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호

“탈북난민촌, 中 동북3성에 2000만평 건설 추진”

미·중의 김정일 압박 카드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3-08-21 18: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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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의 6자회담 수용으로 북핵 문제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3자회담 후 6자회담’안이 유력시되던 상황에서 북한의 결정은 주변국들에게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북한을 6자회담의 틀로 이끌어낸 美·中의 ‘결정적 카드’는 무엇이었을까.
    “탈북난민촌, 中 동북3성에 2000만평 건설 추진”

    방미중인 다이빙궈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콜린파월 미 국무장관을 만나고 있다.(2003.7.20)

    지난 7월31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미 대사관 공보과 자료정보센터. 7월27~29일 중국 방문에 이어 한국에 온 존 볼턴 미 국무부차관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100여 명에 달하는 국내외 기자들이 몰렸을 정도로 북핵 문제에 있어 미 정부 내 그의 역할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첫 질문부터 중국 내 탈북자 난민촌 건립문제가 거론됐다. 그만큼 이 문제는 이날 참석한 모든 기자의 최대 관심사였다. 한 외신 기자의 질문. “미 상원에서 중국 북부에 있는 수십만 명의 북한 난민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울러 탈북 난민촌 건립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을 방문했을 때 난민촌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올해 말쯤에 난민촌 건립이 진행될 것인지 답변해주기 바란다.”

    이에 볼턴 차관은 “탈북 난민촌 문제는 중국과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끄는 사안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물론 이 주제가 중국에서 거론되기는 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북·중·미 3자회담 개최시기와 다자회담에 러시아가 참여하는지 등에 대한 질의와 응답이 이어지다가 또다시 탈북 난민촌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탈북 난민촌 문제에 대해 중국측과 논의가 있었는지, 만일 논의가 있었다면 그 장소는 어딘지 묻고 싶다.”(외신기자)



    “탈북 난민촌과 관련해서는 정말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볼턴)

    간결하면서도 단호한 볼턴 차관의 답변에 난민촌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볼턴, 미·중 난민촌 논의 기정사실화

    하지만 이날 볼턴 차관의 발언에는 중요한 사실, 두 가지가 숨어 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볼턴 차관이 “거론되기는 했지만”이라고 전제를 달았다는 점이다. 북한을 6자회담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미·중간 막판 협의과정에서 거론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난민촌 문제가 최소한 미·중 고위당국자간 협의 테이블에 의제로 올랐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볼턴 차관이 시기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사실. 기자간담회가 끝난 이후에 확인된 것이지만 하루 전날인 30일 저녁,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6자회담 수용의사를 이미 전달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북핵 해법을 찾기 위해 중국과 한국, 일본을 순차 방문중이던 볼턴 차관에게 이처럼 중요한 소식이 전달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결국 볼턴 차관으로서는 북한이 6자회담을 수용한 마당에 이날 탈북 난민촌 문제를 꺼내서 북한을 압박할 필요도, 자극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이번 기자간담회를 보더라도 미국과 중국이 중국 내 탈북 난민촌 건립 문제에 대해 논의중이라는 것은 이미 기정 사실화됐다. 그렇다면 탈북 난민촌 논의는 왜, 어떻게 시작됐으며 현재 어느 선까지 진행된 상태일까. 북한의 6자회담 수용과는 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일까.

    지난 7월22일 서울 모처에 정부 및 기업체 산하 연구기관 소속 북한문제전문가 10여 명이 모였다. 이 방면에 있어 나름의 정보력을 과시하는 이들은 그동안 각자가 취득한 정보를 교환하고 이를 기초로 토론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 흐름을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미국은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놓고 상황에 따라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정리됐다.

    1안은 ‘레짐-체인지(regime change ·체제전환)’로 이른바 북한 김정일 체제의 전환을 목적으로 한 시나리오. 사실상 김정일 체제의 평화적인 붕괴 시나리오다. 2안은 북한 스스로가 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기다려주는 이른바 ‘햇볕정책(sunshine policy accept)’ 시나리오, 마지막 3안은 김정일 체제를 유지시키면서 외부의 힘으로 개혁과 개방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는 ‘레짐-트랜스포메이션(regime transformation·체제변화)’ 시나리오다.

    이 가운데 부시 미 정부가 올해 초 채택한 대북정책은 1안에 가까운 것으로 분석됐다. 부시 정부 입장에서 2안은 과거 클린턴 정부 때 실패한 시나리오고, 3안은 현실성이 적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1안의 주요 골자는 군사, 외교, 경제 등 전 분야에 걸친 대북 봉쇄정책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전략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북한 인권문제를 국제사회에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탈북 난민촌 건설을 추진하는 방법이라는 것.

    중국 내 탈북 난민촌의 건설은 북한 입장에서 아킬레스건임에 틀림없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만약 중국 내 탈북 난민촌이 건설된다면 최소한 200만명 정도의 탈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 체제의 붕괴는 불을 보듯 뻔하다.

    부시 정부가 ‘레짐-체인지’ 전략을 세운 것은 올해 초 북한의 NPT탈퇴 선언으로 북·미간 긴장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대북 봉쇄정책을 주장해온 체니, 럼스펠드 등 강경파들에게 힘이 실린 것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지난 연말부터 중국이 탈북자들의 국경 잠입로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한편 올해 1월 자국 영토 내 탈북자를 색출, 북한으로 강제 송환시키려 하자 미국 내에 탈북자 인권문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여론이 확산된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같은 시기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등 미국 내 인권단체들은 탈북자 강제 송환조치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탈북자 지원활동에 적극적인 미 의원들은 관련 예산을 대폭 늘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탈북자들의 미국내 난민지위를 부여하는 법안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올해 2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한 대미전문가는 “파월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북핵문제에 적극 나서줄 것을 권유하면서 중국내 탈북 난민촌 건설문제까지 제안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때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 오갔고, 논의를 계속하면서 합의에 가까운 의견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파월 국무장관이 탈북 난민촌 건설문제에 대해 어느 선까지 논의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미국과 중국 소식통들 사이에서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북3성 5~6개 지역 거론

    국내 한 미국 소식통이 전한 내용이다. “중국은 오는 200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는 매년 6~7%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해야 할 입장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반면 탈북자 문제는 중국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저해요소로 작용한다. 미국은 이러한 중국의 상황을 이용, 탈북 난민촌 부지를 제공받는 대신 난민촌 자금지원과 베이징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적극협조 약속 등을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안다.”

    이 소식통은 “탈북 난민촌이 들어선다면 중국 동북3성 일대가 아니겠느냐”며 예정지역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린성을 비롯해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등을 지목했다. 이 일대 5~6개 지역에 넓게는 2000만평, 좁게는 600만평 규모로 논의되고 있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미 정부측에서 부담키로 했다는 예산액수까지 나돌고 있다.

    미국내 한국계 로비스트로 알려진 한 소식통은 “미 정부는 탈북자 문제와 관련, 지난 연말 ‘북한인권문제’라는 제목으로 8000만달러의 예산을 확정했고 이 중 1000만달러를 올해 초부터 집행하고 있다. 이 예산은 미 정부의 북한붕괴전략의 일환으로 마련된 대량 탈북자 유도 프로그램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 외에 추가로 탈북 난민촌 예산을 검토하고 있는데 대략 10억달러 규모라고 전해들었다. 9월에 열릴 미 하원 정보위원회에서 예산안을 검토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탈북자를 위한 미 정부의 대규모 예산 확충 및 지원은 어느 정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올해 초부터 미국 관영방송인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일 방송시간을 2시간에서 4시간으로 늘린 데 이어 조만간 12시간 또는 24시간 방송으로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8000만달러의 예산 중 상당액이 이 분야에 집중 투자될 예정이라는 전언이다.

    최근 정부 고위관계자는 탈북 난민촌과 관련 “아직도 부시 행정부에 외교정책을 조언하는 등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대북 봉쇄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딕 체니 부통령 등이 탈북 난민촌 건설건을 포함한 최종 보고서를 오는 9월 말까지 대통령에게 보고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는 달리 중국정부 입장에서 탈북 난민촌 건설문제는 결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임에 틀림없다. 탈북 난민촌의 인정은 사실상 북한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한다. 북·중의 오랜 역사적 동맹관계를 하루아침에 무 자르듯 청산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고 북핵문제 해결에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는 미국측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할 수만은 없는 상황. 결국 중국정부도 미국측의 탈북 난민촌 제안을 신중하면서도 면밀하게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정부의 입장은 조금씩 변화의 기미를 보였다.

    그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탈북자가 가장 많은 지린성 옌볜(延邊) 지역이다.

    지난 4∼5월, 2개월 가량 옌볜에 체류했던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미 정부측에서 탈북 난민촌 건설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옌볜의 한 고위관료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답변하는 태도나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며 “전에는 공개된 내용이 아니면 ‘있을 수 없다’고 전면 부정하기 일쑤였는데, 탈북 난민촌 문제에 대해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취해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최근 북·중 국경(특히 두만강 유역)을 감시하던 국경수비대가 정규군인 중국인민해방군으로 교체돼 앞으로는 군에서 직접 국경을 감시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몇 가지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7월초 중국 내 대표적인 친북인사로 분류되는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부 수석부부장의 북한, 미국 연쇄방문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이 부부장은 7월12~15일 평양을 방문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친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한 데 이어 17일 미국을 방문해 부시 대통령에게도 후주석의 친서를 전달했다.

    후주석은 바로 이 친서를 통해 북한에 압박을 가한 반면, 미국측에는 과감한(?) 역제안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대북전문가는 이와 관련 “후주석은 김정일에게 ‘인권문제 때문에라도 난민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고, 이에 따라 미국에서 제안한 탈북 난민촌을 인정할 수도 있다’는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와 함께 다자회담 수용과 북한의 개혁개방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며 “반대로 부시에게는 북한의 답변을 기다려달라는 내용과 만일 북한이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대북정책을 수정할 것을 제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와 미 정부 관계자들은 미·중 협의 직후부터 김정일과 북한에 대해 매우 유화적인 발언을 쏟아냈는데, 부시 정부의 정책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앞서 언급한 국내 북한문제전문가 10여 명의 모임에서도 중국측의 역제안에 따라 미 정부의 대북정책이 1안 ‘레짐-체인지’에서 3안 ‘레짐-트랜스포메이션’으로 수정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 정책은 미국이 김정일 체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 중국의 강력한 요구를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미국측으로서는 향후 중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됐다는 점에서 그다지 큰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는 평가다.

    9월 중순 새로운 형태 회담 예정

    결국 7월30일 북한은 당초 중국에서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3자회담 후 다자회담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6자회담안’을 전격적으로 수용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같은 결정을 미국의 압박보다는 중국의 마지막 경고, 특히 탈북 난민촌 건설문제에 봉착하면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로써 북한 ‘압박카드’로 사용했던 미·중간 탈북 난민촌 건설논의는 잠시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의 6자회담 수용을 북핵문제 해결을 향한 새로운 진전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국내 북한전문가뿐 아니라 정부 관계자들 대부분이 북한의 ‘시간 끌기 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익명을 요구한 정부 한 관계자는 “북한의 6자회담 수용을 별로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북한 입장에서는 더 이상 쓸 카드가 없었다. 2004년 연말에 있을 미 대선을 감안해 회담을 진행하면서 내년 8월경까지만 시간을 끌면 된다는 판단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6자회담 수용이 ‘시간 끌기’와 미국과 중국의 강력한 압박을 모면하기 위한 ‘2중 포석’이라는 것이다.

    어렵게 성사됐던 지난 1996년 한·북·미·중 ‘4자회담’도 3~4년을 끌다가 유야무야된 적이 있다.

    외교통상부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북핵문제가 이번 6자회담을 통해 평화적으로 조기에 해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너무 성급하게 북측의 태도를 예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비관적이기보다는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탈북 난민촌 문제와 관련 “미국과 중국 간에 어떤 논의가 있는지 알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전제하고 “중국이 자국내 난민촌을 허용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만큼 논의가 있다고 해도 현실화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사정에 밝은 한 정보관계자는 “그동안 미국이 북한에 속은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겠느냐.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정확한 출처를 밝히지는 않은 채 “9월 중순경 미국에서 ‘또 다른 형태의 회담(another different kinds of meeting)’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라면서 “미국과 북한 이외에 어떤 국가가 참여하고 어떤 형태로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금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중 탈북 난민촌 건설문제는 지금도 긴밀히 논의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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