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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의 한국혼 ⑦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외상 도고 시게노리

멸시받던 조선 도공 후예, 천황과 일본을 구하다

  • 글: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외상 도고 시게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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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외상 도고 시게노리

시게노리의 아버지 박수승.

마을 사람 대대로 그랬듯, 아버지 수승은 무덕의 할아버지 이구(伊駒)에게서 도예기술을 배워 익혔다. 수승의 기예와 사업감각은 일품이어서 무덕이 태어날 무렵 도자기 사업은 꽤나 잘 돌아가고 있었다. 수승은 가고시마에서 멀리 요코하마와 고베까지 나가 외국상인과 접촉하면서 도자기를 팔아 큰돈을 모았다. 이런 아버지의 해외 지향성이 아들 무덕에게 은연중 문명개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는지 모르겠다.

수승의 작품은 평판이 좋았기 때문에 그의 도자기를 독점하는 무역상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요코하마나 고베의 무역상 가운데 몇몇은 경쟁상대에게 물건이 넘어가지 않도록, 수승을 감시하기 위해 그를 태우고 다니는 전용 인력거와 차부(車夫)를 붙여 안내인 겸 감시자 역할을 맡길 정도였다.

그의 작품은 런던을 비롯한 유럽 도처에 팔려나갔다. 1970년대 일본이 고도성장기에 접어들 무렵 도쿄 아오야마(靑山)의 한 골동품상이 유럽에서 수승의 작품을 발견해 역수입한 사례도 있다.

술을 좋아하는 수승은 아침식사 때부터 검은 소주잔(집에서 구운 것)으로 한 잔씩 걸치는 습관이 있었다. 이치기(市來) 해변의 생선장수들이 나에시로가와에 장사하러 나갈 때면 “그 집(수승)에서 사줄 거야” 하고 되뇌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인심이 좋았다. 생선을 밀봉해서 찬 우물에 담가놓고 한 점씩 회를 떠 안주로 먹는 것이 수승의 취미였다.

외국문물을 좋아해 학교에 행사라도 있으면 당시로서는 진기한 물건이던 구두를 신고 나타났다. 큰 키에 당당한 체구의 그는 멋쟁이로 통했다. 수승은 “언젠가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라는 기계를 타고야 말 것”이라고 호언했다는데, 그 소원은 죽을 때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자녀들을 앞에 앉혀놓고 젊은 시절 서남(西南)전쟁(가고시마의 사족(士族)이 메이지 정부에 대항해 벌인 반정부 반란)에 종군하던 무렵을 회고할 때면, 열변을 토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는 열혈청년이었다. 또한 마을 앞의 높은 언덕, 단군을 모시는 옥산궁(玉山宮) 개축에 돈을 내는 데도 앞장서는 마을의 유지였다.

무덕의 어머니 ‘도메’ 역시 또 다른 박씨 성의 후손이었다. 머리가 좋고 기억력이 출중해서 언제 누가 와서 무슨 소리를 하고 갔는지 죄다 기억했다. 남편이 물으면 “그때는 이랬고 저랬다”고 확실하게 대답해주었다. 돈 거래에 관해서도 아주 작은 액수까지 완벽하게 기억하고 처리해 박수승 도자기방의 회계 겸 기록 담당이었다. 시집올 때까지만 해도 읽고 쓸 줄 몰랐지만 타고난 지력(知力)과 노력으로 글을 배우고 깨친 터였다.

수승 부부는 자녀들에게 엄했다.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도자기를 쌓아두는 창고에 가뒀다. 손녀 야마구치 도시의 증언에 따르면, 어린 그도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일상 용어를 잘못 쓰거나 경어 사용이 틀리면 조부모에게서 심하게 꾸중을 들었다는 것이다.

무덕의 인격 형성에는 이러한 양친의 기질과 조선 핏줄이 모여 사는 도공마을의 풍토가 배어 있다. 활달한 개화파인 아버지, 영리하고 섬세한 노력가인 어머니, 뚜렷한 자립의식과 경쟁에서는 이겨야 산다는 분위기가 살아 있는 마을의 전통. 이런 것들이 무덕의 운명을 만들어놓았다.

도자기 팔아 번 돈으로 성(姓)을 사고

무덕의 아버지 박수승이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꾼 사연은 애처롭고, 그 시대적 배경은 살벌하다.

메이지 유신의 폐번치현(廢藩置懸昭坪·번을 없애고 현을 설치하는 조치)과 더불어 도자기 제조업도 번의 지배에서 현의 지배, 즉 현영(懸營)으로 제도 자체가 바뀐다. 대변혁이었다. 그때까지 지켜주던 사쓰마번의 보호막이 걷히면서 이들은 차가운 세상의 한복판에 내던져지고 말았다. 일본 사회의 차별과 냉대가 엄습해왔다.

일본이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을 국시로 내걸며 서구열강을 따라붙자고 외치던 때였다. 한국, 중국 같은 아시아는 식민지 대상일 뿐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일본 우월주의 바람이 불어 대륙이나 반도 출신은 일단 열등하게 보는 것이 상식이 되고 말았다. 조선 풍속과 복식을 고스란히 유지해온 무덕의 고향 나에시로가와 사람들은 제국주의적 광기와 차별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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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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