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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거물 화상(畵商) 되어 돌아온 청년 광부, 김희일 갤러리 아트뱅크 관장

“미술에 투자하세요, 루벤스와 벨라스케스가 곳곳에 묻혀 있어요”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거물 화상(畵商) 되어 돌아온 청년 광부, 김희일 갤러리 아트뱅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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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史와 첫 만남

그러나 가이드로서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미리 여행지를 답사해볼 만한 여유도 없었고 역사와 문화에 대해 따로 공부할 기회도 없었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고객을 숙소에 내려주고 혼자 택시로 이튿날 안내할 장소를 한번 황급히 돌아보고 오곤 했다.

“한번은 간호사 일행과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하는데, 어느 공원을 지나다가 바이올린 연주하는 동상을 보고는 저게 누구냐고 물어요. 떠오르는 이름이 모차르트밖에 없어 그냥 모차르트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 유명한 모차르트라면 거기 내려 사진 한 장 찍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거예요.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가보니 동상 아래 요한 슈트라우스라고 써 있더군요. 그 자리를 얼버무려 모면하긴 했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데요. 돌아와서 당장 학교에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신청했어요. 공부해 보니 전공인 노동법보다 훨씬 흥미진진하더군요.”

사진을 대조하고 문헌을 뒤지느라 바빴다. 책을 찾느라 온 도시의 도서관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는 중 절로 그림 보는 눈이 생겨났다. 서양 앤티크 가구, 공예품, 보석을 가려보는 안목도 길러졌다. 책으로만 공부한 건 아니었다. 그는 늘 현장에 있었다. 학생인 그가 몰던 자동차는 포드 무스탕으로 보쿰대에서 가장 고급차에 속했다. 이 차로 한 해에 10만km를 달릴 만큼 유럽 전역을 쏘다녔다.

그가 특히 관심을 쏟은 건 17세기 회화였다. 당시 독일엔 미술품 컬렉터도 많았고 유통되는 미술품도 많았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쿤스트’ 같은 신문에는 예술품을 매매하는 지면이 따로 배정돼 있을 정도였다. 그는 시간만 나면 신문을 들고 옛 그림을 구경하러 다녔다. 여행업으로 번 돈이 모이면 적당한 가격에 한두 점씩 옛 그림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20∼30점씩 그림이 쌓여갔다.



이렇게 그는 막장 광부에서 여행 가이드로, 독일 최초의 동양인 갤러리 주인으로 변신해갔다. 그림이 주는 아름다움에 점점 빠져들던 어느 날, 그의 인생에 결정적 변환을 가져오는 일이 생긴다.

푸른 눈 소년像

“어느 고성(古城)에서 그동안 모은 컬렉션을 모두 처분한다는 광고가 신문에 났어요. 당시엔 고성 같은 데서 사용하던 집기와 오래된 수집품들을 전부 내다파는 일이 간간이 있었거든요. 좋은 물건이 무척 많았지요. 1980년 이후에는 독일에도 도시마다 경매장이 생겼지만, 1970년대 중반엔 아직 그런 게 없어 값이 제대로 매겨지지 않은 물건도 많았어요. 물건을 팔려면 ‘텍사토’라는 감정사를 불러 각기 적당한 가격을 매기는데, 텍사토가 그림을 잘 알면 앤티크를 모르고, 앤티크를 잘 알면 그림을 모르는 수가 많거든요. 그래서 낡은 진주목걸이, 사파이어가 박힌 오래된 반지 같은 게 터무니없이 싸게 팔려나가곤 했어요.

그날 고성에서 그림 한 점을 봤어요. 눈이 파란 소년상(像)이었는데 마음에 쏙 들더군요. 군복 같은 제복을 입었는데 단추의 장식까지 화려하고 선명한 그림이었어요. 모르긴 해도 17세기 그림이다 싶데요. 2만마르크를 주고 그걸 샀어요. 그때 우리 돈으로 1500만원쯤 준 것 같은데, 당시 서울 여의도에 있는 50평짜리 아파트가 2000만원 했어요. 저한테는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지만 워낙 그림에 맘이 끌렸거든요. 독일인들은 꽃이나 풍경을 좋아하지, 포트레이(인물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집 안에 걸어놓고 싶어하지 않는 거죠. 그러나 17세기 명화들은 거의가 초상화예요. 당시만 해도 사진이 없었으니 귀족들이 가족의 모습을 화가에게 그리게 한 경우가 많았거든요.”

열 살이나 열한 살쯤 돼 보이는 그 푸른 눈 소년의 초상화를 안고 오는 가슴이 몹시 뛰었다. 얼른 관련 책을 찾아보려고 밥도 안 먹고 집으로 달려왔다. 17세기 그림들은 화가의 사인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가 거의 반반이다. 사인이 없을 경우 어느 시대, 누구의 그림인지 알아내는 것은 까다롭고 전문적인 안목을 요구한다. 물감, 색조, 캔버스, 머티리얼을 면밀히 살피지 않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럴 때 동양인의 섬세한 감각이 서양인보다 한 수 앞서는 경우가 많다.

그 인물화가 귀한 그림인 건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책을 뒤져도 누구의 그림인지 찾아낼 수는 없었다.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하려고 비용을 물었더니 3000달러라고 했다. 혹 진품이 아니라면 3000달러만 날릴 것 같아 그냥 머리맡에 걸어두고 날마다 바라보았다.

“어느 미술품 컬렉터가 집에 들렀기에 그 초상화를 보여줬어요. 팔 의향이 있냐고 묻데요. 값이 맞으면 팔 수도 있다고 했더니 얼마나 받고 싶냐고 해요. 최고로 비싼 값을 부른다고 40만달러를 달랬어요. 40만달러면 당시 환율이 세 배였으니까 120만마르크죠. 산 값의 60배 아닙니까. 그 사람은 두말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더니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하고는 돌아갔어요.”

그 일주일이 얼마나 초조했는지 모른다. 딱 일주일째 되던 날 그 사람은 커다란 여행가방에 현금뭉치를 가득 담아 들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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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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