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 10년 세월 두 번에 걸쳐, 모두 2년8개월 동안 교육부 수장을 맡았던 필자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그 자리에 있을 때나 나와서나 좌불안석이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정부와 교육당국이 책임져야 할 몫이 가장 클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교육 및 교육당국에 대한 불신과 비판이 그치지 않는 데는 다음과 같은 정황적 원인도 함께한다.
교육이 불신에 휩싸인 까닭
우리 국민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다. 전설적인 한국인의 교육열은 우리 교육발전의 원동력인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운 큰 짐이 돼 왔다. 1200만명에 육박하는 각급학교 학생들, 50만명에 이르는 교원들, 그 수를 훨씬 뛰어넘는 학부모들, 기타 다양한 교직단체와 시민운동가들, 교육산업 종사자들…. 다양한 교육수요자와 교육공급자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다. 또한 그 관심이 각자의 이기적 관점과 눈앞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분출되고, 저마다 교육전문가를 자처한다.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누구든 교육과 연관해서 얼마쯤은 한(恨)이 맺혀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못 배운 한’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더욱이 광복 이후 우리 사회가 급변하는 가운데, 교육이 계층과 신분상승의 선도변수로 인식됐기 때문에 양질의 교육과 인생의 성공을 등식화(等式化)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러다보니 전 국민이 ‘일류대병(病)’에 감염됐고, 심각한 학벌주의의 노예가 됐다. 그 결과 교육과정에서 빚어진 작은 실패도 당사자는 천추의 한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다시 교육제도와 정책, 그리고 교육당국에 대한 강한 불만과 분노로 투사된다.
교육당국이 교육정책을 형성하고 관리하는 데서 겪는 어려움의 큰 원천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이념적 갈등이다. 언뜻 보기에 교육문제는 탈(脫)이데올로기의 영역인 듯싶지만 실은 거기에 첨예한 이념적 갈등이 도사린 경우가 많다. 이념의 여울에 빠지면, 만사를 정(正)과 사(邪)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 문제 해결에 나서면 나설수록 사회적 갈등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기 일쑤다. 대부분의 교육 쟁점에선 여론이 반으로 갈라지는 경우가 잦고, 그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현재 쟁점이 된 이른바 3불(不)정책(고교등급제·본고사·기여입학제 금지)이나 교육개방, 사립학교법도 모두 그런 예다.
일반 국민의 교육 및 교육당국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호의적이지 못한 원인에는 대(對)언론 관계도 포함될 것이다. 교육에 관한 정책은 대체로 언론을 가교로 해서 국민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문, 방송사에서는 교육 관련 기사를 사회부가 맡는다. 이 점에서 교육이라는 독자적 섹션을 갖춘 외국 언론과 차이가 있다. 최근 몇몇 언론사에서 교육팀을 가동하고 있지만 아직 사회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사회부에서 교육을 다루면, 교육문제가 ‘사건’이 될 개연성이 크다. 교육 관련 소식이 사건으로 다뤄질 때 자칫 교육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이 부각될 가능성이 크고, 기사가 선정적으로 흐르기 쉽다. 교육에 대한 기사가 교육계의 각종 갈등이나 분쟁, 부정이나 비리로 얼룩지는 까닭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국민의 뇌리에 입시부정이나 촌지, 학원폭력 같은 부정적인 사건이 강하게 부각되면 교육계나 교육당국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고 이는 신뢰의 위기로 번진다.
이러한 이유로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는 비판과 질타의 표적이 되고, 교육부총리는 국무위원 중에서 최악의 3D 직분으로 정평이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