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 중심부, 황궁 옆에 위치한 관청 밀집지역 가스미가세키 일대
패전의 잿더미에서 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또 다른 ‘전면전’을 치르는 데 있어 일사불란한 일본의 관료, 관료제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제는 장기호황에 따른 사회적 피로 현상, 그 결과 생긴 생산성 저하와 목표 상실, 정보기술의 급진전에 따른 경쟁 패러다임의 변화, 지방분권화 등 급변하는 사회적 요구에 제대로 적응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국가발전의 초석’에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한 일본의 관료제도. 별다른 반성 없이 그를 답습해온 한국. ‘관료 왕국’ 일본을 해부하는 것은, 그래서 ‘경제도 2류, 정치도 2류’로 보이는 오늘의 한국을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유용한 분석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최고 명문대학인 도쿄(東京)대 캠퍼스 내 공간정보과학연수센터 야쓰다 다쓰오(八田達夫) 교수 연구실. 지난 6월5일 오후였다. 전화 벨이 울렸다.
“용적률에 관해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온 내각부 간부의 말에 야쓰다 교수는 잠시 할말을 잊었다. 야쓰다 교수는 행정규제 완화 차원에서 고층주택 용적률 완화에 관한 논의를 진행해온 정부 자문기구 ‘종합규제개혁회의’의 일원이었다.
규제완화? 누구 맘대로!
“용적률 건은 국토교통성 도시지역정비국장과 내각부 정책총괄담당관 사이에 이야기가 잘 됐고요, 이미 이시하라 노부데루(石原伸晃) 행정개혁담당 장관 승인도 다 얻었습니다.”
고층주택에 대한 용적률 완화 건은 개혁회의가 중점을 두고 심도 있게 논의해온 12개 항목 중 하나였다. 해당 분야 전문가인 야쓰다 교수는 그간 책임을 맡아 국토교통성 간부들과 한창 절충을 벌여왔다. 그런데 그도 모르는 새 결론이 났다니 놀랄 수밖에.
야쓰다 교수는 전자우편을 통해 개혁회의 위원들에게 이 어이없는 상황을 알렸다. 민간 위원들은 의견을 모아 나흘 뒤인 6월9일 이시하라 행정개혁장관에게 더이상 양보할 수 없는 최저선에 대해 의견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시하라 장관은 행정부 관료들 사이에서 이 문제가 조정되길 원했다. 국토교통성 담당 국장은 ‘오쿠라쇼(大藏省=재무성의 전신)’ 출신으로 전직 총리의 비서관을 지낸 사람이었다. 그는 이시하라 장관의 뜻이 무엇인지를 오랜 정관계 생활 경험을 통해 잘 알았다. 민간위원들과 관련부처 간부들 간에 의견이 잘 조정되지 않자 그는 ‘해당부처 의견을 무시해서는 결국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다’는 믿음 아래 정부 부처 간부들과만 협의를 계속했다.
6월12일 오후. 이시하라 장관은 국토교통성 담당국장을 대동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방문, “12개 항목 중 10개 항목에 관해 관계부처간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고했다.
개혁회의 의장인 미야우치 요시히코(宮內義彦) ‘오릭스’ 회장이 그같은 내용을 전해들은 것은 같은 날 밤. 그러한 결론은 민간부문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총리와 담판하는 수밖에 없다고 여긴 그는 다음날 총리 면담을 요구했으나 일정이 다 찼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위기를 느낀 그는 개혁성향의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경제재정상과 경제재정자문회의 의장인 우시오 지로(牛尾治郞) ‘우시오전기’ 회장에게 ‘SOS’를 타전했다.
일요일인 6월15일 다케나카 장관과 우시오 회장이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관방장관에게 규제개혁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후쿠다 장관도 “개혁은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라며 동의를 표시했다. 이것이 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