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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돌 인터뷰

로버트 러플린 카이스트 총장의 직격탄

“한국 대학은 사회주의식, 애국심 버리고 경제논리 챙겨라!”

  • 정호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demian@donga.com

로버트 러플린 카이스트 총장의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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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일상적인 얘기입니다.

“문제는 재산권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다는 겁니다. 카이스트 어디서나 이런 예를 찾아볼 수 있어요. 자산이나 지급관행, 심지어 인사에 이르기까지 명문화된 규정은 없고 단지 관행만이 존재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립대 총장들도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더군요. 모 대학 총장은 교수가 정부 지원금으로 연구장비를 샀는데, 장비를 캠퍼스가 아닌 엉뚱한 부지에 들일 연구시설을 짓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답니다. 조사해보니 그 교수 소유의 땅이었대요. 더 놀라운 사실은 그에게 책임을 지울 만한 어떤 법적 근거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카이스트 에 ‘제너럴 카운슬(최고법무책임자·CLO)’ 제도를 만들 생각입니다. 학교의 자산을 보호하고 무엇이 합법적인 일인지를 따지고, 또한 총장과 이사회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게 그 책무죠.”

-‘주인 없는 조직’의 폐해가 무엇이던가요.

“조직이 생존하기 위해선 경제력이 있어야 하고, 그 돈은 룰에 따라 써야 해요. 주인 없는 돈이란 부패의 다른 표현입니다. 몇 해 전 카이스트에서 발생한 폭발사고에서도 폐해를 찾을 수 있겠네요. 당시 사고로 한 학생이 죽고 다른 한 학생은 다리를 잃었어요. 피해자들은 보험금을 상회하는 보상금을 요구했는데, 놀랍게도 카이스트는 대가를 치를 만한 어떤 자산도 없었어요. 돈 없는 학교는 학생의 안전은 물론 대학 자체도 지켜낼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되네요.



“하지만 카이스트엔 돈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요. 만일 정 기자가 교수라면 그저 돈을 줍기만 하면 된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카이스트는 돈에 대한 규칙을 서둘러 정해야 해요. 오너십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대학의 재산이 어디 있는지 관심도 없고, 그것을 아는 사람이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 거죠.”

‘오너십’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소한의 신뢰는 있을 텐데요.

“놀랍게도 카이스트의 자산에 대한 세부적인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개발위원회나 이사회는 내게 그 같은 보고서를 가져오지도 않았어요. 또 다른 예는 기성회비 운영에서 찾을 수 있어요. 한국 대학들은 이 돈을 수업료에서 분리해 징수하잖아요(카이스트 학부생은 수업료는 전액 면제받지만 1년에 약 70만원의 기성회비를 납부한다. 이 돈은 학교 운영비로 쓰인다-편집자). 나는 애당초 그것이 학비의 일종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카이스트 설치법에 따르면 대학은 학부생에게서 학비를 징수할 수 없게 돼 있더군요. 만일 대학이 이 돈을 잘못 사용한다면 불법적인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는 이 돈도 ‘제너럴 카운슬’이 감독하게 할 생각입니다.”

-결국 총장께서 주장했던 카이스트의 사립화로 연결되는 건가요.

“그 논쟁은 상당부분 잘못 알려졌어요. 카이스트는 정부(과학기술부) 소유이기 때문에 내가 자산 문제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몇몇 교수가 내 뜻을 왜곡했어요. 민영화(privatization)라는 게 곧 자산을 팔고 직원을 해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재원의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거죠. 향후 정부는 카이스트에 쏟을 지원을 줄이는 대신 학생들로부터 그 재원을 충당할 수도 있어요. 이것은 세계적 추세로 서울대마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적절한 투자가 필요한데, 카이스트가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결국은 정부와 학생 모두에게서 버림받을 수 있어요.”

-카이스트가 그간 ‘법에 의한 지배’가 없어서 개혁을 못한 건가요, 아니면 그것이 최종 목표인가요.

“물론 그것은 내 목표입니다. 누구나 개혁을 싫어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미세한 조정이나 수리에 불과합니다. 진짜 개혁은 한국인에 의해서만 가능하겠죠. 나는 사람을 교체하거나 커리큘럼을 바꾸자고 하지 않습니다. 카이스트의 궁극적 변화는 경제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교육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똑똑하고 영리한 학부모들의 욕구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개혁이 진짜 개혁이겠지요.”

-카이스트 구성원은 카이스트의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고용된 미국인’인 총장께선 애국심 같은 한국적 정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옛 소련과 비슷한 상황인데요…. 애국심은 사실 핑계에 가깝습니다. 돈을 유용하기 위한 일종의 트릭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의 돈’이라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어요. ‘내 돈’ 아니면 ‘당신 돈’일 뿐입니다.”

-결국 카이스트에 오너십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군요.

“그래요. 애국심과 사회주의를 혼동해선 곤란합니다. 애국이란 자신의 나라를 사랑한다는 의미지만, 사회주의는 자신이 지급해야 할 것을 누군가가 대신해주길 바라는 시스템이에요. ‘카이스트의 주인은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해서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누군가 대신해서 소유권을 만들어냈고 결국 그 덕에 돈을 벌고 있지요. 그 돈이 어디로 가지요? 나도 몰라요. 이사회에 보고되지 않을뿐더러 회계도 부정확하기 때문이죠. 어길 법이 없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겠지만, 외국인인 나는 이 음지에 환한 햇볕정책을 취하고 싶을 뿐이에요.”

-한국에서 소유구조가 진일보한 대학을 찾았습니까.

“못 찾았습니다. 대다수 한국 대학은 일본식 경영모델을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실력자의 지시에 좌지우지되는 것으로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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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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