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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연주자 류복성의 파란만장 음악인생 45년

“미친 듯 살아온 지난날, 그래서 더 짜릿했다”

  • 글: 정우식 기독교방송 라디오국 PD cws74@cbs.co.kr

재즈 연주자 류복성의 파란만장 음악인생 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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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복성씨의 연주인생은 그대로 한국 재즈의 역사와 오버랩된다. 해방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주한미군 전파를 타고 흘러나온 재즈연주에 매료되어 음악을 시작한 그였지만, 그가 만드는 음악의 가치를 몰라주는 대중의 외면과 제작자들의 무관심 때문에 숱한 역경을 거쳐야 했다. 이제 그에게는 ‘재즈 1세대’라는 자랑스러운 호칭이 따라다니지만 그는 여전히 재즈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운할 따름이다.

-그래도 최근 십수년 사이 ‘재즈 열풍’이 불기도 했잖아요. 그 또한 고생하며 음악을 만들어오신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흔히 나나 최세진, 신관웅, 정성조 같은 연주자들을 보고 1세대라고들 하는데, 사실 그 전에 이미 씨앗을 뿌린 분들이 많아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이정식씨(현재 활동중인 색소폰 주자 이정식씨와는 동명이인)는 존 콜트레인식 연주를 멋지게 소화해내시던 양반이었지. 1960년대 이후로 국내에서 열린 굵직굵직한 재즈공연이 대부분 내 손을 거쳐 기획된 건 사실이에요. 그러면 내가 곧 한국 재즈의 역사라고 해도 되는 건가(웃음). 한때는 한국재즈사 같은 책을 써보려고도 했는데 이제는 누군가 그 일에만 집중할 사람이 있어야겠다 싶어요.”

-그래도 요즘은 토종 재즈음반이 곧잘 나오는 편이지 않습니까. 그 중에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음반도 꽤 있었고요. 실력 있는 뮤지션도 많이 늘어난 것 같은데요.

“그게 지금 생각하면 참 서운해요. 내가 예전에 냈던 음반들은 반응이 영 꽝이었거든. ‘강병철과 삼태기’에서 기타를 치던 강병철씨 기억해요? 그 사람하고 함께 ‘라틴 코리아나’라는 앨범을 만든 게 31년 전이에요. 몇 년 후에는 ‘류복성과 신호등’이라는 판도 냈고.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였어요. 지금 돌이켜봐도 제대로 만들어진 음반은 아니었거든. 완전 실패작이었지.”



한국에서 재즈를 한다는 것

재즈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욕심에 그가 선택한 방법은 TV였다. 앞서 얘기한 ‘수사반장’을 비롯해 각종 프로그램 삽입음악을 만드는 것은 물론, 경음악 프로그램부터 ‘명랑운동회’까지 심심찮게 출연했다. 1960~70년대 활동한 대중음악인 중에 자기만큼 TV에 많이 나간 사람은 없었을 거라는 회고다.

그러나 그의 뜻과는 달리 텔레비전은 재즈를 외면했다. 채널 어디에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개해주는 곳이 없었고, 재즈전문 프로그램 하나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런 현실은 아직까지도 거의 변함이 없다.

“요즘엔 왜 방송에서 모습을 보기 어려우냐”는 질문에 그는 “늘 나가고 싶지만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내 연주를 무슨 동물원 원숭이 재롱인 듯 취급하는 꼴이 보기 싫어 이젠 나가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무렵에는 재즈를 연주할 만한 방송이 전혀 없었습니까.

“간간이 무대가 생기곤 했지만 조금 지나면 금세 닫히는 거예요. 아마 1970년이었을 거야. 한 방송국 PD가 당시 미국 공보원에서 재즈공연 실황 필름을 하나 구해 방송했어요. ‘뉴 포트 재즈 페스티벌’이라고 아주 엄청난 공연이었죠. 그런데 그 일로 윗사람한테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는 거야. 누가 그런 걸 보겠냐는 거지.

결국 그 PD가 방송국을 옮겨서 재즈전문 라이브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그 무렵 한다 하는 뮤지션들은 전부 불러모아다가 흡사 재즈클럽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굉장한 시도였지. 지금도 그 정도 수준의 음악 프로그램은 없다고 봐요. 내가 솔직히 불만이 많아. 클래식 채널도 있고 대중음악 채널도 있는데, 왜 재즈 채널은 없냐고.”

-요즘은 라디오나 위성채널에 장르음악을 전문으로 방송하는 프로그램도 많이 있는데요.

“그런 방송에 가끔 나가곤 했지. 위성채널에서 방영하는 재즈전문 프로그램에도 한 여덟 번 나갔나. 조금 지나니 아니나다를까, 프로그램이 없어지더군요. 국장이 바뀔 때마다 편성이 바뀐다나. ‘재즈열풍’이 불었다면서 왜 방송에는 안 나옵니까. 날이면 날마다 10대 어린애들 소리지르는 음악 프로그램만 늘어나고. 30~40대는 도대체 뭘 들으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한국에서 재즈 음악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되고 무모한 일이었노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재즈의 고향이라는 미국은 물론, 가까운 일본만 봐도 이렇지는 않다는 것. 여기에는 국내 뮤지션들의 책임도 있다는 말이 이어졌다. 1950~60년대 유행하던 오리지널 재즈만이 진정한 재즈라 고집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재즈-퓨전, 라틴 등 재즈에서 출발한 보다 대중적인 스타일의 음악도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아쉽다는 지적이었다.

그가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흡사 종교적인 열정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무엇이 그를 그토록 강력하게 사로잡은 것일까. 그는 무엇 때문에 미친 듯 재즈를 사랑해온 것일까. 그의 지나온 생애가 저절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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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우식 기독교방송 라디오국 PD cws7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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