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윤필립 시인의 시드니 통신

호주 조기유학 百態

도박, 매춘… 벼랑에 선 ‘나홀로 유학族’, ‘24시간 매니저’로 뛰는 ‘기러기 엄마’들

  • 글: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ipsyd@naver.com

호주 조기유학 百態

2/8
그 무렵 강남지역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조기유학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조기유학은 우울증에 시달리던 엄마에게 한 줄기 햇살이었다. 하여, 나의 조기유학은 아무런 고민 없이 한순간에 결정됐다.

엄마는 공부 못하는 딸 때문에 받는 낭패감을 떨쳐낼 수 있는 그럴 듯한 출구를 찾은 셈이고, 무엇보다 나는 공부라는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었으니 망설일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아빠는 여전히 무관심으로 일관하셨다. 친구 여러 분을 집으로 초대해 하나뿐인 딸이 호주로 유학을 간다며 술을 드셨지만, 내가 호주로 떠나오던 날 김포공항에서 아빠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나의 호주 유학은 한마디로 한국이라는 경쟁사회에서의 도피였다. 주변사람들에게 내보이기 창피한 애물단지를 유학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바다 건너 시드니로 내동댕이쳐버린 유기(遺棄)였다.

영어가 힘든 건 서울에서나 시드니에서나 다를 바 없었다. 가뜩이나 하기 싫은 공부를 통하지도 않는 영어로 한다는 건, 내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건 부모님뿐이었다.



거기에다 아무도 간섭할 사람이 없는 시드니의 무한정한 자유는 나를 빠른 속도로 병들게 했다. 서울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술과 담배가 내 친구가 되었다.

단지 학생비자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던 영어학교(Language School)엔 나와 비슷한 처지의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그들과 건전한 교제를 나누기엔 시드니는 너무 자유분방한 도시였다. 모든 게 엉망이었고 자율적인 통제가 불가능했다.

지금 돌아보면 모든 게 후회막급이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예기치 않은 임신이다. 임신중절을 하기 위해 부모님 모르게 서울을 다녀올 때 사는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참담했다.

더는 내려설 데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던 나는 딱 한 번 심기일전을 결심한 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서울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아빠의 회사가 도산했다는 것이다.

귀국하라는 엄마의 권유를 뿌리치고 돈벌이에 나섰다. 그러나 나는 돈을 쓸 줄만 알았지 돈을 버는 일에는 눈곱만한 재주도 없었다. 결국 학비를 내지 못해서 학생비자가 취소됐다. 막상 불법체류자가 되고 나니 유학생 시절에 누리던 자유가 한순간에 정지됐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지만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웠다.

마사지 팔러에서 성매매를 시작한 건 집세를 내지 못해 길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함께 성매매를 하던 친구가 교회에 나가라고 권유했다. 울면서 참회의 기도를 올리던 어느 날 아침, 귀국을 결심했다.

수연이는 다니던 교회의 A목사를 통해 필자에게 귀국한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공항 주차장에서 만난 수연이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담배만 연신 피워대는 수연이를 보면서 ‘잘못된 유학’의 끝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돌아가요. 그나마 무참히 깨지면서 익힌 영어가 앞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하며 수연이는 공항출구를 빠져나갔다. 수연의 뒷모습을 보면서, 무엇이 그의 유학을 실패로 몰고 갔는지 생각해봤다.

유학 성공의 열쇠 쥔 가디언

1999년 15세(중2)의 나이에 혼자 호주로 유학을 떠나온 수연이는 조기유학 1세대 그룹에 속한다. 호주에서는 성인으로 인정받는 18세 미만의 학생을 ‘조기유학생’으로 규정한다. 이 말은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까지 대부분이 조기유학생의 범주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조기유학생은 가디언을 둬야 한다는 법적 의무조항이 있다.

2/8
글: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ipsyd@naver.com
목록 닫기

호주 조기유학 百態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