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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기구한 가족사

“나는 남한 초대 항공사령관의 아들, 장택상 전 총리의 손자사위”

망명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기구한 가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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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기구한 가족사

장택상 전 총리의 회고록에 실린 가족사진. 장녀인 장성애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평양에서 관료로 생활했던 한 탈북인사는 “출신성분이 좋은 사람은 빠져나갈 수 있는 실수도, 이씨 같은 인물이 저지르면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평양 권력사회의 분위기”라며 “그의 망명 결심에도 그러한 배경이 일정부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평양으로 돌아가면 가족의 안위에 더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아니겠느냐는 이야기였다. 한 정부 관계자는 “망명 직후에는 대만과 북한간 핵무기 거래설 등 그가 가진 정보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권력중심에서 고급정보를 많이 접한 것도 아니고 시간도 많이 흘러 의미가 작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신동아’는 이상의 내용에 대한 이 전 대의원의 생각을 듣기 위해 국정원측에 공식적으로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국정원 홍보관리관실은 “탈북인사에 대해 어떠한 확인이나 언급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확인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전 대의원의 의사가 궁금하다는 것”이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국정원측의 답변은 변함이 없었다.

“만날 이유가 없다”

장병혜씨가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자, 10월말 전화를 걸었던 익명의 젊은 남자는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왜 나오지 않았느냐”는 그의 질문에 장씨는 “신분도 밝히지 않은 사람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나가지 않았다”고 답한 뒤, “통일부 장관이든, 국정원장이든, 대통령이든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요청하라”고 선을 긋고 전화를 끊었다. 그후로 12월 중순 현재까지 그 남자는 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기자는 장씨에게 “10월말 호텔 커피숍에 나온 인물이 효선씨의 남편이 분명하다고 해도 만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장씨의 반응은 예상외로 단호했다. 언니 가족이 끔찍한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10년 동안 극도의 분노를 겨우겨우 억누르며 살아왔다는 이야기였다. 설령 그가 조카사위라고 해도, 자신이 망명을 택하는 순간 아내와 자식은 엄청난 고초를 겪으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혼자 빠져나온 사람이라면 만날 이유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다고 거듭 못 박았다. 숨을 고르는 장씨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역사는 여전히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고통스러웠다.

신동아 200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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