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신약 개발로 ‘제2의 황우석’ 꿈꾸는 한의사 김정진

“양·한방 퓨전의학으로 지긋지긋한 아토피 뿌리뽑겠다”

  • 안도운 기공학 전문가·오운육기연구소장/사진 김형우 기자

    입력2005-07-29 1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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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 개발로 ‘제2의 황우석’ 꿈꾸는 한의사 김정진

    아토피 환자를 진료하는 김정진 원장.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수요가 있는 곳에 사람과 돈이 몰리게 마련이다. 건강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병원과 의사의 움직임을 짚어보면 현재 어떤 질병이 유행하는지 간파할 수 있다.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질환의 경우 병원 수익과 직결되는 문제다 보니 의사들은 자의든 타의든 그 질환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아토피성 피부염이 바로 그런 경우다. 10년 전만 해도 의료계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하던 이 질환은 최근 들어 의사들의 폭발적 관심을 끌고 있다. 피부과 진료과목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던 아토피 질환을 따로 떼어내 ‘아토피 전문’을 표방하는 병원이 속속 나타나는가 하면, 한의사들이 연대해 아토피 전문 체인 한의원을 구성하기도 한다.

    아토피 질환 퇴치를 주요 정책으로 내건 정당도 생겨났다. 최근 민주노동당은 ‘아토피 STOP!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영·유아에게서 집중 발생하는 아토피 질환을 예방, 치유하는 정책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만큼 아토피 질환자가 사회적으로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많아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입수한 2004년 자료에 따르면, 치료를 받은 아토피 질환자가 2003년보다 7.2% 증가한 123만여 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전체 환자 중 61.5%가 9세 이하 어린이였고, 이런 추세는 계속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부질환 전문가들은 병원 치료를 받지 않은 아토피 질환자까지 계산하면 환자수가 최소한 20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아토피 질환은 왜 생기며, 요즘 들어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뭘까. 한 피부과 전문의는 “아토피 질환자 수는 아파트와 자가용 숫자에 비례한다”고 말한다. 아토피 질환이 이른바 ‘환경병’이자 ‘문명병’이라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아토피 질환이 환경의 영향을 받긴 하지만, 환경 자체가 발병의 근본원인이 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런 주장을 펴는 대표적 인물이 김정진(金正鎭·45·한의학 박사) 뉴코아한의원장이다.

    아토피 질환이 세상의 이목을 끌기 훨씬 전인 1990년대 중반부터 이 질환을 연구해온 김 원장은 ‘아토피 질환은 철저하게 유전적 경향성을 띤 면역질환’이라 규정한다. 아토피 질환은 면역학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치료의 길이 열린다는 그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첨단과학 실험을 통해 증명해 보인 한의사로도 유명하다. 그는 경험칙을 중요시하는 한의사이면서도 양방적인 임상실험과 데이터로 치료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등 양·한방 퓨전의학을 시도하고 있다.

    필자는 양방이든 한방이든 병원에 들르면 버릇처럼 먼저 살펴보는 게 있다. 환자를 대하는 간호사의 표정이다. 환자를 잘 치료하는 의사가 있는 병원은 간호사의 얼굴이 대부분 밝고, 환자에게도 자신감 있게 치료법에 대해 설명한다. 그렇지 못한 병원의 경우 간호사의 표정이 밝지 못한 데다 대체로 환자들을 사무적으로 대한다. 필자는 난치성 질환 전문치료를 표방하는 곳에서는 이 관찰법이 매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다. 아무튼 김 원장을 보좌하는 간호사들의 얼굴 표정이 밝다는 점에 적이 ‘안심’이 됐다.

    ‘환경병’ ‘문명병’

    -한의원 위치가 고속버스터미널 옆인 데다 복잡한 백화점 안에 들어선 것이 좀 낯선 풍경인데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환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기 때문에 되도록 교통편이라도 편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이곳에 자리잡았어요. 얼마 전엔 백화점이 내부수리를 하면서 한의원을 내보내려 했는데, 제가 부탁해서 그나마 이 자리에 1년 정도 더 버틸 수 있게 된 겁니다.”

    -요즘에야 한의사들이 너도나도 아토피 질환을 치료한다지만, 사실 한의사의 교과서인 한방 의약서엔 아토피 질환을 의미하는 질병 이름이 없을 뿐 아니라 처방약도 제대로 기록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지적한 대로입니다. 한방에선 아토피 질환을 그저 ‘태열’ ‘태독’ ‘사만풍’ 으로만 거론했고, 어린아이가 땅을 밟고 걸어다니면서 저절로 없어지는 가벼운 병으로 보았어요. 그래서 처방약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피부 질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10년 전만 해도 아토피 질환이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지요. 또한 그때는 양방 피부과나 소아과에서 간단하게 스테로이드 제제만 쓰면 바로 효과를 봤기 때문에 한의사들이 이 분야를 적극 연구할 필요성을 못 느꼈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피부 질환은 10년 전만 해도 한방 치료의 사각지대나 다름없었다. 모교인 경희대 한의대에도 피부과라는 과목 자체가 개설돼 있지 않아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왜 하필 양방 치료에 비해 한참 뒤진 한방 피부 질환 치료에 도전하게 됐을까.

    “제겐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어느 날 산후 조리를 위해 찾아온 한 여성 환자에게 어혈을 풀어주고 기운을 돋워주는 보약을 처방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환자가 그 약을 복용한 후 심한 피부 질환을 호소해왔습니다. 의학 용어로 말하면 ‘면역반응’을 일으킨 것이죠. 결국 이 사건 때문에 저는 법정까지 갔습니다. 그때 저는 양방 의사들을 만나 피부질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약물이 인체 면역계에 변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결국 환자와 합의해 사건을 처리하긴 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의사의 양심을 걸고 한방으로 피부 질환을 끝까지 파헤쳐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김정진 원장은 한방 피부과학을 스스로 정립하겠다는 야무진 결심 끝에 피부 질환 분야에 뛰어들었고, 이후 자연스럽게 아토피 질환을 자신의 전공으로 삼게 됐다.

    면역 시스템 부조화가 원인

    -아토피 질환을 양방에서 쉽게 고칠 수 있다면, 환자들이 굳이 한의원을 찾아와 약까지 지어 먹으려 할지 의문인데요.

    “10년 전이라면 그랬겠죠. 그런데 제가 아토피 질환 전문으로 지금까지 꿋꿋이 버텨온 것은 양방 치료에 한계가 있기 때문 아닐까요? 한방도 치료율이 낮은 데다 잘못 치료하면 만성화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사실 아토피 질환은 양·한방 가릴 것 없이 사각지대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예전의 아토피 질환자들과 지금의 환자들 사이에 차이라도 있다는 뜻인가요?

    “아토피 질환을 면역계 질환으로 이해하면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체 면역 시스템이 심하게 왜곡되지 않은 시대엔 스테로이드 제제 계열의 약을 처방하면 치료가 잘 되는 편이었지만, 요즘은 면역 시스템이 심하게 왜곡돼 있어서 이런 약물 처방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 것이죠. 그렇다고 전세계적으로 뚜렷하게 치료율이 높은 새로운 약물이 개발돼 있는 형편도 아니고요.”

    김 원장은 “아토피 질환을 면역 질환으로 여기는 것은 세계 의학계의 대세”라면서 아토피 질환과 관련한 인체 면역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다음은 그가 밝힌 요지다.

    인체는 외부에서 침입하는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 항원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면역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면역 시스템은 피부와 비강 점막, 눈 점막, 대장 점막 같은 외부의 항원을 퇴치하기 위한 1차 방어선(1차 면역계)와 1차 방어선이 약화되거나 무너졌을 때 발동하는 2차 방어선(2차 면역계)으로 이뤄진다. 2차 면역계는 혈액 속의 항체가 출동해 항원에 대응하는 등 1차 면역계를 돕는 기능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알레르기는 1차 면역계가 약화돼 2차 면역계가 이상 발달한 것을 말한다. 즉 1차 면역계인 피부 방어 시스템이 약해진 상태에서 외부의 항원을 제어하기 위해 2차 면역계인 혈액의 항체가 피부로 다가가면서 과잉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알레르기 증상이다. 알레르기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아토피 질환 역시 2차 면역계의 이상과잉 반응으로 생기는 질환이다.

    1차 면역계의 왜곡이 심하지 않던 과거엔 2차 면역계의 과잉활동을 억제하는 스테로이드 제제, 프로토픽이나 엘리델 같은 강력한 소염제와 항히스타민제로 치료했으나, 지금은 1차 면역계의 왜곡이 매우 심해 이런 약물로도 치료가 잘 되지 않고 재발하는 현실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습니까.

    “이에 대해 제 의견을 밝히는 것이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면역억제제 계열의 약물을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좋아질 수는 있으나 지속적으로 사용하다보면 2차 면역계의 과잉반응을 저지하는 데서 더 나아가 1차 면역계인 피부 면역 시스템마저 약화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는 아토피 질환이 잘 낫지 않고 만성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명약이던 것이 지금은 독으로 작용한다고 할까요. 피부과 의사들이 스테로이드 제제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아토피 체질’ 따로 있다

    -그렇다면 1차 면역계는 왜 약해지거나 무너지는 걸까요.

    “그건 아토피 질환에 유전성이 있느냐 아니면 후천성이냐를 가름하는 대목입니다. 아토피 질환과 관련한 면역계의 왜곡에는 유전적 소인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유전적으로 1차 면역계가 약한 반면 2차 면역계가 강한 가계(家系)에서 아토피 질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합니다. 한방에서는 이를 ‘아토피 체질’이라고 하는데, 저희 한의원 연구원들의 임상연구에 의하면 아토피 질환에 걸리는 특이 체질이 발견되고 있어요.

    유전적으로 아토피 체질을 타고났다고 해서 모두 다 아토피 질환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아토피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조사하면 거의 대부분 아토피 유전 체질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토피 체질을 가진 사람은 당장 아토피 질환에 걸리지 않았다고 방심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김 원장은 아토피 질환자가 요즘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유전적 소인 외에 약물의 오·남용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저는 아토피 질환을 연구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 등 해외로 많이 돌아다녔는데, 1999년 중국의 베이징중의학연구원에서 교환 연구원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인구가 많은 나라인지라 피부 질환을 호소하는 환자가 하루에도 200∼300명씩 피부과를 찾아왔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3개월 동안 눈에 불을 켜고 찾았지만 아토피 환자는 눈에 띄지 않더군요. 소아과를 다 뒤져봐도 없었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하고 머리를 싸맸죠.

    2001년엔 일본에서 아토피 질환을 잘 고친다고 소문난 양방병원을 찾아갔는데, 그곳에선 일본 각지에서 모여든 아토피 질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스테로이드 제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제가 만난 일본인 의사는 스테로이드 제제를 아주 기술적으로 사용하면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스테로이드 제제 치료법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봤기 때문에 제 연구에는 그다지 도움을 얻지 못했지만, 한 가지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신약 개발로 ‘제2의 황우석’ 꿈꾸는 한의사 김정진

    김정진 원장(왼쪽)이 경희대 한의대 병리학교실에서 한약물질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

    1999년의 베이징은 우리나라의 1970∼80년대처럼 사람들이 아토피 질환으로 고통받지 않았는데, 그 원인은 항생제 같은 약물 오·남용으로부터 중국인들이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이란 사실입니다. 반대로 선진국인 일본은 약물 오·남용이나 방부제가 든 인스턴트 음식문화 등으로 인해 이미 1차 면역계가 심하게 왜곡돼 있었기에 아토피 질환자가 많았던 겁니다.”

    김 원장에 따르면 현재 우리 의료문화는 항생제나 질병 예방주사의 발달로 인해 약물 오·남용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약물을 계속 사용하면 인체 주변의 미생물이나 바이러스가 돌연변이 등을 통해 적응력을 키우면서 약물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이는 인체 면역계를 불균형 상태로 빠지게 만든다. 즉 1차 면역계가 심하게 왜곡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치명적인 질환을 막기 위한 예방주사는 어쩔 수 없다 해도 감기나 가벼운 태열, 성장열처럼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앓는 가벼운 증상들은 인체 스스로 저항력을 키울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아픈 아이를 그냥 지켜보는 것이 부모로서는 마음 아프겠지만, 성장기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끙끙거리거나 가벼운 감염 증상 정도는 스스로 이기면서 주변 미생물과 공존할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이 진정 아이를 사랑하는 길일 것입니다. 아프고 이기면서 자연스럽게 면역력이 갖춰지고 강해지는 것입니다.”

    김 원장은 “아토피 질환을 흔히 환경이나 음식 탓으로 돌리는데, 이런 것들은 증상을 악화시킬 수는 있어도 절대적 원인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현재 양방에서는 스테로이드 제제 계열의 면역억제제나 이른바 ‘면역주사’를 치료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이것이 득이 될 수 없다면 다른 치료원칙을 제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전세계적으로 아토피 질환 연구 동향을 살펴보면 2차 면역계를 억제하는 약물요법에 한계가 있음을 알고 피부 자체의 면역계, 즉 1차 면역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초점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1차 면역계를 강화하는 데 뚜렷한 효과가 있는 약물을 개발하지 못한 상황이죠.저는 일찌감치 피부 면역계를 강화하는 천연약물 개발이 필요하다고 보고 지난 수년간 거기에 매달려왔고, 그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그는 피부 면역계를 강화하는 길만이 아토피 질환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환자와 만난 일이 결정적이었다고 밝혔다.

    “4년 전, 강원도 동해시에 사는 아홉 살 소년을 치료했습니다. 저는 그때 환자를 치료하면서 효과가 좋은 사례들이 나타나 의기양양해 있던 참이었죠. 그런데 그 아이를 제 처방대로 치료했더니, ‘리바운딩 현상(활성화한 면역계가 외부의 항원과 싸움을 벌이면서 일시적으로 피부 상태가 더 악화되는 현상)’을 겪고 난 후 조금씩 호전되는 것이 일반적인 치료과정인데 그렇지 못했어요. 6개월이 지나도록 피부에서 진물과 고름이 흘러나오고 가려움증이 반복돼 그 아이는 결국 학교까지 쉬게 됐습니다. 그때 아이 부모가 제게 보낸 신뢰 반, 의심 반의 눈초리는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어쨌든 저는 그때까지의 제 치료법에 대해 스스로 문제제기를 하고 환자에게 약 먹이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식이요법과 소금요법, 온천요법, 쑥뜸요법 등 자연요법을 실천해보도록 권했어요. 놀랍게도 그 아이는 2∼3개월이 지나면서 피부의 진물이 고름으로 변하고, 하얀 각질이 일어나고, 상처에 딱지가 앉기 시작하더니 새 살이 돋아났습니다. 이런 증상은 피부가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죠.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인체의 피부는 자생력을 갖추고 있으며, 피부가 자생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면 아토피 질환을 치유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이후에도 많은 환자에게서 같은 현상을 관찰하고 확신을 가졌어요.”

    의료인의 실험정신

    김정진 원장은 한약 처방 외에도 아토피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소문난 것이면 어디든 쫓아다니면서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한의사로서의 자존심을 버려가며 자신의 처방약을 팽개치고 자연요법을 권유할 수 있었던 것도 스스로 이런 요법을 실천해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 환자 중 어느 분이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온천물을 먹기도 해서 다 나았다는 말을 하길래 전국 각지의 온천수와 약수터 50여 군데를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과연 이것이 아토피 질환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연구해본 적이 있습니다. 1년 반 동안 틈만 나면 물을 떠다 날랐으니 저만큼 온천이나 약수에 대해 많이 연구한 사람도 드물 겁니다. 50여 군데의 물에서 미네랄을 추출해 동물실험까지 해봤어요. 한 드럼의 물을 증발시키면 약 200mg의 미네랄을 추출할 수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쥐 실험을 통해 면역효과가 있는지 확인해봤습니다.

    그런데 경희대 한의대 병리학교실 팀과 함께 실험했더니 놀랍게도 면역효과가 나타나고 심지어 항암효과까지 있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미네랄 추출 물질을 건강식품으로 개발할 수 있을까 하고 식약청에 의뢰했더니 글쎄, 알루미늄 함량이 허용기준치보다 5배 높아 안 된다지 뭡니까. 이 실험을 하면서 병원 수입의 대부분을 연구비로 써버리는 바람에 더 깊은 연구를 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올 겁니다.

    적어도 약수가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점, 제 환자들에게 나트륨이나 유황 성분이 풍부한 온천이 아토피 치료에 좋은 효과를 낸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점, 그리고 알루미늄 함량 등 몇 가지 문제만 해결된다면 미네랄의 면역효과가 매우 뛰어나다는 점 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제겐 큰 소득입니다.”

    그는 단식이 아토피 질환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아토피 환자들과 함께 단식 프로그램에도 참가해봤다고 한다. 일반인은 단식을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하다거나 병세가 나아진 것 같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의료인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객관적으로 증명해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원장은 단식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토피 환자들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단식 전과 단식 후의 혈액을 각기 채취해 비교했다. 그 결과 단식의 효과가 사람마다 달리 나타났다고 한다. 단식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본 환자가 있는 반면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는 것.

    천연약물 ‘K-series’

    김 원장은 민간에서 사용하는 여러 자연요법을 검증해보고 거듭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직접적으로 피부의 자생력을 개선해줄 수 있는 천연약물 개발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소아 아토피 환자들은 면역계가 아직 미성숙하기에 자연요법 등을 통해 자생력을 키워 피부면역 기능을 활성화하고 강화하는 것이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만성화한 소아 아토피 환자나 면역계가 굳어진 성인의 경우는 자연요법과 같은 보조적 요법이 증상을 완화 내지 지연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근본적으로 치료하기는 힘듭니다. 그 때문에 적극적으로 피부 자생력을 도와주는 천연 약물 개발이 필요한 거죠.”

    -아토피를 치료하는 천연약물이라는 게 뭡니까.

    “제가 수년에 걸쳐 개발해 ‘K-series’란 이름으로 특허출원한 천연 약물입니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140종의 한방 약물을 일일이 면역실험을 통해 아토피 질환에 유효한지 테스트한 뒤 그 중에서 아토피 치료에 특별히 유효한 약물 34종을 선별한 것입니다. 이런 물질군이 아토피 환자에게 실제적으로 유효한지를 보기 위해 직접 아토피 환자들의 혈액 반응 및 임상을 통해 검증했습니다. 이처럼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은 동물실험보다 비용은 많이 들어도 환자 치료에 바로 응용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아토피 환자들의 혈액 반응으로 아토피 환자가 필요로 하는 피부 면역물질의 증가가 유도되는지 확인해본 시도라든가, 전세계적으로 피부면역을 강화하는 천연 약물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마당에 한약 물질에서 무려 34종의 면역강화 물질을 찾아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그가 병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의사인데다, 경희대 한의대 병리학교실의 강희 박사에게서 피부면역 강화를 위한 실험모델과 실험방법을 찾아내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 약물이 실제 환자 치료에서는 얼마나 효과를 봤습니까.

    “34종의 약물은 환자의 아토피 질환 상태, 그리고 체질에 따라 적절하게 혼합 처방을 내리는 쪽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약물치료로 그간 30%에 지나지 않던 치료율이 80%로 향상됐습니다. 치료기간은 유병(有病)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14세 이하 소아의 경우 1년에서 1년6개월 정도면 근치에 가까운 치료가 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아토피 환자들이 두려워하는 재발 사례는 거의 관찰되지 않고 있습니다.

    14세 이상 환자의 경우 증상이 오랫동안 지속됐기 때문에 치료율이 소아환자에 비해 떨어집니다. 하지만 수년 정도 아토피를 앓은 사람들의 경우 치료율이 70%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나머지 30%는 면역계의 혼란이 아주 복잡한 경우이거나 면역억제제를 너무 오랜 기간 많은 양을 사용한 경우, 그리고 10년 이상 앓고 있는 환자입니다. 이런 경우는 아무래도 치료에 한계가 있다고 보지만, 3년에서 5년 정도 꾸준히 치료하면 치료율이 높아지지 않겠냐는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신약 개발의 꿈

    그의 아토피 치료법은 입소문을 타고 빠른 속도로 전파됐다. 요즘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환자 네트워크가 워낙 잘 돼 있어서 ‘어디가 잘 본다’ ‘어느 병원이 좋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그 바람에 미국·캐나다 등지로 이민 간 사람들까지 그의 치료를 받기 위해 귀국해 6개월 이상 장기 체류하기도 한다. 국내 유수의 제약회사와 아토피 치료제 개발을 위한 협의도 진행 중이다.

    -그 정도 치료율이라면 신약 개발의 꿈이 이뤄지는 것도 머나먼 일이 아닐 텐데요.

    “신약이라고 하려면 전세계인이 약물을 사용해 공통적으로 일정 부분 이상의 유효율을 보여야겠지요. 한의학에서 말하는 ‘체질’이란 전제를 빼고 모든 체질의 아토피 환자한테 공통적으로 유효한 약물을 선택하는 게 관건입니다. 저는 현재 34종으로 압축한 후보 약물군 중 체질에 관계없이 임상적으로 효과가 뛰어난 약물 몇 종으로 압축하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완성되면 신약 개발로 이어지겠지요.

    그런데 시설과 자본을 필요로 하는 신약 개발이란 게 어디 한의사 혼자 힘으로 되는 일인가요. 어느 시점엔 제약사와의 협력 시스템이 필요하겠지만 아직은 문턱이 높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아토피 질환 분야에서 신약 개발의 관건은 아토피 지표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현재 수십 종의 아토피 지표가 나돌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아토피 질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나온 아토피 질환의 지표 근거, 즉 아토피 마커(marker)들은 아토피 질환의 본질적인 증상과 아토피가 호전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현상이 복잡하게 얽힌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 객관적으로 신뢰하기 힘듭니다. 저는 아토피 자체의 본질적 증상, 이를테면 피부 면역 시스템이 방어기능을 상실하고 피부가 건조해져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혈액에서 단백질 변화를 확인하는 등으로 아토피의 전형적인 마커를 찾는 실험을 꾸준히 해왔고, 이제는 신뢰할 만한 마커들을 확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마커가 완성되면 그에 따른 신약 개발도 훨씬 빨라지겠지요.”

    아토피 마커를 찾아내기 위한 그의 노력 역시 ‘몸으로 때운’ 고통의 결과다. 가령 그는 아토피 질환을 호소하는 친구의 딸을 임상 대상으로 삼고는 퇴근 후 친구의 집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가 잠을 자려 하면서 심한 가려움증을 호소할 때 재빨리 혈액을 채취해 단백질의 변화추이를 살펴보는 식으로 실험을 일상화하고 있다.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이런 시도를 수도 없이 시행하다보니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김치·된장·청국장, 아토피에 효과

    -일상생활에서 아토피 환자의 증상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토피 환자들은 약물의 오·남용에 이미 심하게 노출된 상태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항생제 같은 약물을 피하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아토피 환자가 중이염에 걸렸다고 할 때 항생제로 중이염을 치료할 수 있지만, 중이도 역시 피부 면역계에 해당하므로 아토피가 만성화할 수 있고, 만성 중이염에 걸릴 확률도 매우 높습니다.

    또 항생제나 방부제는 인체 내의 유산균 등 정상 세균까지 공격하는데, 이것은 곧 대장 면역계의 약화를 초래하면서 연쇄적으로 피부 면역계가 충격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항생제나 장기 유통을 위해 방부제를 첨가한 음식은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거꾸로 대장면역계를 좋아지게 하는 음식은 곧 1차 면역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권할 만한데, 흥미롭게도 우리의 김치, 청국장, 된장 등 발효음식이 매우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아토피 환자가 어쩔 수 없이 항생제를 썼을 경우 인체에 좋은 유산균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외국 논문에서도 유산균이 알레르기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김 원장은 실험을 통해 피부 면역계를 활성화하는 데 효과가 있는 몇 가지 천연재료도 공개했다. 다래, 송홧가루, 갓 자란 쑥이 아토피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

    “제가 일본에 갔을 때 니와 유키에라는 일본인 의사가 스테로이드 제제를 적게 쓰면서 항산화요법 같은 음식요법을 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을 봤어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음식물에서도 아토피 질환 치료에 유효한 것들을 찾아내 생식요법 혹은 음식요법으로 개발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저도 외국산 유산균보다 훨씬 뛰어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김치에서 동정(同定·identified)한 유산균(젖산균)을 특허출원해 아토피 환자에게 먹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요법은 약을 잘 먹지 못하는 1세 미만 소아환자에게 치료효과가 큽니다.”

    그는 아토피 환자가 약을 복용하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보습제에 면역강화 약물을 혼합해 피부에 바르는 외용제도 개발했다. 이를 먹는 약과 함께 투여하면 치료 경과가 훨씬 좋게 나타난다고 한다.

    치료제 2종 특허출원

    김 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그가 한의사인지 과학자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는 미생물을 이용한 아토피 질환 치료제 2종을 특허출원한 데 이어 고려대 생명공학과 팀과 공동으로 자가 면역세포를 이용한 아토피 자가 면역요법을 개발, 완성 단계에 있다고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아토피 질환 치료에 관한 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우선 국내 한의사들에게 보급해 한의학계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길 희망한다. 더 나아가 세계 의학계에 이를 전파해 양·한방 의사들이 이 치료법을 배우려고 찾아오는 등 한국이 아토피 질환 치료의 종주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한의사이면서도 서구 의학계가 중요시하는 임상의 객관성을 확보하려 한 것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세계 의학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그가 배아 줄기세포 연구로 세계를 놀라게 한 황우석 교수처럼 아토피 질환 신약 개발로 또 한번 우리를 즐겁게 해줄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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