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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법관’ 이정렬 서울남부지법 판사

“판사는 민주주의 수호자 아닌 법치주의 실현자,‘법대로!’만 외쳐도 세상이 바뀝니다”

  • 글: 정호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demian@donga.com

‘튀는 법관’ 이정렬 서울남부지법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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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학번이면 입학해서 데모부터 했겠네요. 서울대 법대 운동권도 극성맞았을 테고….
“그냥 따라다닌 정도였어요. 서클활동 하면서 사회과학 공부를 집중적으로 했는데, 좀 시시한 느낌도 들었고. ‘혁명’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는데, 권력을 가진 위치에서 엎어버리는 게 빠르다고 생각한 시기였어요. 결정적으로, 운동권은 뒤엎은 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더군요. 혁명 이후에도 체제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래서 학생운동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어디서 활동했습니까. 또한 결별 계기는?
“2학년 말까지는 통상 행동대에서 활동하잖아요. ‘전두환·이순자 체포결사대’ 조직원인 때도 있었죠. 그러다 3학년 초에 평양축전 문제로 가투(街鬪)를 나갔다가 친구가 구속됐는데, 걔로부터 ‘정렬이 너도 지명수배 된 것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충격을 받은 아버지가 그날로 자동차 대리점 매장에 진열된 르망 승용차를 사주셨어요. 불심검문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더군요. 그래서 3학년 때부터 차를 몰며 오렌지 아닌 오렌지가 됐지요.”

전두환 체포 결사대원이 승용차 오너가 된 극적인 반전. ‘각본’대로라면 지명수배 된 것을 안 순간 지방으로 몸을 숨기거나 현장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게 순서다. 불심검문을 피하라고 아들에게 자동차를 선사한 아버지의 결단은 1980년대의 경제성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터. 이후 사법고시를 준비한 그는 2년 반 만에 우수한 성적으로 33회 사법고시(1991)에 합격한다. 만 22세 때다.

“운동으로는 어림없다”

-‘운동권’에 더 남아 있어야 하지 않나 고민하지 않았나요.
“운동이냐 사회 진출이냐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있었지만, 1988년 체포결사대를 마지막으로 ‘이걸로는 어림없다’고 결론 내린 상태였어요. 운동권에 남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학업으로 복귀했는데, 아무래도 서울대 법대의 특성상 집안의 이해관계와 무관치 않은 결정이었겠죠.”



서울대 법대 87학번 270여 명 가운데 200여 명이 고시에 합격했다.

-존경하는 교수나 인물은?
“당시 서울대 법대생들은 한마디로 기고만장 그 자체였어요. 저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무엇이든 다 알고 할 수 있을 것처럼 굴었죠. 당시 경제학을 가르치신 임원택 교수님이 기억나네요. 일본에서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을 공부하신 분인데, ‘60년간 마르크스주의자였는데 지금 되짚어보니 틀렸다고 생각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어요. 누군가는 비웃었지만 저는 그 나이에 견해를 바꿀 수 있는 자세를 존경했습니다.”

이쯤 되면 그의 대학시절은 1980년대 운동권 스타일보다 1990년대 학번에 가까운 특징을 보인다. 포스트 모더니티 시대를 살아왔다고 표현하면 과장일까. 권력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문화적으로 혁명 이후의 ‘하루키 세대’로 분류하는 것도 어색하다.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 와타나베를 꿈꾸던 나가사와였을까, 아니면 그 반대였을까.

40등 언저리의 괜찮은 성적으로 사법연수원을 마친 그는 판사를 지망했다. 군에 입대하면서 특전사 법무관을 지원한 것도 흥미롭다. 지금도 그는 특전사에서 겪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자랑스레 회고한다. 그의 집무실 한구석에는 검은색 베레모가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다. 그의 당당한 체구 역시 특전사 시절 다듬어낸 훈장일 터.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 또한 사무적인 판사보다 현장을 중시하는 강력부 검사에 가깝다.

이 판사 친구의 결혼식은 성황리에 끝났다. 서강대 동문회관 결혼식장에서 홍대 앞 ‘아트 스페이스’로 차를 몰았다. 한 시민단체가 주최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60년 자료전’ 마지막 날이었다.

의외로 전시회는 젊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혹시나 새로운 자료가 있을까 해서 들른 길이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그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어색하게 인사를 받은 그는 쑥스러운지 바로 전시회장을 빠져나왔다. 남부지법 그의 사무실에서 인터뷰가 재개됐다. 그는 통닭 두 마리를 시켰다. 인터뷰 도중에 통닭이라니. 그는 그렇게 소탈하다. 한 마리는 남부지법 경비실로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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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호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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