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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志 兵法 ⑪

전국시대 열리다

난세의 개혁자로 떠오른 조양자·문후·서문표

  • 박동운 언론인

전국시대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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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대응책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토 할양을 거절하는 것인데, 지백의 성격은 거만하고 잔인하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를 침공해올 것입니다. 다른 한편 우리가 응낙하면 지백은 우쭐대며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영토 할양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면 거절당하는 경우도 생길 것인데, 지백은 그 나라를 침공할 것입니다. 그런 사태 속에 우리는 재난을 모면하면서 정세의 변화를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일시적인 할양이 좋겠습니다.”

이에 동의한 한강자는 사신을 보내 1만호의 현을 바쳤다. 지백은 기뻐하며 위나라에도 사신을 보내 영토를 요구했다. 위환자(魏桓子) 또한 처음엔 분개해 거절할 생각이었으나, 재상의 건의를 수용해 역시 1만호에 해당하는 1개의 현을 헌상했다. 이에 재미를 붙인 지백은 나머지 조나라에 대해서도 같은 요구를 했으나 이번엔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조양자(趙襄子)는 총명하고 기개 있는 수재였다. 비굴하게 평화를 구걸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똑똑한 가신 장맹담(張孟談)을 불러 의논했다.

“지백이 쳐들어올 텐데 어디를 근거지로 삼아 방어하는 것이 좋을까.”

“일찍이 선군(先君)께서 윤택에게 진양성(晉陽城)을 관리케 하셨습니다. 윤택이 선정을 베풀어 조세를 감면하고 복지 향상에 노력한 결과, 그곳 백성이 윤택을 따르고 조씨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조양자가 알아듣고 곧바로 거처를 진양(오늘의 산시성(山西省) 성도인 타이위안(太原)으로 옮긴 뒤 농성을 준비했다. 현명한 군주라야 현명한 신하를 둘 수 있는 법이다.

적 水攻 역이용해 승리

지백은 자체 병력 외에 한·위의 원병까지 동원해 공격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도록 진양성을 함락시킬 수 없었다. 지백은 조군(趙軍)이 탈출할 수 없도록 포위 대형을 넓히는 동시에 진수(晉水)라는 냇물을 막아 성 안으로 흘러들게 했다. 포위 작전은 3년 동안 이어졌으나 조군은 항복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나무 위에서 살며, 나뭇가지에 솥을 매달고 취사하는 형편이 됐다. 식량도 바닥나기 시작했고, 성 안엔 절망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조양자는 고민 끝에 다시 장맹담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장맹담이 새 계략을 말하자, 모든 실행을 그에게 맡겼다.

어둠이 짙어가자 장맹담은 홀로 작은 배를 타고 증명서만 감춰 휴대하고는 한군과 위군의 본영을 차례로 찾아갔다. 한강자와 위환자를 직접 만난 것이다.

“입술이 사라지면 이가 시리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지백이 지금 조군을 치고 있지만, 조씨가 망하면 다음 차례가 어떻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백은 사납기 그지없습니다. 만약 모의한 비밀이 새어 나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는지 상상만 해도 무섭습니다.”

“그럴수록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저만 알고 있고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디데이’는 다음날 밤으로 약속됐다. 장맹담이 순서를 결정하고 돌아오자 조양자는 재배(再拜)로 맞이했다. 다음날 밤 약속시각이 되자, 한과 위의 병사들은 저수지의 둑을 지키던 지백군 보초에게 살그머니 접근해 갑자기 달려들어 쳐 없앴다. 동시에 넘치도록 물을 담은 둑을 터서 난데없는 홍수가 지백 진영을 휩쓸었다. 지백군은 어쩔 줄 몰라 아우성 치며 낭패와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 순간 좌우에서 한군과 위군이 기습공격을 해왔다. 때를 놓치지 않고 진양의 성문이 크게 열리더니 조양자가 정면에서 전력투구식 총공격을 개시했다. 어두운 밤에 혼란을 틈타 순간적으로 감행한 결사적 기습이었다.

당황망조하여 어쩔 줄 모르던 지백군은 여기저기로 몰리다 순식간에 섬멸당했다. 지백 자신도 사로잡혀 겹겹이 묶이고 말았다. 적의 수공(水攻)작전을 역으로 이용한 기습작전의 승리로 역사의 흐름이 바뀐 것이다.

참살된 지백의 두개골은 약간의 가공을 거쳐 승리한 조양자의 술잔으로 둔갑했다. 또 지백의 모든 영토는 조·한·위 3국에 의해 남김없이 분할됐다.

망한 것은 지백에 그치지 않았다. 진(晉)나라 공실의 운명 자체도 문제였다. 정공(靜公)은 무능하여 ‘가문 타령’만 일삼았는데, 영토가 한·조·위에 의해 분할되면서 궁전에서 쫓겨나 서민 신분으로 전락했다.

종가 격인 주(周) 왕실은 이 같은 현실을 수십년 동안 인정하지 않았으나, 결국 기원전 403년에 한·조·위를 제후국으로 공식 승인하고 말았다. 이는 곧 전국시대의 개막을 뜻한다. 대의명분을 완전히 무시한 채 실력 본위의 할거상태에서 서로 싸우는 전란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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