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호

집 나간 ‘교양’을 찾습니다!

  • 글: 김현미 동아일보 미디어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4-12-28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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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나간 ‘교양’을 찾습니다!

    2004년 11월27일 가톨릭대는 학술대회를 열어 교양교육의 개편방향을 논의했다.

    “요즘도 ‘로마인 이야기’예요?”학술행사를 마친 뒤 뒤풀이 자리에서 서울대 주경철 교수(서양사학)와 마주한 김에 물었다. 몇 년 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대해 칼럼을 쓴 적이 있는 주 교수는 서울대 입학시험 면접에서 “역사학 책 중에 읽은 책이 있느냐?”고 물으면 수험생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로마인 이야기”라고 대답한다고 얘기했었다. 그 사이 몇 년이 지났으니 ‘수험생들의 반응도 조금 달라졌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물은 건데 주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한 수험생이 ‘로마인 이야기’라고 대답했는데 다음 수험생이 또 ‘로마인 이야기’라고 하면 면접관들의 반응이 ‘너도냐?’예요. 다음 수험생까지 ‘로마인 이야기’를 꺼내면 ‘이제 그만하라’고 짜증을 낼 정도입니다.”

    주 교수는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평가를 떠나, 학생들의 대답이 천편일률적이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이렇게 모범답안에 익숙한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영상세대라 텍스트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가 싶어 ‘역사와 영화’라는 과목을 개설했죠. 하지만 마찬가지예요. 영화평을 하면서도 자기 생각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짜깁기를 하니 똑같을 수밖에요.”

    그날 대화는 ‘기본기가 탄탄할 때 창의성도 나오는 것인데 기본이 안 돼 있다’ ‘대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이 형편없다’는 비판으로 시작되어 마침내 ‘남의 이야기를 듣는 참을성도 없다’는 성토로 이어졌다.



    말하기, 쓰기부터 다시 가르쳐

    몇 년 사이 대학들이 교양교육 개편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다. ‘교양국어’ 수준에서 벗어나 글쓰기, 발표, 토론 수업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21세기적 교양을 기르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는 것. 동덕여대는 ‘독서와 토론’ ‘발표와 토론’을 교양필수로 채택했고, 세종대 교양학부는 ‘논술’ 과목을 개설했다. 숙명여대의 ‘의사소통능력개발센터’나 가톨릭대의 ‘교양교육원’, 서울대의 ‘기초교육원’도 같은 목적에서 신설됐다.

    2004년 11월27일 가톨릭대가 주최한 학술행사 ‘학제적 교양교육의 이념과 교육현장’도 교양교육의 개편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가톨릭대는 2004년 1학기부터 지식기반사회에서 필요한 핵심능력을 창의력(Creativity), 분석력(Analytical Competence), 문제해결력(Problem-solving Competence)으로 개념화하고, 1500여명의 학생을 30명 단위로 반 편성을 해서 국어국문학, 철학, 논리학, 사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학 등 각 분야 8명의 전담교수가 6학점 필수의 교양교육을 맡고 있다.

    가톨릭대 교양교육원의 하병학 교수(철학)는 “학생들이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논리적 구성과 정서법에 결함이 많고, 강의실에서 하나의 완결된 문장으로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학생을 보기 힘들다”면서 “대학에서 전공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논리적 사고와 의사소통능력 같은 교양교육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톨릭대의 교양교육 개편방향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조동일 교수(계명대 석좌교수)는 “고등학교 수준에서 길러야 할 능력을 대학에서 획일적인 교과과정으로 가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작문을 필수로 하자”고 제안했다. 반면 단국대 최재화 교수(경영학)는 “중고등학교에서 입시교육만 받고 진학하는 오늘날 대학생들의 수준을 감안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폈다.

    대학들이 고전 읽기와 글쓰기 교육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서 기초가 부족하면 평생 고생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이대로 가면 대학 1학년을 고교 4학년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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