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주가 MBC 드라마 ‘상도’에 출연한다고 알려졌을 때도 반응은 비슷했다. ‘상도’에서 김현주가 연기한 ‘다녕’은 미모와 총명함을 겸비하고 이재에도 밝은 장사꾼의 여식이다. 사람들이 걱정한 것은 ‘다녕’의 캐릭터 때문이 아니었다. 김현주의 이미지가 사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일종의 선입견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김현주는 ‘상도’에서 비교적 안정된 연기를 보여줬다. 뛰어난 평가를 받진 못했지만, 댕기머리를 한 김현주는 생각보다 사극에 잘 어울렸다.
‘상도’에 이어 사극 ‘토지’에 캐스팅되었을 때 김현주는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최서희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김현주는 기자에게 “열이면 아홉이 제가 최서희에 안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하며 세간의 반응에 대한 심경을 씁쓸히 털어놓았다.
사실 ‘토지’의 최서희는 누가 맡더라도 적잖은 부담을 안고 출발해야 하는 역할이다. 1대 최서희를 연기한 한혜숙과 2대 최수지의 색깔이 워낙 선명하기 때문. 두 번째 ‘토지’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될 당시 19세이던 신예스타 최수지는 이 작품을 통해 톱스타로 급부상했다. 그래서 ‘최서희는 곧 최수지’라는 공식이 만들어졌을 정도다.
두 배우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은 김현주는 “다른 색깔의 최서희를 연기해 보이겠다”고 장담했다.
“일부러 이전의 ‘토지’를 보지 않았어요. 한혜숙 선배님이 했던 것은 기억도 안 나고, 최수지 선배님이 출연한 ‘토지’는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아주 강한 서희였더라고요. 제 이미지 때문인지 이번 작품의 서희는 덜 표독스러운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작은 일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타입이라 일부러 인터넷과 기사도 보지 않았어요. 칭찬 열 개에 지적 한 개라도 그 지적만 마음에 걸리거든요. 인터넷에서 네티즌이 올린 글을 보고 연기에 참고하는 배우도 있다고 하는데 전 그릇이 작아서인지 그렇게 안 돼요. 이왕 하기로 마음먹은 거고, 전 제가 서희 역에 잘 어울린다고 자신하거든요(웃음).”
‘토지’가 방영되기 직전에 한 인터뷰에서 김현주는 이처럼 기다렸다는 듯 당당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 자신감만으로도 대작인 ‘토지’를 충분히 이끌어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연출을 맡은 이종한 PD는 최서희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김현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한다.
그러나 ‘토지’의 성공이 전적으로 김현주의 공은 아니다. 누구보다 악역 ‘조준구’를 연기한 김갑수에 대한 시청자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이 밖에 상대역 유준상과 도지원, 이재은 같은 조연진의 탄탄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토지’가 흥행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김현주가 털어놓은 콤플렉스
김현주는 발랄한 캐릭터를 연기하기에 적합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여배우로서 눈에 띄는 미모는 아니지만,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런 이미지는 김현주의 연기세계에도 분명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출연작 중 SBS 드라마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는 김현주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그가 연기한 ‘은재’는 조금은 망가진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배역이었고, 이를 보고 시청자들은 어느 때보다 더 유쾌해했다.
억척스럽게 돈을 모으는 은재의 모습에는 김현주가 SBS 드라마 ‘유리구두’에서 연기한 ‘선우’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툭툭 털고 일어나 웃을 수 있는 낙천적인 모습 말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김현주의 연기에 마음을 연다. 철없는 발랄함보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씩씩한 발랄함이 김현주의 얼굴에 담겨 있다.
‘토지’ 후반부에서 최서희가 50대 중반을 넘어선 할머니가 됐을 때도 제작진은 김현주에게 무리한 노인 분장을 요구하지 않았다. 김현주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제작단계부터 할머니가 된 최서희를 ‘곱게 늙은’ 모습으로 그리자는 계획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