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의 최고 책임자다. 대(對)국민 서비스의 지휘감독자가 절간의 수도승처럼 처신함이 과연 국민을 위한 봉사라는 민주사법의 요청에 맞는지 검토해볼 때가 됐다.
필자가 기억하기에 대법원장 단독 인터뷰는 사법사상 처음이다. 이용훈(李容勳·64)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오랜 관행을 깨고 ‘신동아’ 인터뷰에 응한 것은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사법부’로 탈바꿈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재야에 있을 때 대법원에 설치된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다. 필자는 그 위원회에서 언론계 대표로 위원을 했다. 필자는 ‘신동아’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모아 책을 펴낼 때마다 이 변호사에게 한 권씩 증정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대법원장 물망에 오르내렸기 때문에 필자로서는 그가 대법원장이 될 경우에 대비해 ‘장기 투자’를 한 셈이다. 나중에 대화를 통해 이 변호사가 책을 다 읽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지형 대법관 언급은 의외
이 대법원장의 열린 생각과 필자와의 인연이 2006년 신년호 ‘신동아’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사법사상 처음’이라는 부담 때문에 인터뷰에 응한 이 대법원장이나, 인터뷰 내용을 기록할 필자나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필자가 “대통령 인터뷰보다 따기 힘든 인터뷰를 수락해줘 고맙다”고 감사의 뜻을 표하자 이 대법원장은 “매달 귀찮게 했잖아”라고 받았다. 실제로 이 대법원장 취임 이후 필자는 공보관을 통해 매달 인터뷰 요청을 했다. 이렇게 빨리 이뤄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 대법원장은 “황 위원이 법관인사제도위원 했다고 나한테 반(半)강요한 것이지. 그런데 이번에 새로 임명된 김지형 대법관과 고등학교 동기라지요?”라고 말했다. 필자가 “김 대법관이 자수했습니까?”라고 묻자, 이 대법원장은 “자수 안 했어. 아침에 다른 사람이 말해주더군요”라고 말했다.
가벼운 농담이 이어지는데 속기사가 계속 받아적자 그가 “그런 것까지 적나요?” 하고 물었다. 필자가 “걸러내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친구가 일찍 대법관이 돼서 좋긴 하지만,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대법관 후보를 사전에 언급하는 바람에 조금 이상하게 됐어요. 어쨌거나 천 장관이 언급한 3명 중 2명(김지형, 박시환)이 임명됐잖아요.
“천정배 장관이 무슨 까닭으로 언급을 했는지 몰라요. 불가사의한 일인데…. 우리 법원에 비(非)서울대 출신이 36%입니다. 이번에 유지담 대법관(고려대 출신), 배기원 대법관(영남대 출신)이 퇴직하면서 대법원에 비서울대 출신이 한 명도 없게 됐죠. 비서울대 출신 가운데 대법관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비서울대 출신 후보군(群) 중에서 안팎의 여론을 들어보고 판결문을 검토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두 사람이 경합했는데, 그 가운데 김 대법관을 선택한 것이죠. 다만 호남 사람이 둘(김황식, 김지형)이 돼서 마지막까지 어려웠죠.”
-박시환 대법관은 어땠습니까.
“박 대법관이야 하도 유명한 사람이니까. 시민단체에서 여러 차례 대법관 후보로 추천했을 뿐 아니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도 추천했죠. 그러니까 천 장관이 박 대법관을 언급한 것은 정치적 배경 등으로 봐서 납득이 되는데 김 대법관은 의외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