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호

‘언론과의 싸움’보다 ‘국정 해결’이 시급하다

노무현 대통령 언론관에 대한 苦言

  • 글: 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siuk_nam@yahoo.com

    입력2003-08-21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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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과의 싸움’보다 ‘국정 해결’이 시급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이 조지고 있다”고 말한 8월2일의 2차 국정토론회에서 피곤한 듯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고 있다.

    지지난 8월13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자신이 관련됐던 장수천 사업 등과 관련한 의혹을 보도한 동아·조선·중앙·문화일보에 대해 각 5억원, 같은 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 김문수(金文洙) 의원에게는 1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이로써 노대통령은 자신이 관련된 사건으로 소송을 제기한 최초의 현직 대통령이 되었다.

    ‘변호사’ 출신의 노대통령은 소장에서 ‘김의원은 수개월간 사실과 전혀 다른 허위 내용으로 명예훼손 행위를 계속했으며 네 개 언론사들은 김의원의 신빙성 없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해 명예에 큰 손상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언론 협조 바랐던 역대 대통령들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등에 따르면 이 소송은 대통령 개인이 제기한 것이라 인지대 등의 비용(1105여만 원)은 노대통령이 부담했고 소송 대리인으로는 덕수 법무법인 소속의 변호사 다섯 명을 선임했으나 소송 업무는 청와대 조직인 법무비서관실에서 준비했다고 한다. 노대통령은 이들을 형사 고소하는 문제도 검토했으나 최종적으로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취임 초부터 ‘적대적’이라고 할 정도로 언론과 심한 갈등을 빚어온 노무현 대통령은 이로써 이전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언론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소송으로 언론을 길들이려는 것이냐’는 반발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 “나는 언론과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정권의 길이 따로 있고 언론의 길이 따로 있다”며 이미 자신의 뜻을 내비친 적이 있었다.

    이런 언론정책으로 노대통령은 취임 후 6개월간 언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허니문 기간’ 없이 바로 언론과 싸우느라 요란한 마찰음을 내왔다. 정부와 언론의 대립상태는 여러 가지 점에서 우려스럽다.

    특히 ‘언론의 압력에 굽히지 않는 대통령’을 표방한 노대통령이, 언론의 비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불신감과 적대감을 갖고 대하는 것이 문제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동아’ ‘조선’ ‘중앙’의 3대 신문을 ‘족벌신문’으로 비하하며, 그 논조를 ‘수구 기득권 세력의 개혁 발목잡기’로 매도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1공화국에서부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까지 역대 정권의 언론정책을 겪어본 필자는 이같은 노대통령의 언론관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정권의 언론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언론을 탄압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대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경우이다.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 전두환(全斗煥) 정권은 전자에 속하고, 장면(張勉)·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김대중(金大中) 정권은 후자에 속한다.

    이승만 정권의 언론탄압정책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비하면 상당히 ‘목가적(牧歌的)’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의 언론탄압정책도 정권의 종말과 함께 종지부를 찍었고, 국민과 언론사는 언론자유를 되찾았다.

    장면 정권과 김영삼 정권은 민주적 절차와 언론자유를 존중했었으나 김대중 정권은 정권 중반기 그에게 비판적인 신문과 갈등관계에 빠졌다. 그는 세무조사를 무기로 언론사 사주를 구속하기에 이르렀으나 언론 장악에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언론탄압을 한 대통령’이란 오명을 쓰고 퇴진해야 했다.

    역대 정권의 언론정책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언론의 협조를 얻으려고 노력한 점이다. 다만 정권의 성격에 따라 민주적 방식인가, 사이비 민주적 방식인가, 아니면 독재적 방식인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어느 쪽으로 가려고 하는 것일까.

    ‘정권의 길과 언론의 길이 다르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언론과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리라. 그는 “언론개혁은 언론 스스로 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듣기 좋게 하는 소리이고 실상은 다르다.

    노무현 정부는 제도적으로 장악이 가능한 방송사와 재정상태가 취약해 정부와 맞서기 어려운 일부 중소신문, 그리고 인터넷매체를 우군(友軍)으로 삼고 있다. 이들을 키워서 ‘동아’ ‘조선’ ‘중앙’ 3대지를 견제하는 것이 그의 핵심적인 언론정책이다.

    후보 시절 노대통령은 정부 주도로 과감한 언론개혁을 단행할 뜻을 내비친 적이 있다. 그때 그가 거론했던 언론개혁 방안의 골자는 이 글의 뒷부분에서 살펴볼 시민단체와 일부 학자들이 주장해 온 언론개혁 방안과 흡사하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개혁 방안은 야당이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펼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노대통령은 자신은 ‘반(半)대통령’에 불과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였다.

    하지만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노대통령은 야당 눈치를 보지 않고 보다 소신 있게 정책들을 밀고나갈 것이다.

    최근에 터져나온 청와대 양길승(梁吉承) 제1부속실장의 향응 및 몰래카메라 촬영사건은 노대통령의 언론관을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 첫째, 이 사건은 청와대 비서실 간부의 기강해이가 드러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은 신속한 징계절차를 밟지 않았다. 대신 이를 크게 보도한 언론에 대해 분노를 폭발시켰다.

    양실장의 행동은 지난 5월부터 실시한 2만원 이상의 금품과 선물 향응 등을 받지 않기로 한 ‘청와대직원윤리규정’을 위반한 사건이다. 게다가 본인도 즉시 사표를 제출했으니 노대통령은 응당 바로 인사조치를 해 신속히 여론을 가라앉혔어야 했다.

    6월28일 충북 청주에서 있었던 양실장 향응사건이 처음 현지 언론에 보도된 것은 열흘 후인 7월8일이었다. 이때 청와대가 당사자인 양실장의 말에만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조사해 처리했더라면 그로부터 23일 후인 7월31일, ‘한국일보’를 선두로 한 중앙지들은 이 사건을 크게 보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8월2일 노대통령은 장·차관급과 대통령비서실 고위간부들이 참석한 제2차 국정토론회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별로 자랑할 일이 아니고,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언론의 후속기사가 두려워 아랫사람 목을 자르고 싶지는 않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언론의 비판에 개의치 않겠다는 오기로밖에 볼 수 없다.

    이어 노대통령은 “언론이 부당하게 짓밟고, 항의한다고 더 밟고, ‘맛 볼래’ 하고 가족을 뒷조사하고…, 집중적으로 조지는 특권에 의한 횡포는 용납할 수 없다”고 격렬히 비난한 다음 “한마디로 내 자존심과 인내심, 안 죽는다. 정부, 무너지지 않는다. 대통령, 하야하지 않는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자리에 공동취재단으로 들어가 노대통령의 연설을 들은 어느 기자는 “심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껴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노대통령의 언론 비난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노대통령은 심지어 “언론계 출신 가운데는 질이 안 좋은 사람도 많다”는 등의말까지 내뱉었다고 한다.

    한국신문협회는 사흘 후인 8월7일 “노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은 언론인에 대한 모욕이다”는 내용의 공식 성명으로 대응했다. 과거 관례로 볼 때 신문협회가 대통령에게 이러한 수준의 비난 성명을 내놓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정부와 언론 사이의 갈등이 심화됐다는 이야기다.

    청와대가 실시한 양실장 향응사건에 대한 2차 조사결과는 노대통령의 언론비난이 일방적이었음을 말해주었다. 청와대 발표에 의하면, 양실장은 탈세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나이트클럽 공동소유주로부터 215만원 상당의 호화로운 향응과 43만원 상당의 선물도 받았다. 술자리에서는 수사무마 청탁도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양실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그동안 거짓말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대통령은 그런 줄도 모르고 언론에 화살을 날렸다가 진상이 밝혀져 “국민에게 사과하라”는 야당의 요구를 받는 등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중앙의 언론들이 양실장 사건에 대해 대대적인 2차 보도를 하지 않았다면 청와대는 2차 조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사건의 진상은 영원히 가려졌을 가능성이 있다. 이 사건은 언론의 권력감시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양실장 향응사건에서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노대통령이 그의 비위사실에 대한 처리는 제쳐놓고 양실장이 향응을 받는 장면을 촬영한 이른바 ‘몰카’ 조사를 더 중요시했다는 점이다. 노대통령은 누군가가 자신의 분신과 같은 양실장을 음해해 청와대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한 것으로 의심한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언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하려다 문제의 우선순위를 혼동해 양실장을 감싸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검찰 조사 결과 이 ‘몰카’는 양실장 주변 인물 간의 알력에서 빚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로써 ‘정치적 음모’ 때문이라고 의심했던 노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세상 물정에 얼마나 어두운가를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다.

    이 사건에서 세 번째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양실장의 향응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언론매체는 노대통령이 타깃으로 삼는 ‘동아’ ‘조선’ ‘중앙’의 3대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현지 언론보다 더 상세한 내용을 최초 보도한 중앙지는 ‘한국일보’였고, 같은 날 저녁 8시뉴스에서 문제의 비디오를 특종 방영한 방송은 SBS였다.

    노대통령은 3대지를 제외한 다른 언론매체도 기회가 오면 얼마든지 정부를 비판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정부 비판은 모든 언론의 보편적인 속성이다. 지난 4월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이 기자실 폐쇄와 브리핑제 도입, 그리고 공무원의 기자접촉 보고 의무 등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홍보방안을 마련해 물의를 일으켰을 때, 평소 노대통령에게 우호적인 매체들도 일제히 이를 비판하고 나왔었다.

    어느 인터넷신문은 정부의 조치에 대해 솔직하게도(?) ‘왜 우군마저 등을 돌리게 만드나. 지금이 언론과 맞서 힘을 소진할 때인가’라고 지적했다. 최근 청와대가 ‘국정브리핑’이라고 하는 새로운 인터넷신문을 만들기로 결정하자, 평소 친노(親盧)적인 입장을 보이던 언론마저도 사설에서 “이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盧의 부정적 언론관

    3대지에 대한 노대통령의 부정적인 언론관은 상당히 뿌리깊다. 지난 8월3일 2차 국정토론회에서 그는 “5공 때 문귀동(文貴童) 성추행사건 당시부터 언론에 대한 불신이 내 마음속에 싹터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당시 검찰이 ‘운동권 세력이 성(性)을 혁명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발표하자 일부 언론이 이를 그대로 인용보도한 것을 지적하면서,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개탄했다.

    언론매체는 수사기관의 발표를 기사화할 때 그 진실성을 검증하려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예컨대 피의자나 변호인의 반박을 함께 실어주는 것이 그것이다. 문귀동 사건 때 언론이 검찰 발표만 기사화하고 반대편에 있는 피해자(권모양)의 주장을 실으려 노력하지 않아 국민의 불신을 산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5공을 겪은 모든 사람이 언론을 불신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노대통령의 부정적인 언론관은 개인적인 피해의식에다 과거 자신과 관련된 기사로 언론과 소송을 치러 승소한 경험, 그리고 일부 대신문들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자신감이 복합되어 형성된 것이리라.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1988년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나름대로 서민을 위해 활동했는데 보수언론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당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해 12월 현대중공업 노조가 파업에 들어갔을 때 그는 현지의 노동자 집회에 참석해 “울산은 노동자가 많이 사는 곳이니까 노동자 대표를 뽑아주시고, 저는 또 다른 어느 곳에 가면 당선되지 않겠느냐”고 발언했다. 그런데 일부 대신문들이 이 대목을 “나는 어디 가든지 당선된다. 나 같은 사람 20명만 있으면 국회를 뒤집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해 자신을 ‘교만한 정치인’의 표본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참다못해 기자실을 찾아가 해명하고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언론은 성명 가운데 과격하다는 인상을 주는 대목만 인용해 그를 더욱 오만한 사람으로 만들고 사설까지 써서 그를 ‘지근지근’ 밟았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는 단순한 흥미 위주의 보도가 아니라, 정치인이 노동자의 집회를 찾아다니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정치인의 가치관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이었다.

    3년 후인 1991년 ‘주간조선’이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 의원, 알고 보니 부자, 호화 요트 소유’라고 보도했을 때 그는 주간조선(조선일보)을 상대로 3억원을 청구하는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1심에서 승소하여 2000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냈으나 2심에서는 화해하여 소송을 취하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청구액에 비해 엄청나게 적은 액수의 배상판결이 나와 2심으로 끌고 가도 제대로 될지 자신이 없어져 맥이 풀린 데다 주간조선 쪽에서 소송취하를 요구했고 당에서도 대변인(노무현)이 언론과 싸우는 것을 만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001년 5월30일자 ‘한겨레’에 노대통령이 밝힌 내용).

    그와 조선일보간의 끈질긴 싸움은 작년 4월, 주간조선측이 당시 기사에는 일부 과장이 있었지만 상당부분은 진실이라는 기사를 실음으로써 10여년 만에 다시 시작되었다. 주간조선은 ‘요트 기사를 썼던 10여년 전의 주간조선 기자가 “1심에 패한 후 항소를 했다. 그후 화해가 이뤄져 노후보가 소를 취하해 민사소송 자체가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화해를 제안한 측은 노후보가 아니라 조선일보(주간조선) 측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져 조선일보와 주간조선은 정정보도를 냈다. 결국 노대통령은 신문사를 상대로 한 다툼에서 두 번이나 이긴 것이다. 이러한 승리가 지난 8월13일 언론보도와 관련한 현직 대통령의 소송제기라는 뜻밖의 사건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재작년 신년호에서 ‘2002년 대선 여야 가상대결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는 이회창 총재로 정해놓고 그 상대자로 민주당의 여러 주자를 번갈아 대비시켰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빼놓았다. 이러한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는 다른 신문들이 여론 조사를 통해 ‘노장관이 이총재와 맞붙으면 막상막하의 결과가 나온다’고 보도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었다.

    노대통령과 주요 신문간의 갈등은 작년 2월6일 민주당의 인천지역 경선 합동연설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고 주장했다. 그는 “동아일보가 내게 ‘언론사 소유 지분 제한 소신을 포기하라’고 강요했지만, 나는 결코 굽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신문사측의 부인과 반박으로 이 싸움은 한바탕의 장군멍군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 사건은 그와 주요 신문간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노대통령과 주요 신문간의 대립은 선거 막판까지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 투표 바로 전날 밤 그의 제휴자인 정몽준(鄭夢準) 국민통합21 대표가 돌연 지지철회를 선언했을 때 주요 신문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특히 일부 신문은 사설까지 바꾸어 씀으로써 노후보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의 당선은 언론에 대한 자신감을 결정적으로 키웠다.

    몰이해와 편향성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노대통령의 언론관은 주로 3대지에 대한 불신으로 차있다. 그는 대신문을 ‘수구언론’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그냥 두고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언론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3대지에 대한 그의 평가는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다. 그는 지난 8월2일의 제2차 국정토론회에서 이 언론매체들이 “공정한 의제 (설정), 정확한 정보, 냉정한 논리를 통한 ‘공론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3대지의 지면제작에 대한 그러한 평가는 불행히도 언론에 대한 몰이해와 편향성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물론 한국 언론에는 중요한 본질문제보다는 하찮은 지엽문제를 크게 보도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양실장 사건 보도가 과장 보도였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일방적인 판단이다. 언론은 개혁을 부르짖는 청와대의 비서실에서 대통령에 가장 가까이 있는 간부가 부적절하게 처신한 것을 당연히 중요기사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노대통령이 말한 언론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해 각종 견제책을 고안해 냈다. 기자실 폐지와 브리핑제도 전환 등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홍보업무방안을 만들고 정부가 ‘기사 빼기’를 하는 데 이용해오던 가판 구독을 중단시켰다. 공정거래위를 통해 신문사가 판촉 활동으로 사용하는 경품을 불공정거래 행위로 단속하였으며 청와대가 보기에 불만스러운 기사와 사설을 반박하는 ‘청와대브리핑’을 발행했다.

    그리고 각 부처에서는 정정 및 반론 요구를 강화하게 하고 새로운 인터넷신문의 발행을 결정하였다. 최근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청와대와 각 부처가 보기에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일반 기사와, 역시 청와대와 각 부처가 보기에 ‘비논리적인’ 사설과 칼럼에 대해서도 논박하고 법적으로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언론과의 싸움’보다 ‘국정 해결’이 시급하다

    몰카에 찍힌 양길승 향응 장면. 이 사건은 모든 언론은 정부 비판을 속성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그의 언론정책은 주요 신문과의 비타협을 특징으로 한다. 그는 후보 시절부터 이것을 강조해왔다. 후보 시절인 작년 6월 그는 “수구언론과 온 몸으로 싸울 것”이라고 말했고 “정치인의 정도(正道)는 언론의 힘이 막강하다고 하더라도 굽실거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항의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보수언론에 대한 혐오감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3월7일 노대통령은 장관급 인사 및 대통령수석비서관과의 제1차 국정토론회에서 “정부는 언론과 유착하거나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언론과 약간의 긴장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다음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일부 언론과 긴장관계를 유지해왔고 이 때문에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내가 대통령이 된 것도 언론과의 긴장관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7일 제47회 신문의 날 기념식에서 그는 언론과의 ‘화해와 협력’을 제의하면서 “언론이 정치권력을 탄생시키겠다는 생각이나 무의식적으로라도 정부를 길들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언론자본으로부터, 광고주로부터의 기자의 자유를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일반 기업도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강조하는데 언론은 사회적 공기인 만큼 적어도 취재와 편집권은 기자들에게 주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셋째, 그는 보수적인 3대지에 대항하기 위해 방송과 일부 중소신문과 인터넷매체를 우군으로 삼고 있다. 노대통령은 당초 그의 선거참모로 일한 언론인 출신 서동구씨를 KBS이사회로 하여금 추천케 하여 사장에 임명했다. 그러나 KBS 노조의 반대 등으로 계속 말썽이 나자 서씨를 사장에 임명한 경위를 청와대 출입 기자들에게 설명하였다.

    이때 그는 “방송이라도 공정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3대 신문의) 왜곡 편파 보도를 좀 상쇄해주는 그런 기능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 소망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방송이 신문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솔직히 피력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KBS 노조 간부를 청와대로 불러 ‘서사장 반대’를 철회해줄 것까지 요청했으나 실패했다.

    그러자 결국 대선기간 중 그에게 우호적이었던 한겨레의 논설주간 출신인 정연주씨를 후임 사장에 임명했다. 방송의 중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직접 KBS 사장 인사를 챙긴 것이다. 그는 대선에서 승리한 다음에 3대지를 제치고 한겨레를 찾아가 “협조에 감사하다”고 했으며 나중에 단독회견도 가졌다. 그는 인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와도 단독회견을 해 다른 언론사를 간접적으로 압박하였다.

    넷째, 노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언론과의 전쟁’이나 ‘조폭언론’을 운운한 것으로 보도됐다. 또 3대 신문을 서슴지 않고 ‘족벌언론’ 또는 ‘수구언론’으로도 매도하였다. 그는 “족벌언론은 수구적 이익과 자기 회사 이익에 맞지 않으면 공격을 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왜곡된 공격을 하고 있다”고 규정하였다(2001년 2월12일 MBC 라디오 인터뷰).

    또 “(수구언론은) 과거 부당한 정권과 결탁해 특권을 누린 언론권력을 말한다. 이중 몇몇 언론은 세상이 바뀌었는 데도 특권을 유지하며 권력을 좌지우지하려 들고 있다”고 주장했다(2001년 2월13일자 ‘경향신문’ 인터뷰).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족벌언론’이란 용어를 계속 사용했다.

    지난 4월2일 국회 본회의에서 행한 첫 국정연설에서 그는 “몇몇 족벌언론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를 끊임없이 박해했다. 나 또한 부당한 공격을 끊임없이 받아 왔고 그 피해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성공한 대통령이 되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언론 환경 하에서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회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3대지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과 적대감을 나타낸 것일 뿐만 아니라 신문의 존재와 역할수행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아닐 수 없다.

    다섯째, 노대통령이 생각하는 언론개혁의 핵심은 ‘족벌언론’의 소유구조를 고쳐 신문사 사주 일가족의 소유를 금하고 복수(複數)의 소유구조로 개편함으로써 특정인의 언론사 지배력을 약화시키자는 것이다.

    그는 이미 재작년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때 “언론이 단순한 사유재산이 아니고 국가의 공공적 재산이라면 (언론사) 소유지분을 제한하는 제도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자들에게 언론자유를 돌려주기 위해서는 인사권 독립까지 가야 하며, 그래야 기자들이 자유롭게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자유가 꽃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2001년 7월12일 MBC 라디오 인터뷰).

    그는 또 “정치인이 잘못해도 언론이 짜고 잘했다고 하면 잘한 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정치 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말이 좋아 권고이지, (언론은) 개혁해야 한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하려고 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2001년 10월8일 모 의원 후원회에서 한 발언).

    작년 11월 그는 언론의 독과점 문제에 대해 “유럽 국가처럼 우리나라도 특정 언론사의 시장 점유율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다음에는 언론개혁문제에 관해 한 발짝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언론개혁은 자체적으로 하는 것이지, 정부가 개입하면 안 된다고 태도를 누그러뜨린 것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를 택한 나라에서 신문사의 개인소유를 죄악시하여 복수 소유제도로 바꾸겠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주장은 위헌(違憲) 시비를 일으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성도 부족해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섯째, 노대통령의 언론개혁 구상은 시민단체와 언론노조, 그리고 일부 진보적인 학자들에 의해 가다듬어졌다. 이들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른바 ‘족벌신문’의 소유권 제한과 영향력 축소에 있다. 작년 5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1차로 올 연말까지 조선일보 50만부 절독운동을 벌이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집행위원장인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는 작년 12월 노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신문의 인적 청산이 문제가 아니라, 신문 자체의 교체가 필요하다. 일제시대에는 조국과 민족을 배신하고, 군사독재 시절에는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면서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았으며, 민주화 이후에는 스스로 권력이 되어 ‘대통령 만들기’를 비롯하여 온갖 만행을 저질러왔다. 현재의 (3대지 전체 점유율) 75%를 35%로 낮추어 그 빈 자리는 한겨레나 한국, 경향, 대한매일, 문화 등 비교적 공정보도의 원칙을 지키는 젊은 신문들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언론의 본령

    양실장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의 조광한 부대변인은 언론이 지나치게 세세한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보도한다며 “우리 사회가 집단적인 가하적(加虐的) 테러리즘에 빠져있다”고 반발했다. 물론 그의 표현은 지나친 것이지만, 우리 언론은 그의 주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일부 언론매체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 때문에 노대통령은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 같은데, 국정책임자가 언론의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론이 정부를 비판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국민이다. 노대통령은 하루빨리 자신의 언론관을 새롭게 가다듬어 언론문제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시급한 국정문제 해결에 전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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