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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이수탁 살부(殺父) 공판

희극과 비극이 뒤엉킨 백만장자 외아들의 패륜 드라마

  • 글: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이수탁 살부(殺父) 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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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첩살이를 시작한 박소식의 ‘원수의 밤’은 사십 나이에 원기가 꺾이지 않고 혈기 왕성한 이건호에게는 끝없는 ‘환락과 희열의 밤’이었다. 불혹을 넘긴 이건호의 엽색행각은 본처 조건식의 날카로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만 갔다.

박소식은 시집온 지 4년이 지나도록 밤이면 남편의 엽색행각에, 낮이면 시집 사람들의 천대와 시어머니 같은 큰형님(이건호의 본처 조건식)의 무섭게 타오르는 질투, 시기, 학대에 날마다 시달려야 했다. 더구나 추악하게 늙어가는 남편을 대할 때마다 거울 앞에서 보는 자기의 젊디젊은 청춘이 너무도 애석했다. 그리하여 때때로 먼 산을 바라보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산란한 마음을 수고로이 달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만사에 뜻을 잃고 공연한 일에 성을 내어 얼토당토않은 일로 늙은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앙탈을 부린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응앙! 응앙!”

사십 평생 아들 하나 두기를 소원하던 이건호의 집에 옥동자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의 젊은 첩 박소식이 시집 온 지 4년 만에 아들을 낳은 것이었다. 말 그대로 고생 끝 행복 시작, 인생 대역전이었다. 박소식의 신분은 집안의 애물단지에서 백만장자 독상속자 이수탁의 어미로 일약 수직상승했다. 그 순간만큼은 몸서리치게 밉던 늙은 영감도 싫지 않게 여겨졌다.



자식을 무릎에 놓고 젖을 먹이던 박소식은 벌써 사람을 알아보는지 어미의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삐쭉 웃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는

“이 애 좀 보세요. 벌써 사람을 보고 웃는구려. 이것 좀 보세요! 이것 보아요!”

이렇게 급한 소리로 남편을 불러대는 것이다. 그러면 옆에서 담배를 붙여 들고

‘저것이 언제나 커서 사람구실을 한담! 내가 더 늙지 아니하여야 할 터인데! 그리고 오래오래 살아야 할 터인데….’

이러한 끝없는 생각에 정신을 팔고 있던 그의 남편도 귀가 띄어서

“뭐어! 그 자식이 벌써 웃어?”

하고는 옆으로 달려와서 혀를 채가며 어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한번 벙긋 웃을 양이면 너무도 신통하여 입을 어린애 뺨에 대고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익산 백만장자 독살사건 4’, ‘동아일보’ 1929년 12월21일자)

쥐면 꺼질세라 불면 날릴세라, 아이는 진자리 마른자리 골라가며 온 집안 사람들의 손에 떠들려 애지중지 자라났다. 자라면 자랄수록 커가면 커갈수록 부모의 총애는 더욱 더 커졌다.

그러나 이수탁이 자라면서 비극의 씨앗 두 가지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하나는 어떻게 된 노릇인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자식의 얼굴이 아비와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부모가 늦게 본 자식을 너무나 총애한 나머지 버릇없고 천치에 가까운 철부지로 키웠다는 것이다. 얼마나 버릇이 없었던지 평상시의 장난에도 ‘애빌 죽인다’고 할 정도였다. (‘조선일보’ 1928년 12월15일자)

본처 조건식은 늦둥이 자식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남편에게 “여보, 영감! 아들이 귀하다 한들 그렇게도 버릇이 없이 기르면 장래 자식이 무엇이 되오? 귀여워할 때는 귀여워하여도 책망할 때는 좀 따끔하게 책망을 하는 게요, 엄히 굴 때는 좀 엄히 굴어야 하는 게지. 그게 대체 뭐요. 그저 귀해만 하니…” 하고 충고를 겸한 짜증도 내보았다.

그러나 그의 남편은 “아니, 그게 아직 무얼 아오! 철이 없어서 그렇지 철만 들면이야 그럴라고. 그런 게 아니야…” 하면서 본처의 말을 부인하고는 또다시 사랑하는 것이다. 아들의 청이라면 무엇이나 들어주면서.

응석받이의 호랑방탕

그러나 하늘의 별을 따긴 쉬워도 응석받이 철들기는 어려웠다. 이수탁은 16세 되던 때부터 주색에 탐닉하여 그 방탕함이 끝이 없었다. 그리하여 아비 이건호로 하여금 그 뒤를 치르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식의 호랑방탕에 엄청난 재산을 낭비한 이건호는 급기야 법원의 선고를 받아 자식을 준금치산자(準禁治産者)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정신을 차릴 이수탁이 아니었다. 방탕한 생활은 준금치산자가 된 후에도 그대로 이어졌고 급기야 십수만원(오늘날로 치면 수백억원)의 막대한 빚을 지고 진퇴유곡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됐다. 이수탁은 거듭 아비를 찾아가 구제해달라고 사정했으나 거절당했기 때문에 부자관계가 몹시 흉흉해졌다. 이에 따라 박소식과 이건호 사이도 벌어졌다. 이런 와중에 환갑이 훨씬 지난 이건호는 은근슬쩍 젊은 홍씨를 다시 첩으로 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동아일보’ 1929년 12월23일자)

급기야 이수탁의 방탕기질은 그의 어미 박소식에게 불똥이 튀어 ‘씨앗 문제’로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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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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