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장석주의 책하고 놀자

상처받기 쉬운 남성의 초상 ‘보이’ ‘남자의 이미지’

  • 글: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상처받기 쉬운 남성의 초상 ‘보이’ ‘남자의 이미지’

2/2
이것을 가장 극렬하게 추구한 사람이 바로 독일 나치의 히틀러다. 나치 이론가들은 고대 그리스인의 이상형에서 영감을 받아 건장한 아리안족 남성의 신체규준을 만들었고 이것을 이상화해서 종교의 대용물로 고착시켰다. 그리스 조각 같은 남성의 육체는 곧 국가의 상징으로 조작됐는데, 이는 전쟁을 수행할 남성을 길러내야 한다는 국가적 필요성이 반영된 것이었다. 단련된 신체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그가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국민의 소유물이었다.

인종주의는 신체 단련과 조형에서 시작해 이상적인 남성의 정신적 자질들, 이를테면 “충성과 정직, 우애와 순종, 기강과 용기” 등과 같은 윤리적 명령으로 나아간다. 아울러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리스 조각에 가까운 신체적 단련과 조형이 갖는 미학적인 호소력과 국가사회주의가 유포한 숭고한 대의는 그런 차별과 폭력의 야만성을 희석시키고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상화된 남성 모델에서 벗어난 유대인들에 대한 나치의 반이성적, 반인륜적 인종학살은 이성의 마비라는 무대 위에서 벌어진 ‘진부한 악’의 광란이고 유희였다. 히틀러의 악랄한 인종주의는 나치 이론가들이 만들어낸 아리안족 남성의 스테레오타입이라는 바탕 위에서 성립한 것이다.

전쟁은 오로지 남자만의 것이다. 여성의 참전은 간호사나 매춘부와 같은 부수적인 역할에 한정된다. 전투원은 언제나 남자들이고 용감한 병사는 진정한 남자다움의 신체적, 정신적 자질의 적절한 상징이다. 전쟁을 통해 소년은 비로소 남자로 태어난다. 군대는 소년의 신체를 단련하고 국가나 위계질서에 대한 복종과 존중심을 심어주며 국가에 충성하고 전쟁에 참여하는 게 숭고한 대의에 따르는 것이라는 신념을 키워준다. 숭고한 대의는 남자다움의 이상형에 복무하는 것인데, 그것의 기원은 다름 아닌 국가다.

남자가 된다는 것은 전쟁을 수행할 만한 육체적, 도덕적 자질을 갖추는 것을 뜻한다. 아울러 전쟁은 공격성과 폭력을 숭고한 대의에 수렴시킴으로써 정당화한다. 그러니 남성성과 군국주의 파시즘 이데올로기가 그토록 자주 자기동일성의 범주에서 겹쳐져 작동하는 것이다.



사회는 끊임없이 ‘남자답다’ 혹은 ‘여자답다’는 규범을 만들고, 그 규범을 도덕으로 보편화하며 미풍양속으로 강화한다. 남자가 육체적, 도덕적 강인함을 추구하며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숭고한 대의에 복무하도록 훈련받는 동안, 여자는 가정에서 남편에게 평화와 안락을 보장해주는 존재로 양육된다. 내면의 자발적 욕구가 아니라 밖에서 주어진 강제에 의해 그 ‘다름’을 신체의 안팎에 각인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자나 여자 모두 본래적 자기에서 일탈하는 경험을 겪는다.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고 강제하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의 규범을 위반하면 크고 작은 처벌이 따른다.

왜곡된 남성 담론의 결과물

이처럼 우리의 관념 속에 자리잡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이미지들은 대부분 역사적으로 조작되고 왜곡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힘차고 활기차며 건장하고 당당한 존재로 표상되는 남자다움은 가부장적 권력을 위해 만들어진 왜곡된 남성 담론의 결과물이며, 나약하고 온화하며 눈물이 많은 여성 이미지 역시 가부장적 권력이 남자를 차출해서 써먹기 위해 만든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 입장에서 보면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들은 가부장적 권력이 남자를 차출해 갔을 때의 빈자리를 메워야 할 존재일 뿐이다.

여성이 그릇된 고정관념적인 이미지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면 남성 역시 왜곡된 남성성의 이미지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신동아 2005년 1월호

2/2
글: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목록 닫기

상처받기 쉬운 남성의 초상 ‘보이’ ‘남자의 이미지’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