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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이오덕의 들판이야기

흙을 밟아야 살 수 있는 사람들

흙을 밟아야 살 수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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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도랑말에 혼자 사는 노인이 있다. 성은 김씨. 나이는 일흔. 부인은 오래 전에 농약을 마시고 죽었다. 딸 하나, 아들 둘을 두었는데, 모두 서울 근처에 나가 산다. 딸은 시집을 갔지만 아들 둘은 아직도 결혼을 못 하고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학교도 못 다니고 일만 하는 사람은 도시에 나가서도 결혼 상대가 없다. 마을에서 결혼한 딸은 남편이 술고래로 살다가 결국 술로 죽고 말았다. 하도 가진 것이 없어서 혼례식을 치르지 못하고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살았는데, 남편이 술로 거의 죽게 되자 마을 사람들 도움으로 마치 송장하고 혼례식을 치르듯이 했다. 그렇게라도 죽기 전에 예식을 올려야 된다고 해서다.

이 김노인은 남의 집 머슴으로 살다가, 지금은 남의 밭을 조금 부치고 품팔이로 살아간다. 손수 밥을 지어 먹으니 빚은 물론 없다. 다른 데서도 말했지만 농사 많이 지어서 그것을 팔아 돈벌이하려고 하는 사람치고 빚 없는 사람이 없지만, 자기 식구들이 먹을 만큼 짓거나 품을 파는 사람은 빚 없이 살아간다. 도시에 나가 있는 두 아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 자식들 때문에 생활보호대상자로 혜택을 받을 수도 없어, 도리어 자식들이 큰 짐으로 되어 있다.

차를 타면 멀미가 나는지, 아무리 먼 길이라도 걸어다닌다. 요즘은 이발을 하거나 무슨 씨앗을 사야 할 때, 이삼십 리를 걸어서 면사무소가 있는 곳이나 금왕읍까지 걸어다닐 뿐이다. 한 해 동안 몇 번만 그렇게 걸으면 그만이다. 경운기고 무슨 기계고 손대지 않고 다만 호미로 김매고 괭이로 골을 타는데, 어쩌다가 소를 빌릴 수 있으면 그 소로 밭을 갈기도 한다.

김씨 노인이 공짜로 부치는 산골 밭뙈기가 3킬로미터쯤 되는 곳에 있어, 한번은 우리 아이가 트랙터로 갈아주고 싶어서 그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노인을 안아서 트랙터에 태웠다. 그랬더니 깜짝 놀란 노인은 그만 기겁을 하고 차에서 문을 열고 기어나오다시피 해서 나와버렸다. 그러고는 밭을 못 갈아도 좋으니 차는 타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 할 수 없이 노인과 같이 걸어서 십리 가까운 곳으로 가서 그 밭 자리를 알아놓고 다시 돌아와 트랙터를 몰고 가서 갈아주었는데, 밭 가는 시간보다 걸어다닌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한다.

이 근처 사람들은, 어떤 사람도 이 노인이 차를 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면 직원들도 가끔 기회가 있어 이 노인을 차에 태워주려고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고 한다.



김씨 노인은 어째서 그토록 차를 타지 않겠다고 하는가? 언젠가 한 번 차를 탔다가 심한 멀미가 나서 혼이 났는지도 모른다. 옛날부터 시골 사람들은 차를 타게 되면 거의 모두 멀미를 한다. 차를 타고 단 1분도 안 되어 속이 울렁거리고 토하기 예사다. 그런 고통이 없고 차 속이 지옥으로 느껴진다. 이것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차멀미를 하도 많이 해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는 나처럼 차를 못 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차를 즐겨 타는 사람이 있다. 이 둘 중에서 차를 못 타는 사람은 산짐승이나 들짐승에 가까운 몸 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현대의 기계문명 속에서는 그 생리를 맞출 수 없다. 하지만 참으로 깨끗한 자연의 심성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김노인은 참으로 보기 드문 산사람 들사람이다. 그 오랜 세월 온갖 바깥 환경이 이 노인을 마치 장난감처럼 마구잡이로 괴롭혔을 터인데도 끝내 제 몸과 마음을 지켜왔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차를 범보다 더 무서워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우리 시대에, 더구나 바로 내 이웃에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다는 것이 이만저만 위안이 되지 않는다.

쇠붙이집과 정신병자

내가 있는 마을에서 찻길까지 가는 산기슭 길을 빙 돌아가면 왼쪽 산위로 지금은 부도가 나서 텅 비어 있는 큰 공장건물이 쳐다보이고, 그 공장 높은 옹벽 아래 마을 사람들이 사는 집이 네 채 있다. 그 중 한 집은 쇠붙이로 된 조립식이다. 그 집에는 70쯤 되는 노인 내외와 아들이 살았는데, 그 집에 들어가 살기 시작한 지 한 해 가까이 되자 할머니가 그만 정신병에 걸리고 말았다. 사람을 못 알아보고, 말을 횡설수설 알 수 없게 했다. 정신병원에 데리고 가서 2년 동안 치료했지만 낫지 않았다. 영감님이 생각 끝에 아무래도 낫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집에서 같이 사는 데까지 살아야겠다며 데리고 왔다. 집에 와서 다시 한 해가 지난 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이 일을 두고 우리 아이는 “사람이 쇠붙이 속에 갇혀 살면 병들어요”했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그런 조립식 집에 사는 사람이 적지 않고, 그런 사람들이 죄다 병들어 있어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은가 하고 물으면, “사람의 체질에 따라 얼마쯤씩 그 정도가 다르겠지만, 그 사람들 몸 어딘가에 조금씩은 다 고장이 나 있을 거고, 그래서 그 병통이 자기들도 모르게 자꾸 더해갈 겁니다” 하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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