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일본 학자의 교과서 왜곡 참회록

일본은 전쟁 책임과 전후 책임을 함께 져라!

  • 글: 미네이 마사야 일본 센슈대 교수 번역: 정리 홍윤기 한일국제왕인학회장

일본 학자의 교과서 왜곡 참회록

3/4
일본 학자의 교과서 왜곡 참회록

2001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군 위안부 관련 내용을 삭제하는 등 왜곡된 교과서를 검정한 일본을 규탄하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

‘궐기회’는 그후 여러 가지 활동을 해왔다. ‘궐기회’는 후소샤가 발행한 중학교 공민교과서 편집에 깊숙이 관여해온 묘조대 다카하시 시로 교수가 2004년 12월 사이타마현 교육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을 때도 항의 성명을 냈다.

지난 1월 히로시마에서는 ‘제23회 교육문화 포럼’이 열렸다. 이날의 강연자는 류큐대 다카지마 시노부(高嶋伸欣) 교수였다. 그는 ‘이에나가 사브로(家永三郞) 교과서 재판’에 뒤이어 교과서 재판을 벌이고 있다(‘이에나가 사브로 교과서 재판’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정면으로 항의하며 싸워온 도쿄대 이에나가 사브로 교수가 승소한 교과서 재판으로 이름높다-옮긴이). 다카지마 교수는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는 연제의 강연에서 후소샤가 2001년에 이어 또다시 저지른 왜곡의 문제점을 강하게 성토했다.

알려지지 않은 지리교육 왜곡

다카지마 교수는 ‘알려지지 않은 지리교육의 전쟁 책임’이란 연구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논고를 통해 다카지마 교수는 후소샤의 중학 역사·공민교과서만이 문제가 아니며, 전쟁의 책임을 자각해 자기비판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른 일본 지리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 한 대목을 소개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수신과 국사 과목에서는 신화(神話)를 사실로 내세워 천황의 신격화를 유지시켜 칙어(勅語·누구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천황의 유시)와 어진영(천황의 사진)을 다루는 의식(儀式)과 체벌(體罰)로 공포감과 동물적 충성심을 심었다. 그 때문에 전쟁 후 강력한 사회적 반발이 나타나 전쟁 책임을 정면에서 추궁받게 됐다.



다른 한편으로 지리학과 지리교육은 신화의 경우만큼 극단적으로 사실이 왜곡되지는 않았다. 본래 지리학은 지형·기후 등 자연분야가 연구대상이다. 따라서 전쟁 전과 전쟁 중 대다수 지리학자는 자원을 획득하려는 침략전쟁을 위해 자원조사에 참획(參劃)한다는 정도로 관대했다. 그러나 인문지리학 분야는 달랐다. 소위 ‘대동아(大東亞)’의 여러 민족을 멸시하고, 일본이 맹주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내용의 아시아관을 체계화했으며, 그것이 곧 황국사관이다.”

이번에는 ‘마음의 노트’를 살펴보자. ‘마음의 노트’는 문부과학성이 일본 초·중학교(국·공·사립 포함) 학생의 부교재로 만들어 2002년 4월부터 배포한 것이다. 초등학교는 저학년용과 중학년용, 고학년용이 있고, 중학교는 한 종류여서 모두 네 종(種)이다. 그것의 교육 방향성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국민이 풍요롭고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형성하고, 세계평화에 공헌하려 힘써왔다. … ‘야마토 정신’과 자연을 외경하고 조화하려는 마음, 종교적 정서 등은 우리 생활에서 소중하게 여겨져 왔다. 그러한 우리 선인들의 노력, 전통과 문화를 자랑삼으면서 지금부터 새로운 시대를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일본인을 키워내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 전 일본의 침략 행위와 식민지주의에 대한 반성이나 비판은 전혀 없으며, 다만 일본의 ‘뛰어난’ 전통과 문화만 강조되고 있다. 바로 그것이 ‘마음의 노트’를 교재로 쓰도록 강제당하는 일본 도덕교육의 기초다. 일본 청소년은 비(非)역사적인 일본 가치에 바탕을 둔 도덕교육을 받는 셈이 된다. 실로 근현대의 역사를 망각한 ‘일본인’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전쟁 전에 교육을 받은 전직 중학교 교사들은 당시 ‘교육에 관한 칙어’에 바탕을 둔 수신 교과서와 이 ‘마음의 노트’가 그 구성과 내용에서 극히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마음의 노트’는 국가에 대한 잘못된 일체감을 심어주는 내용이 되고 마는 것이다.

후소샤의 교과서는 일본의 내셔널리즘 교육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실상은 일본의 교육이 총체적으로 그런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데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테면 졸업식과 입학식에서 ‘일장기 게양’, ‘국가 제창’을 전국적으로 강제하는 사태는 심각한 노릇이다.

일본에 ‘평화교육’은 없었다

필자는 교육기본법이 제정·공표된 1947년에, 오키나와현 출신의 아버지와 가고시마현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때가 1954년 4월이다. 전후 교육을 받고 자라난 것이다. 그런 교육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탄 피폭이다.

3/4
글: 미네이 마사야 일본 센슈대 교수 번역: 정리 홍윤기 한일국제왕인학회장
목록 닫기

일본 학자의 교과서 왜곡 참회록

댓글 창 닫기

2021/05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