로 내몬 현대 비자금 수사는 어떻게 시작됐던가. 애초 검찰의 수사 대상은 이것이 아니었다. 검찰 수사의 명분이 된 것은 특검팀이 추적하다 중단한, 이른바 150억원 비자금의혹사건이었다. 특검 수사 끝물에 포착된 이 부분을 두고 정치권은 특검수사기간 연장 공방을 벌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사안”이라며 특검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하자 한나라당은 새로운 특검팀 구성을 밀어붙였다. 민주당은 150억원 비자금에 국한된 것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었으나 한나라당이 수사대상을 ‘(대북송금과 관련한) 청와대 국정원 금감원 등의 비리의혹사건’으로 확대하자 “대북송금 재수사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거부했다. 결국 한나라당이 발의한 대북송금 재특검법은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검찰의 적극적 수사의지다. 대북송금 특검수사가 종료된 것은 6월29일. 바로 다음날 검찰은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과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김재수 현대경영전략팀 사장,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 등 현대 관계자들을 출국금지 조치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150억원 의혹에 대한 제2특검이 논의되고 있어 수사 주체가 정해질 때까지 신병 확보가 필요해 출금 조치한 것”이라며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때부터 현대 비자금 수사에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7월6일 검찰은 송두환 특검팀에서 못다 밝힌 150억원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 관련 금융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계좌추적에 나섰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이 발의한 재특검법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것이 7월9일이므로 검찰이 그 전에 계좌추적을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오버 페이스’였다.
검찰은 재특검법이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할 것을 확신이라도 하듯 그 며칠 전 이미 중수부 1·2과를 주축으로 한 수사팀을 구성해 특검팀에서 넘겨받은 자료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이것이 현대 비자금 수사의 시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특검수사기간 연장 논란에 대한 강금실 법무장관의 소신이다. 강장관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의견에 맞서 “특검수사는 특검이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며 수사기간 연장에 찬성했다.
만약 그때 노대통령이 강장관의 건의대로 특검수사 기간 연장 요청을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특검의 수사범위는 마땅히 박지원씨가 현대측으로부터 받았다는 150억원 비자금의혹으로 한정됐을 것이다. 물론 대검 중수부는 수사에 참여할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현대 비자금의 실체는 영영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당연히 정몽헌 회장이 자살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특검 치다꺼리로는 성에 안 차”
이렇게 보면 노대통령의 특검 연장 불가 결정은 현대에 크나큰 불운으로 작용했다. 겉보기엔 현대에 이로울 듯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큰 화를 불렀기 때문이다. 당시 정회장이 검찰 수사를 우려해 특검 연장이 이뤄지도록 정치권에 로비했다는 얘기가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불운하기는 4·13총선 때 현대 비자금을 끌어들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차라리 한나라당이 발의한 대북송금 재특검법에 찬성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검찰이 이토록 일을 크게 벌일 줄 알았더라면 말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된 셈이다.
수사진행상황을 보면 애초 검찰의 수사 착수 명분이었던 150억원 비자금 의혹사건은 특별한 진척도 없고 우선순위에서도 밀려나 있다. 미국에 도피중인 김영완씨로부터 이와 관련된 자술서를 간접 전달받은 게 성과라면 성과다. 언론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카메라 초점이 박지원씨에서 권노갑씨와 민주당으로 옮겨간 것이다.
검찰은 현대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 “정경유착의 관행을 없애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이는 기업 비자금 수사의 긍정적 측면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 이면엔 특검과 차별화하려는 속셈이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검찰이 비자금 수사에 승부를 건 것은 특검보다 못할 수 없다는, 특검 수사의 치다꺼리는 하지 않겠다는 자존심과 오기의 발로라는 것이다.
여기에 그동안 수시로 검찰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 덧붙여졌으리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아울러 ‘정치 검찰’의 오명을 벗는 계기로 삼겠다는 검찰 수뇌부 또는 수사팀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도 있다.
사실 대북송금 특검은 새 정권 출범을 앞두고 정치권을 의식한 검찰이 스스로 수사 착수를 거부한 탓에 탄생한 것이다. 특검이 언론의 각광을 받으며 엄청난 수사성과를 낸 데 대해 검찰은 국민의 정부 시절 진행됐던 세 차례의 특검 수사 때와 마찬가지로 자괴심을 느꼈을 법하다.
이와 관련해 대검의 고위관계자가 수사 초기 사석에서 “검찰이 살기 위해서는 150억원이 아닌 새로운 비자금 수사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는 전언은 주목할 만하다. 특수수사통인 검찰의 한 중견 간부는 “검찰 입장에선 특검 밑닦이 노릇을 하기 싫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특검수사와는 다른 성과를 내고 싶었을 것이고 그것이 추가 비자금 수사로 나타난 것”이라고 조심스레 분석했다. 정회장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함승희 의원이 “검찰이 특검수사 내용과 다르게 국민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한 건 올리기’에 혈안이 돼 있었음이 감지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대검 수사내용은 우리와 상관 없다”
이처럼 비자금 수사의 의도를 문제삼는 시각에 대해 대검의 한 고위간부는 이렇게 반박했다.
“법대로 수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걸리면 걸리는 대로 다 수사한다는 것이 요즘 검찰 분위기다. 비자금이라는 건 결국 한 구멍에서 나오는 것이다. 150억원이나 추가 비자금이나 한 통속 아니냐. 150억원의 행방을 쫓는 수사를 하다 보니 다른 비자금의 꼬리가 잡힌 것이고, 검찰이 이를 수사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검찰은 “특검에서 넘겨받은 수사자료가 단서가 됐다”며 추가 비자금 수사가 특검수사의 연장선에 있음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이는 다분히 정회장의 자살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비자금 수사가 검찰이 자체 기획한 것이 아니라 특검수사와 연결된 것이라고 하면 정회장의 죽음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정회장이 처음 소환된 7월26일에 이미 비자금 관련사실을 털어놓았다고 이례적으로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특검팀도 검찰과 마찬가지로 정회장 죽음이 특검수사와는 상관없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검팀은 정회장 자살 직후 특검수사가 정회장의 자살에 영향을 끼쳤다는 여론에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8월13일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에서 열린 고 정몽헌 회장의 삼우제에서 유족들이 고인에게 술을 바치고 있다.
대다수 언론은 검찰의 설명에 따라 특검의 계좌추적자료가 현대 비자금 수사의 중요한 단서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특검수사를 주도한 한 관계자는 이 같은 보도와 달리 “대검의 수사내용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물론 계좌추적자료는 대검에 다 넘겨줬다. 하지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권노갑 비자금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부분이다. 특검에서는 단서조차 없었다. 우리의 수사범위는 대북송금 부분에 한정돼 있었다. 거기에 추가된 것이 박지원씨가 정상회담 준비비용이라며 현대측으로부터 150억원을 받은 혐의였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 부분은 수사 막바지에 발견된 탓에 계좌추적을 하다 수사기간 만료로 중단되지 않았나. 우리가 추적한 것은 150억원어치 CD(양도성예금증서)의 세탁과정이었을 뿐이다. 대검이 찾은 비자금은 특검수사에서 나온 게 아니다.”
이 관계자는 정몽헌 회장에 대해 “입을 잘 열지 않은 편이지만 확인된 부분에 대해선 거짓말하지 않는 진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평했다. 그는 또 “정회장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조사를 받았으며 수사에 협조적이었다. 나중엔 오히려 특검팀에 고마워했다”며 정회장 자살을 특검수사와 연결시키는 일부 시각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형사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익치
수사통인 검찰의 한 간부도 “권노갑 비자금은 박지원 비자금과는 다른 돈”이라며 “박지원의 150억원에 대한 수사와는 관련 없는 별도 수사를 통해 밝혀낸 것으로 보인다”고 특검 관계자와 비슷한 시각을 드러냈다.
어쨌든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런 자살은 검찰의 과잉수사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정회장이 자살하기 전 세 차례나 불려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으며 특히 죽기 하루 전인 8월2일에 12시간이나 조사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잉수사 논란은 강압수사 논란으로 확대됐다.
정회장의 측근으로 역시 검찰 조사를 받았던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8월4일 아침 정회장의 사망현장에서 김용옥씨를 부둥켜안고 “오죽하면 저 모습이 되셨겠냐구. 검찰의 짓궂은 취조에 너무도 견디기 어려우셨던 거야. 해도해도 너무했던 거야!”라고 울부짖은 점도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했다. 정회장의 유서에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는 문구는 엄청난 자백에 따르는 후회와 갈등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대검의 고위간부는 과잉수사 또는 강압수사 논란에 대해 이런 견해를 내놓았다.
“조사를 하다 보면 매섭게 추궁할 수도 있다. 재벌회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조폭도 귀싸대기 한 대 못 때린다. 수사를 적극적으로 하면 과욕이라 하고 수사결과가 미진하면 수사의지가 없다고 비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지적이다.”
정회장의 자살 직후 수사팀은 한때 수사의지가 위축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도의적 책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정회장 사망에 대한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 속에 잠시 속도를 늦춘 검찰은 언론의 도움을 받으며 비자금 수사 재개의 분위기를 살렸다.
검사 시절 특수통이었던 한 변호사는 “옛날과 같은 강압수사는 거의 사라졌다”면서도 정회장의 자살이 검찰 수사와 관련됐을 개연성을 거론했다.
“강압수사가 아니었더라도 정회장은 충분히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재벌회장이 검찰에 출두해 그런 일로 조사 받는 것 자체가 수모 아닌가. 특검 수사내용이 사실이라면 정몽헌도 피해자로 볼 수 있다. 당시 권력실세인 박지원이 (돈을) 달라는 데 안 줄 수 있나. 보이지 않는 공갈에 뺏긴 게 아닌가. 또 당시엔 얼마나 친밀한 관계였겠나. 그런데 돈 받은 사실을 부인하니 정회장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수치심을 느꼈을 법하다. 그런 데다 검찰에 불려가 또 다른 비자금을 추궁당했으니….”
검찰의 현대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 가장 눈길을 끄는 사람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다. 검찰과 현대 주변에서는 이씨가 특검에서는 박지원, 검찰 수사에서는 권노갑이라는 ‘대어’를 낚는 진술을 한 데 대해 “비자금 배달사고로 검찰에 약점 잡힌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의 한 간부는 이익치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 “뇌물 전달자인 이익치가 형사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한 진술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의 진술 탓에 구속된 박지원씨는 이례적으로 구속 당일 그를 횡령 혐의로 고소하면서 배달사고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8월15일 구속된 권노갑씨도 “이익치가 조작했다” “이익치의 진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이다”라며 이씨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기자는 이런 의구심을 풀고자 이씨의 집에 며칠 동안 찾아가는 등 접촉을 시도했으나 이씨를 만나는 데 실패했다.
“아무 말 하지 않겠다”
특검수사 및 검찰수사에서 이익치씨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김영완씨다. 수사결과에 따르면 이씨가 정회장의 돈을 전달하는 심부름꾼 노릇을 했다면 김씨는 그 돈을 세탁하거나 보관하는 관리자 노릇을 했다. 박지원씨도, 권노갑씨도 모두 김씨의 손을 거쳐 현대측의 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DJ의 핵심 측근이다. 그에 따라 김씨가 DJ의 통치자금을 관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과거 정치권 비자금 수사에 관여한 경험이 있는 검찰의 한 간부는 “김영완이 워낙 많은 돈을 굴려 그의 계좌에 숨어 있는 정체불명의 돈이 통치자금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 간부에 따르면 박지원씨와 관련된 ‘150억원+α’의 용처가 특히 의심스럽다는 것.
정몽헌 회장이 자살한 후 현대가(家) 사람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을 비롯해 김재수 경영전략팀 사장, 강명구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등은 모두 인터뷰 제의를 거절했다. 특히 정몽헌 회장의 핵심 측근으로 정회장이 죽기 이틀 전 함께 술을 마신 강회장은 새벽에 집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와 마주치기까지 했으나 “아무 말 하지 않겠다”며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침묵하기는 유가족도 마찬가지다. 8월13일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정몽헌 회장 묘지에서 삼우제가 치러졌다. 고인의 동생인 정몽준 의원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함승희 의원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회장의 부인도 언론의 인터뷰 제의를 일절 거절하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죽은 자로부터 돈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박지원씨와 권노갑씨, 그리고 두 사람을 각각 구속한 특검과 검찰은 앞으로 법정에서 죽은 자의 침묵을 두고 꽤나 시끄러운 다툼을 벌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