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호

미국의 北 ‘리더십 체인지’ 시나리오

‘히든카드’ 美 망명한 장승길(전 이집트 대사), 장성택도 유력후보(당 중앙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3-08-21 18: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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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北 ‘리더십 체인지’ 시나리오
    지난 7월말 서울 외교가에는 묘한 소문이 나돌았다. 7월24일 미국정부 특사 자격으로 방한해 28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작성·검토해 백악관에 보고하는 임무를 띄고 왔다는 것이었다. 키신저 전 장관이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 등 관계자들을 따로 만난 점도 이러한 소문을 더욱 증폭시켰다.

    키신저가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왔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이미 상당부분 진척된 ‘김정일 정권 교체계획’을 키신저가 청와대 측에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의 한 관계자는 “친서는 없었다. 그러나 다양한 북핵 문제 해결방안에 관해 개인 신분 이상의 자격으로 논의한 것은 맞다”고 전했다.

    묘한 분위기는 워싱턴에서도 감지됐다. 8월초 워싱턴을 방문해 정계 지인들을 만나고 돌아온 한 대학교수는 “공화당 쪽 사람들이 김정일 정권 교체를 위해 억달러 단위의 비공개 예산안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걸 보고 놀랐다”고 전한다.

    지난 봄까지만 해도, 협상이라는 당근이 북한에 먹혀들지 않을 경우 미국이 사용할 채찍은 ‘제한공격’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부시 행정부가 정권교체에 보다 비중을 두고 있다는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영변에 있던 핵 시설이나 폐연료봉 등이 이미 상당수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폭격해봐야 효과가 없으리라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제는 ‘대증요법’이 아닌 ‘원인치료’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는 것.

    사실 미국이 김정일 정권 교체를 준비해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에 가깝다. 지난 7월16일 미 하원은 기구를 이용해 북한에 라디오를 대량 살포하고 라디오 프리 아시아(RFA)의 대북 방송을 하루 4시간에서 24시간으로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는 ‘부시 행정부가 수천 명에서 수십만 명 규모의 탈북난민을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북한의 고위급 관계자들을 미국으로 망명시키는 계획이 가동되고 있다는 소식도 줄을 이었다. 이와 함께 북·중 접경지대에 대규모 난민촌을 건설하는 계획에 대해 중국과 미국이 합의했다는 설도 흘러나왔다(206쪽 ‘탈북난민촌’ 관련기사 참고).



    특히 탈북자 난민촌의 실행방안이 가시화할 경우, 북한 정권교체는 더 이상 시나리오 차원에서 머물 수 없게 된다. 눈여겨볼 대목은 중국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 중국의 양해하에 난민촌이 건설된다는 것은 중국이 더 이상 북한을 두둔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경우 주민들은 물론 지도부 구성원들도 섬처럼 고립된 김정일 체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난민촌이라는 ‘쐐기’로 북한과 중국, 김정일 위원장과 다른 구성원 간의 간격을 넓히는 이른바 ‘쐐기전략’이 먹혀드는 것이다.

    레짐 체인지와 리더십 체인지

    우선 용어부터 정리하고 넘어가자. 흔히 영어의 ‘Regime Change’를 ‘정권교체’로 옮기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번역이다. Regime이란 한 국가의 정치체제를 의미하기 때문에 북한의 경우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는 것이 ‘Regime Change’다.

    대신 정권교체는 영어의 ‘Leadership Change’에 가깝다. 사회주의 체제는 그대로 두되 지도부만 김정일 위원장이 아닌 다른 이로 교체하는 방안이다. 현재 부시 행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레짐 체인지가 아닌 리더십 체인지라는 것이 정설이다. 중국이 용인할 수 있는, 사회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친미보다는 친중 성향을 띄지만 대신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매진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을 찾는다는 시나리오다.

    사실 미국은 제3세계 국가의 리더십 체인지에 관해서는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 냉전 시기 CIA가 중남미 및 아프리카 국가에 친미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공작을 벌였음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석방하며 휴전반대를 강행하고 나서자 그를 제거한 뒤 UN군정을 실시하려고 했던 ‘에버레디 플랜’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국이 리더십 체인지에 나설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해당 국가 내부에서 은밀히 동조자를 찾는 일이다.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나라를 살려야 하지 않겠나’라는 논리로 협력전선을 구축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지도체제는 권위적이지만 나름대로 시민사회가 튼튼한 국가라면 반정부조직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북한과 같이 시민사회가 전무한 나라라면 상당한 실력자를 접촉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국은 중국이 ‘용인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에 친미정권이 수립될 경우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미군과 대치해야 할지도 모르는 중국이 이를 좌시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리더십 체인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렇다면 중국이 납득할 수 있는 새 지도부는 누구일까.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해 현재 중국을 이끌고 있는 4세대 지도자들은 대부분 이공계 출신의 실용주의적 테크노크라트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비교적 합리적이면서도 개방적이고 그러면서도 북한 체제가 완전히 붕괴되는 것을 막을 만한 지도력까지 갖추고 있는 인물이 파트너로 가장 적합하다. 군 출신보다는 테크노크라트 출신이 더욱 ‘코드’가 맞을 것이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맡고 있는 장성택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그가 이러한 조건을 두루 만족시키는 거의 유일무이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서울 외교가에서 ‘북한의 완만한 정권교체 시나리오’를 거론할 때마다 그는 항상 후보 1순위다. 지난 7월4일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국회 토론회에서 “김정일 체제가 무너질 경우 다음으로는 장성택이 가장 유력하다”고 증언했다.

    장성택, 브루투스 될 수 있나

    국가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1946년 강원도 천내에서 출생한 장성택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1969년 모스크바에서 유학했다. 대학에서 동급생으로 함께 공부했던 김일성 주석의 큰딸 김경희(현 당 중앙위 경공업부장)와 1972년 결혼한 그는 이후 당 중앙위에서 승진가도를 달리며 제8, 9, 10,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연임하고 있다.

    북한의 최고엘리트 코스를 밟은 수재에 로얄 패밀리의 일원인 그의 위상은 실질적인 권력서열 2위다. 당 전반을 관할하며 북한의 최고통치기구로 자리매김한 조직지도부의 실질적인 부장이라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정일 위원장이 상징적인 리더라면 실무적인 책임자는 장성택이라는 것. 1998년 평양청년학생축전을 비롯해 주요행사는 모두 맡아 지휘해온 그는, 지난해 10월 경제사찰단의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리더십 체인지 시나리오에 자주 오르는 것에는 또 한가지 이유가 있다. 그의 첫째 형인 장성우 차수(68)가 3군단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야전전력인 3군단은, 지난 1956년 8월 종파사건 때 김일성에 반기를 들었던 연안파가 그 사령관인 장평산을 포섭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을 만큼 ‘거사용’으로 요긴한 부대다. 한편 둘째 형인 장성길(64) 또한 현역 인민군 중장이다.

    장성택의 가장 큰 약점은 군사·공안계통의 경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당에 철저히 복종해야 하는 북한군의 특성상 현재는 최고 지휘관들도 장성택의 ‘눈치’를 보는 신세지만, 유사시 이들이 과연 그의 편에 설 것인가 하는 부분이 의문으로 남아있다. 인민군 출신 탈북자들에 따르면 장성택은 형제들을 비롯한 비공식채널을 통해 군 관련 동향과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장성택 대안론’에 회의적인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이자 김일성 주석의 맏사위인 그가 과연 대안이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오히려 김위원장이 몰락하면 함께 몰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장성택과 장성우 모두 김위원장으로부터 지나칠 만큼 각별한 애정과 신임을 받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쉽게 권력을 넘겨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설득력 있어 보인다. ‘혈연적 정통성’을 중시하는 북한 문화의 특성상 그가 새로운 1인자로 떠오를 경우 거부감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내인 김경희는 최근 공개된 인민군 교양자료에서 ‘존경하는 어머니’로 불릴 만큼 주민들에게 익숙한 존재다.

    또한 매우 친밀한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김경희 남매의 관계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권력이 빠른 속도로 김정일 위원장에 집중되는 데 대해 김경희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김경희는 주석궁으로 들어오던 정보가 차단되는 대신 김위원장이 관할하던 당 중앙위의 힘이 급성장하는 것을 두고 “선대 수령과의 단절이 너무 빠르다”고 비판했다. 이 무렵 우리 정보기관에는 ‘김위원장의 능력에 회의를 품은 김주석이 복귀를 시도하다 사망했고, 이에 따라 김경희가 오빠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미확인 정보가 전해지기도 했다.

    장성택 대안론이 현실화되는 경우 단기적으로는 장성우를 위시한 군이, 장기적으로는 테크노크라트가 권력중심에 서게 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장성택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이광근 무역상 등 40~50대의 개혁적 테크노크라트들을 파격적으로 중용하며 실질적인 대부 노릇을 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낯이 익은 테크노크라트는 1992년 경제대표단 단장으로 서울을 다녀간 김달현 전 정무원 부총리다.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이 김정일의 대안으로 검토했다는 김 전 부총리는 지난 2001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확인됐다. 1993년 ‘지나친 개혁성향’이라는 이유로 실각해 함흥의 공장으로 좌천된 후 생긴 화병 때문이었던 것으로 우리 관계기관들은 분석하고 있다.

    미국의 北 ‘리더십 체인지’ 시나리오

    지난 3월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제10기 최고인민회의 6차회의

    최근 탈북자 난민촌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해진 이후에는 또 다른 리더십 체인지 방안이 새로 힘을 얻고 있다. 난민촌에 모이는 반김정일 인사들을 중심으로 망명정부가 수립되고, 이를 중심으로 북한 내 저항운동을 촉발시켜 권력교체를 시도하는 시나리오다.

    미국이 난민촌 건설과 국제적인 반김정일 운동을 지원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망명정부의 지도부 또한 미국에 의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그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지난 1997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한 장승길 전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다.

    1948년 평양에서 태어난 장승길은 김일성대 아랍어과를 졸업한 뒤 1976년 직업외교관이 되었다. 외교부 부부장과 조선외교협회 부회장을 지낸 그는 1994년 이집트 대사로 부임했다가, 귀국을 앞둔 시점에서 파리 주재 북한대표부 참사관이었던 형 장승호와 가족을 이끌고 망명길을 택했다. 특히 함께 망명한 부인 최해옥은 인민배우 출신으로 김정일·김경희 남매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까닭에 이들의 망명소식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후 장승길과 가족은 CIA의 엄중한 보호 속에 한번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재 버지니아주의 한 소도시 대학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 이외에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장 전 대사가 망명정부의 지도자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벌써 6년 가까이 미국 정부와 행동을 함께 하고 있는 장승길이야말로 망명정부의 적임자”라며 “잘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잘 써먹기 위함이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특히 최고 엘리트 출신의 직업외교관이었던 그의 신분 역시 국제적인 반김정일 캠페인을 주도할 망명정부의 역할에 딱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망명정부가 들어서면 한국에 있는 지식인 계층 탈북자들 또한 상당수가 여기에 투신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온지 20여 년이 지난 한 탈북자는 “나이는 들었지만 목숨을 걸고 싸워볼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제외하고 탈북인사 가운데 가장 직위가 높았던 장 전 대사가 적격이라 할 수 있다. 이미 고령인 황 전 비서는 망명정부에 참여한다 해도 상징적인 인물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장 전 대사가 ‘북한의 이승만’이 되는 데는 몇 가지 장애가 있다. 우선 중국이 ‘친미인사’인 그를 탐탁치 않게 여기리라는 사실이다. 또한 그가 북한을 등진 이유가 이념적 갈등 보다는 공금유용 등에 대한 처벌이 두려워서였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이렇게 볼 때 ‘장승길 카드’는 ‘장성택 안’에 비해 현실성이 다소 낮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부교체 시나리오’와 ‘망명정부 시나리오’가 서로 배타적인 방안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 입장에서는 두 안을 각각 독립적으로, 동시에 추진하는 편이 실현가능성이 높다. 국경 밖에 먼저 만들어진 망명정부가 내부교체를 촉발하는 진행과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원응희는 왜 사라졌을까

    이러한 미국의 리더십 체인지 시나리오가 공공연해지면서 북한 지도부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 당국자들과 접촉한 한 대학교수는 “바그다드 함락 직후 성조기를 들고 뛰어나오는 이라크 시민들을 보며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체제안정을 위한 평양의 노력도 하나 둘씩 눈에 띄고 있다. 그 바로미터가 바로 지난 8월3일 있었던 최고인민회의 11기 대의원 선거결과다.

    10기 대의원 687명 가운데 절반이 교체된 이번 선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차수 및 대장급 군단장 11명이 대의원직을 상실했다는 점. 박기서 평양방어사령관, 전재선 1군단장 등 전방군단장 4명과 김명국 108기계화군단장 등 기계화군단장 4명이 대의원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관계기관에 따르면 대신 이들 부대의 정치위원들이 대의원에 선출됐다. 총정치국의 통제를 받으며 보안 및 사상교육을 담당하는 정치위원들을 이처럼 사령관 대신 대의원에 내보낸 것은 핵심 야전부대에 대한 사상적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로 풀이할 수 있다. 또한 군부 신진인사들의 위상을 높여줌으로써 이들의 불만을 다독이고 외형적으로 젊은 군대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김정일 위원장 초기 군부 4인방의 한 사람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원응희 인민무력부 보위국장이 대의원에서 탈락한 부분이다. 원응희가 혈액암으로 투병중이라는 정보가 있긴 하지만,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결격사유가 없는 한 와병중이라도 죽을 때까지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관례였던 까닭에, 그의 탈락에 체제 단속과 관련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함께 오는 9월9일 정권창건 55주년 기념일(9·9절)에 북한이 중대선언을 할 것이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7월23일 도쿄의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중대선언은 핵무기 보유 공식선언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오히려 제2건국 선언을 통해 획기적인 추가 경제개방을 천명할 것으로 본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헌법 개정을 준비중이라는 정보도 있다는 것. 이러한 조치는 미국의 강경태도를 주춤하게 만들고 리더십 체인지 추진의 명분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는 8월말, 9월초 열릴 것으로 보이는 11기 대의원 1차 대회를 지켜보면 보다 구체적인 방향이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리더십 체인지 추진에 대해 우리 정부는 ‘딱히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 보다 합리적인 통치체제가 들어서는 것이 나쁠 리 없고, 그동안 논의되던 제한 공격 시나리오에 비하면 훨씬 위험도가 낮다고 본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민간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이같은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중 합의하에 북한 리더십 교체가 추진될 경우, 향후 한반도 상황 변화에 한국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어진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제한공격의 경우는 미국이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 실행하기 어렵지만, 리더십 체인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제3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 한마디로 말해 한반도의 진로와 운명에 대한 우리 측 결정권이 사라지는 셈이다.

    현대의 ‘7대사업’ 무산될 수도

    또 한 가지 포인트는 리더십 교체 과정에서 안보상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독한 마음 먹고’ 전쟁을 감행할 확률도 있기 때문. 난민촌이 건설되고 중국과 북한의 분리가 가시화되는 경우 내부결속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대외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다. 과연 우리 정부가 이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자세를 충분히 갖추었느냐는 질문이 나올 법 하다.

    김정일 체제가 붕괴할 경우 북한 재건과정에 투입될 자본의 상당부분은 한국이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북한을 방문했던 커트 웰든 미 하원 의원(공화당)은 “북한경제 재건에는 매년 대략 30~50억달러 정도의 경제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또한 우리 나름대로 북한경제 재건을 위한 계획이나 돌발상황에 대한 대응플랜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이라크의 경우처럼 다국적 에너지·건설기업들이 북한 재건사업을 독점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의 리더십 체인지가 한국에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고 정몽헌 회장이 대북비밀송금의 대가로 북한과 맺은 ‘7대사업 독점사업권(남북철도·도로 연결, 통신사업, 전력 이용, 통천 비행장 건설, 금강산 저수지 물 이용, 관광명승지 종합개발, 임진강댐 건설 등)’도 김정일 위원장이 실각하면 무용지물이 될 공산이 크다.

    미국이 리더십 체인지를 강행할지, 아니면 김정일 체제의 자체개혁 유도로 방향을 전환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단 8월 말로 예정돼 있는 6자회담의 결과가 중요한 분수령이 되리라는 점에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문제해결 프로세스(체제보장 및 핵사찰 방법의 협의 등)가 시작되는 경우에는 자체개혁 유도로 돌아서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난민촌 건설 발표 등 적극적인 정권교체 실행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8월과 9월 사이, 작게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크게는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가을이 왔음에도 한반도는 여전히 뜨거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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