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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축구는 죄가 없다

  • 일러스트·박진영

축구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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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씨앗은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에서 싹텄다. 아르헨티나의 20세기는 우리의 과거만큼이나 혼란의 연속극이었는데, 특히 1916년부터 1976년 사이에 대통령이 무려 22번이나 바뀐 정치적 상황은 사회 사정이 복잡했던 남미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경우였다.

혼란의 중심에는 1930년대부터 등장한 군부 세력이 자리잡고 있었다. 1976년에는 각 군의 사령관으로 이뤄진 쿠데타 세력이 집권하면서 그로부터 몇 년 동안 군부 최고 실력자가 대통령 자리를 릴레이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리고 그 무렵, 아르헨티나에서 월드컵이 열린 것이다. 1978년 6월1일에 개막해 25일간 열렸는데, 이미 12년 전 런던총회에서 개최지로 결정됐지만 대회 개막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아르헨티나의 정세(情勢)가 혼란으로 치닫자 여러 나라가 개최국을 변경하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회는 예정대로 개최됐다. 이미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거둔 효과를 육군 중장 출신의 비델라 대통령이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대규모 스포츠 대회의 속성을 정확히 꿰뚫고 월드컵을 통해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하고자 했으며 그의 기획은 ‘절반쯤’ 성공했다.

대회는 악순환이었다. 지역예선을 거쳐 전세계 106개 나라 중 16개 나라가 본선에 올랐는데, 아르헨티나팀 경기가 열릴 때마다 판정 시비가 꼬리를 물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결승까지 진출했는데, 폭력적인 경기 내용과 편파판정이 더해져 당시 세계 최강이자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토털 사커’의 종주국 네덜란드는 2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네덜란드의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는 아르헨티나의 독재 상황을 비판하며 아예 월드컵 출전을 거부했다. 이 대회는 무솔리니의 야심으로 덧칠된 제2회 이탈리아 대회(1934)와 함께 월드컵 100년사(史)에 축구가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당한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됐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했고, 독재자는 그 열광이 사회적으로 분출할 때마다 사람들을 체포하고 고문했다. 비델라, 비올라, 갈티에리 등 군 장성의 대통령 릴레이 과정에서 흔적 없이 행방불명된 사람의 숫자가 최소한 1만2000명에 이른다고 하니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1978년 월드컵 우승의 감격은 짧은 봄날의 꿈이었던 것이다.

스포츠가 정치적으로 악용된 대표적인 사례인 아르헨티나의 경우를 통해 세계의 수많은 권력자는 학습효과를 얻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저개발 국가의 여러 통치자는 자신의 허약한 지지기반을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를 통해 반전하려는 기획을 시도해왔다. 한국의 경우 1988년의 올림픽 대회가 그런 측면이 있었으니 당시 ‘당신들의 올림픽’이라는 반대 여론과 시위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권력자의 3S 정책은 종국에는 필패(必敗)한다는 것이 개인적 소견이다. 3S 정책의 요체는 대중에게 끝없이 문화와 쾌락을 제공하는 것인데 이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긴 어렵다. 또 대중은 그들의 기획과 달리 얼빠진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3S 속에서 자유와 쾌락의 문화적 욕망을 발견하게 된다.

섹스, 스크린, 스포츠의 열정적인 순간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렇게 자유롭게 살 수는 없는 것인가?’ 하는 욕망을 자극하고 그러한 욕망이 실현될 수 없는 사회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축구는 죄가 없다
鄭允洙
●1968년 경북 영주 출생
●문화비평지 ‘리뷰’ 편집위원, EBS ‘문화초대석’ 진행, 동아일보 2002 월드컵 기획위원
●문화평론가, 스포츠칼럼니스트, MBC 축구 해설위원
●저서 : ‘축구장을 보호하라’


통치자가 결국 사상을 탄압하고 대중의 결집을 방해하는 까닭은 바로 자신이 제공한 3S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대중은 3S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바로 인류가 빚어낸 최고의 문화를 통해 자유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러니 나는 ‘넘버3’의 최민식이 말한 대로 “축구가 왜 죄가 있느냐?”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죄가 있다면 철 지난 마케팅으로 아름다운 축구와 월드컵에서 한몫 잡으려 한 허술한 마인드와 이미 싱싱하게 변한 시민의 감수성을 ‘애국심’으로밖에 표현할 줄 모르는 미디어의 낡고 닳은 관습에 있다.

신동아 200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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