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호

‘변혁의 리더’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1인당 GDP 2008년 2만달러, 2014년 3만달러 가능”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입력2006-09-08 17: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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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5 사면 건의 명단에 김우중, 정몽구, 박용성 회장 포함
    • 한국의 反기업 정서는 세계 최고
    • 출자총액 제한이 일자리 창출하는 투자 가로막아
    • 비정규직 관련법안 통과되면 쓸 사람도 못 쓴다
    • 삼성·현대차 거액 기부, 타이밍에 문제 있다
    • 인권위 차별금지법안, 기업활동 위축시킬 것
    ‘변혁의 리더’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을 망라해 회원사가 5만여 개에 이른다. 이에 견주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450개 대기업만을 대표한다. 노무현 정부는 재계의 창구로 전경련보다는 대한상의를 선호한다. ‘친(親)재벌’로 비치는 것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노 대통령이 지난 3월 대한상의 초청으로 상의회관에서 연설한 것도 그런 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한상의 회장은 당연직으로 따라붙는 직책만 40여 개일 정도로 바쁜 자리. 손경식(孫京植·67) 대한상의 회장은 두산그룹 비리 사건으로 중도 퇴임한 박용성 회장의 후임이다.

    손 회장은 경기고 2학년 때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수재다. 그러나 서울대 법대생의 정통 코스였던 고등고시를 준비하지 않았다. 기업이라는 넓은 세계가 그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그의 누나 손복남(73)씨는 한국 최대 재벌 삼성가(家)의 장자(長子)인 이맹희씨의 부인이다. 손 회장은 삼성그룹이 대주주였던 한일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제일제당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분가해 오늘의 CJ그룹으로 자리잡기까지 사령탑을 맡아 진두지휘하며 매형(이맹희씨)의 장남 재현씨의 경영 스승 노릇을 했다. CJ그룹은 현재 이재현·손경식 공동 대표이사 회장 체제로 꾸려가고 있다.

    손 회장은 8월 7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과 실물경제 점검회의를 마치고 나서 4시30분부터 ‘신동아’ 인터뷰 스케줄을 잡아놓고 있었다. 회의가 예정시간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그는 5시경에야 접견실에 나타났다.



    ▼ 실물경제 점검회의는 어땠습니까.

    “발언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시간이 모자랐어요. 제가 이 인터뷰 때문에 신경을 쓰자 이현석 상무가 서둘러 마무리 했어요. 정세균 장관께 결례가 안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업자원부와 중소기업청이 점검 결과를 보고하고, 현대경제연구소와 산업연구원(KIET)은 경제전망을 발표했습니다. 관변 연구소보다는 민간 연구소 쪽 경제전망이 더 어두웠습니다. 중립적으로 생각되는 한국은행은 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내다보더군요. 기업들은 환율 때문에 어렵다고 호소했습니다.”

    여당에 대한 기대

    ▼ 환율은 뾰족한 대책이 없지 않습니까.

    “오늘 회의에 한국은행 외환 담당이사도 나왔습니다. ‘환율은 원래 시장 기능에 맡길 수밖에 없지만 시장 개입을 전혀 안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 큰 관심을 갖고 대처하겠다’고 했습니다. 금리도 기업에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금리가 높아지고 채산성이 악화하면서 금융기관에서 중소기업에 빌려준 돈을 빨리 회수하려 한다는군요. 건설 경기가 나빠 지방경제가 죽어간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땅값이 비싸 공장 설립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기업인도 있었고.”

    ‘변혁의 리더’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7월5일 한미FTA 회담에 참석한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과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왼쪽부터) .

    ▼ 여당이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것은 경제가 나빴던 것도 중요한 원인이죠. 세계 어느 나라나 경기가 나빠지면 여당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열린우리당이 정신을 차렸는지, 김근태 의장이 경제단체를 순방하고 4대 재벌회장을 만나면서 경제 투어를 하더군요.

    “열린우리당 분들이 상의에 와 의견을 나누면서 기업을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도 여러 가지를 건의했습니다. 여당은 건의사항을 진지하게 검토해보겠다고 했어요. 경제단체장들이 김 의장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때 경제계가 건의한 사항을 마무리해주겠지요.”

    ▼ 열린우리당도 이념의 진폭이 넓지 않습니까. 김 의장의 경제 투어에 대해 정청래 의원은 ‘출자총액 제한 완화, 경제인 사면은 서민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재벌 살리기’라고 비판했더군요. 참여정치연구회 이광철 대표도 국민이 원하는 것은 열린우리당의 우향우(右向右)가 아니라고 딴죽을 걸었습니다.

    “경제가 잘돼야 국가가 잘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경제가 잘되려면 기업이 활발하게 움직여야지요. 그런 관점에서 국가 운영 책임을 진 여당이 경제 현장에 나와 기업인과 대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죠. 그런 기회를 자주 가졌으면 좋겠어요.”

    ▼ 기업인 대사면을 건의했던데요. 김우중, 정몽구 회장은 재판 계류 중이라 사면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사면을 건의한 경제인 명단에 재판 계류 중인 분은 모두 표시해놓았습니다. 청와대와 법무부에서 잘 판단할 것입니다. 박용성 회장은 양쪽이 상고를 포기해 최근 형이 확정됐습니다.”

    ▼ 비싼 땅값 때문에 공장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시골에 가면 싼 땅이 많지 않습니까.

    “시골로 내려가면 외주업체들과 거리가 멀어져 코스트가 올라간다고 하더군요. 기존 공단이 아닐 경우 인프라 갖추는 비용까지 계산하면 싼 것이 아니죠.”

    기업가는 곧 기업

    ▼ 이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정책이 지역 균형 발전입니다. 수도권은 도쿄권, 상하이권과 경쟁하는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라고 할 수 있죠. 수도권에 첨단산업도 못 들어오게 계속 억제하면 한국경제 전체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경제인이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방에서는 수도권 규제 다 풀어주면 지방이 공동화(空洞化)한다고 아우성이고….

    “참 어려운 과제입니다. 저도 대한상의 회장 취임하고 나서 경북 구미시에 갔는데 플래카드가 엄청나게 걸려 있더라고요. 파주에 LG필립스 공장을 세운 것을 성토하는 내용이었죠. 아마 파주로 안 갔으면 구미로 왔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그러나 기업에는 수도권이 유리하죠.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 우리 사회의 반(反)기업 정서가 정말 우려할 만한 수준입니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기업가와 기업은 다르다는 말도 있지만 어떻게 다릅니까. 기업이 바로 기업가죠. 기업가를 격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기업인의 사기가 올라가야 투자를 하고 창업을 하지요. 엑센츄어라는 외국 컨설팅 업체가 22개국을 상대로 기업 정서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거기서 한국이 22등 했어요. 꼴찌죠.

    경제를 끌고 가는 힘은 기업에서 나옵니다. 경제가 열차라고 하면 기업은 기관차입니다. 기업이 활발히 움직이려면 새로운 사업을 많이 벌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관점에서 기업을 격려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질타하면 기업이 위축됩니다. 반기업적인 사회 분위기를 타고 기업을 견제하는 입법이 쏟아져 나올 수 있고, 행정부도 견제에 나서게 됩니다. 반기업 정서는 기업의 경쟁력도 떨어뜨립니다.”

    ‘변혁의 리더’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 기업이 국부(國富)를 창출하고 일자리 만들고 세금 내고 사회에 공헌하는 역할이 큽니다. 그런데 횡령, 탈세, 정경유착 같은 일부 기업의 투명하지 못한 행태 때문에 반기업 정서가 확대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과거 잘못된 관행이 반기업 정서를 심화시켰습니다. 그런데 기업도 옛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기업도 윤리경영을 하고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시대적 전환점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일부 교과서에 기업에 관한 서술이 잘못돼 있다고 지적하던데요.

    “기업은 경제 활동을 통해 이윤을 창출해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 내서 국가경제에 기여합니다. 그런데 이윤의 사회 환원이 기업의 주 목적인 것처럼 서술한 교과서도 있어요. 사회공헌 활동은 기업의 부수적인 활동이거든요.

    기업은 소비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러 소비자를 기만하고 피해를 준다고 쓴 교과서도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일부 부도덕한 사례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업의 일반적 특징이라고 알게 될 수도 있죠.

    기업가들은 위험을 회피하고 안전을 추구하기 때문에 기업가가 위험을 부담한다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이라고 지적한 교과서도 있습니다. 기업가 정신은 바로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인데 터무니없는 얘기죠.”

    기업 사회공헌은 분수에 맞게

    ▼ 한 강연에서 ‘기업의 사회공헌은 경상이익의 2% 정도가 적당하다. 그렇지만 외부집단의 압력에 의해 사회공헌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자발적인 사회적 투자로 해야 한다’고 말했던데요. 2%는 어떤 근거로 산출된 겁니까.

    “사회공헌이 기업 본연의 목적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업도 사회 일원이기 때문에 사회공헌 활동을 해야 합니다. 사회공헌 지출도 결국 기업의 비용입니다. 세계적인 회사들에 비해 한국 기업만 사회공헌 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하면 경쟁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는 게 옳습니다. 그럼 숫자적으로 과연 얼마만큼 하는 것이 좋은가. 제가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며 2% 이야기를 한 일이 있습니다.”

    워런 버핏이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310억달러를 기부해 세계적인 시선을 모았다. 워런 버핏은 철강왕 카네기의 족적(足跡)을 따랐다. 카네기는 “부자로 죽는 것은 불명예”라는 말을 어록에 남겼다. 카네기는 평생 3억7000만달러 이상을 사회공헌에 썼다. 오늘날 가치로 따지면 수백억달러에 해당한다.

    ▼ 카네기가 이익을 좀 줄이더라도 노동자들의 복지를 더 챙겼으면 어땠을까요.

    “카네기는 성공적인 기업을 만드는 것이 자기 목표이고, 그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기업을 만드는 것도 사회공헌이죠. 그 다음에 기업에서 나온 이익으로 사회에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기업 경영을 헤프게 하면 오히려 사회에서 자기한테 부여한 사명을 다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카네기는 기업을 할 때는 잔혹한 경영자라는 비난을 들었다. 탐정회사를 불러들여 노동조합 파괴활동을 벌이고 파업을 유혈 진압했다. 일주일에 7일,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시키고 임금을 감축했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월급 많이 주면 풍요로운 음식, 술, 그리고 좋은 옷과 사치스러운 생활에 쓰기밖에 더 하겠냐”면서, 나중에 그가 최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재분배를 하기 위해 가능한 한 최대의 이익을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네기의 기부를 노동 탄압에 대한 속전(贖錢)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변혁의 리더’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 삼성그룹이 8000억원을 사회복지기금으로 내놓았고 현대자동차도 1조원을 출연했는데요. 수사가 진행 중이거나 총수가 구속되는 와중에 기부를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기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까.

    “타이밍에 문제가 있죠.”

    답변의 길이가 질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짧은 경우도 있다. 인터뷰이가 말을 쾅쾅 해야 인터뷰가 재밌는데…. 평생 기업을 경영하면서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습관이 체질화한 것 같다.

    그의 고교시절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유행 같은 것이 있었다. 그도 2학년 때인 1957년 서울 법대에 합격하면서 경기고를 중퇴했다. 나중에 명사가 되면서 경기고 명예졸업장을 받긴 했다.

    삼성에 들어간 사연

    경기고 동기로는 오명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윤영석 두산중공업 부회장, 한승주 전 주미대사, 방송인 김동건씨 등이 있다. 서울대 법대 동기로는 최종영 전 대법원장, 박상천 전 법무부 장관, 정구영 전 검찰총장, 하경철 변호사가 있다.

    그는 한일은행에서 3년 동안 근무하다 미국에 건너가 오클라호마 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했다. 귀국하는 길에 일본에 들러 이병철 삼성 회장에게 인사를 드렸다. 이 회장은 1967년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한 뒤 도쿄에 머물면서 새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한 달 뒤 이 회장이 그를 비서실로 불러들였다.

    그는 비서실 신규사업팀에서 삼성의 신수종(新樹種) 산업을 연구하는 일을 맡았다. 상무 팀장에 팀원은 그를 포함해 3명이었다. 이 회장은 전자공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신규사업팀은 이 회장의 구상을 보완, 발전시키는 일을 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타당성 조사를 했다.

    이병철 회장의 가르침

    ▼ 지금 삼성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지만, 1960년대에는 전자사업의 미래를 점치기가 어려웠을 텐데요.

    “우리는 전자산업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리라고 봤어요. 국내뿐만 아니라 거대한 해외시장이 있다고 판단했죠. 당시 전자는 조립산업이었죠. 노동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한국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죠.”

    정부에서 광주에 있는 아세아자동차를 인수하라고 삼성에 권유했다. 신규사업팀은 인수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를 올렸다. 그러나 이 회장은 사업 전망을 밝게 보지 않아 없던 일로 됐다.

    손 회장의 부친(손영기)은 농림부 양정국장, 경기도지사 서리(署理)를 지냈다.

    ▼ 삼성가와 사돈을 맺게 된 사연이 궁금하군요. 이병철 회장이 맏며느리를 엄격한 기준으로 심사했을 거 같은데….

    “아는 분이 중매해 자연스럽게 됐어요.”

    ▼ 매형(이맹희)은 건강한가요.

    “천식이 있지만 큰 문제는 없습니다. 경영에는 일절 관여 안 하시죠.”

    이맹희씨는 한때 삼성그룹의 경영을 책임지는 ‘황태자’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나 대통(大統)을 이어받지 못했다.

    ‘변혁의 리더’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필자와 함께 포즈를 취한 손경식 회장(오른쪽).

    ▼ 삼성에서 분리 독립할 때 조금 분란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관계가 원만합니까.

    “그럼요.”

    이 대목에서 배석한 임원들이 걱정이 되는지, “대한상의와 관련된 현안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다”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삼성과 CJ의 관계에 관해서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해도 흥미로운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CJ그룹 본사 건물 로비에는 이병철 회장의 부조(浮彫)가 있다.

    ▼ ‘기업인 이병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그분은 수많은 인재를 기르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받고 배워 오늘날 삼성 출신 임원들이 다른 기업에서도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분이 세운 전통과 인재육성 프로그램에 따라 훌륭한 인재들이 배출된 거죠. 인재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습니다. 큰 기업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을 직접 길러냈죠. 우리 기업 중에서 연수원을 처음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버드대 교수를 7, 8명 초빙해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하듯이 삼성 사장들을 입소시켜 보름 동안 같이 먹고 자게 하면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합리적인 분이세요. ‘합리 경영’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죠. 기업경영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죠. 살아 있는 경영학을 발전시킨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도 많이 읽으셨죠. 사장들과 식사하면서 일본에서 읽은 경영 잡지 얘기를 합니다. 더러는 복사해서 돌렸습니다. 경영학자들과 대화도 자주 했어요.

    ‘호암자전(湖巖自傳)’에 그분의 기업가적 체취가 남아 있습니다. 저도 호암자전을 통해 기업가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젊을 때부터 사업을 구상하고, 사업을 일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습니다.”

    ▼ 조경(造景)에 대한 안목도 높았다죠.

    “식물과 식재(植栽)에 대한 지식이 깊었죠. 웬만한 사람은 그분 못 따라가죠. 에버랜드(옛 용인자연농원)도 그분이 직접 조성했습니다. 우리도 나무 심으러 자주 갔죠.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에도 그분 손길이 안 닿은 데가 없습니다.”

    창의력의 시대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반대론자들은 한국이 미국시장에 예속돼 경제주권을 잃게 된다고 주장하는데요.

    “한미 FTA는 꼭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타협할 때 양쪽의 조건이 어느 정도 접근해야 하겠지요.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레벨업(level▼ up)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우리나라에 어떤 이득이 돌아오느냐를 따져야지요. FTA 때문에 우리가 미국에 예속된다고 생각합니까? 말도 안 되죠.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가 16개입니다. 그들 열여섯 나라의 경제주권이 미국에 예속됐습니까? 협상하면서 우리가 정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은 거부하면 됩니다. 협상의 문이 열려 있는데 왜 미리 안 된다고 단정합니까.”

    ▼ 한 모임에서 ‘창의력 있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고교 평준화를 재고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더군요. 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업 처지에서 고교 평준화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신다면.

    “1974년 도입된 고교 평준화 제도가 입시 과열에 따른 부작용 해소에 나름대로 기여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지 않습니까. 지금은 창의력이 요구되는 시대이거든요. 한 사람이 1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일본이 하던 노동집약 산업을 카피했죠. 이제 중국이 맹추격을 하는 마당에 카피로는 안 되죠. 결국 창의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대에는 교육도 그러한 수요를 충족해야 합니다. 전반적으로는 평준화를 해제할 경우 부작용이 크겠지만 평준화의 결함을 일부 보완해 과학고, 자립형사립고, 국제고로 가는 길을 터줘야 합니다.”

    ▼ 학교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물어보는 건데요. CJ푸드시스템이 식중독 사고 이후 급식시설을 학교에 다 넘겨주고 학교 급식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했는데요.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학교에 넘겨주는 급식시설이 220억원어치쯤 됩니다. 운영 주체가 학교로 넘어가면 학부모들이 좀더 신경을 써서 감시감독을 해야 되겠죠. CJ푸드시스템이 보유한 메뉴와 기술을 다 제공하려고 합니다. 올해 말까지는 우리가 비용을 대고 현재 있는 영양사를 그대로 상주시키려 해요.”

    “CJ그룹 신동휘 홍보실장(상무)이 식중독 사고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던데, 이런 얘기를 써도 상관 없겠지요?”라고 묻자 그는 “그럼요”라고 대답했다.

    ▼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지역, 용모, 혼인여부, 종교, 사상, 정치적 견해, 전과, 학력 등을 이유로 개인과 집단을 분리, 구별, 제한,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할 수 있고 시정명령을 어기면 3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법률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불합리하고 부당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겠으나 기업의 인재 선발을 제약하는 굴레가 될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차별 금지라는 원론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안이라고 봅니다. ‘부당한 차별’도 정의가 좀더 분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소기업에 3000만원은 적은 돈이 아닙니다. 기준이 모호하고 페널티가 너무 위협적입니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충분히 검토됐으면 합니다.”

    일자리 부족, 기업 탓만은 아니다

    ▼ 언제쯤 한국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달러, 3만달러 국가가 되리라고 봅니까.

    “정상적으로 성장한다면 2008년경 2만달러가 달성되리라고 예상합니다. 3만달러는 2014년쯤 가능하겠죠. 다만 전제조건이 붙습니다. 경제성장률이 매년 5% 이상 유지돼야죠. 환율도 중요합니다. 원화가 매년 2∼3% 절상돼야 합니다. 요새 1인당 GDP가 빨리 올라간 것도 원화절상 때문이죠. 물가상승률도 2∼3% 이내에서 안정돼야 합니다.

    현재 1인당 GDP가 3만달러 이상인 나라가 20개입니다. 아주 잘사는 나라는 5만달러가 넘죠. 우리가 2만달러 이상 국가군(群)에 들어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어요. 1995년 1만달러 문턱을 넘었는데 2008년에 2만달러가 된다면 13년 걸린 겁니다. 중간에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를 겪어서 그런 건데, 일본과 싱가포르는 5, 6년 걸렸습니다. 미국은 10년 걸렸다고 해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은 9.1년입니다. 우리가 너무 오래 끄는 겁니다.”

    ▼ 젊은이들이 대학 문을 나서도 일자리가 없습니다. 중견기업, 대기업이 쓸 만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일자리 창출이 잘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봅니까.

    “일자리를 만들려면 투자가 늘어야 합니다. 정부가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규제완화, 세금우대 같은 정책을 써야 합니다. 외국인 투자를 많이 유치할 수 있도록 외자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도 줘야지요. 산업용지도 싼 값으로 보급하고 금리도 낮아져야 합니다. 물론 기업 스스로도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고 연구개발에 매진해 시대에 맞는 산업구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 회장실에 개성공단을 방문해 찍은 사진이 놓여 있더군요. 북한이 미사일 7발을 쏘고 나서 개성공단 진출 기업들의 걱정이 커진 것 같아요.

    “개성공단은 장점이 많습니다. 중국과 비교해보자면 우선 거리가 가깝죠. 부산에 있는 신발회사는 경부고속도로로 원부자재를 실은 컨테이너를 개성공단에 보낸 후 거기에 완성품인 신발을 싣고 다시 가져와 바로 선적합니다. 가깝다는 것이 큰 장점이죠. 또 하나의 장점은 말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공장이 들어선 곳은 시범단지이고 1차단지 입주기업을 모집 중인데 미사일 발사로 주춤하고 있어요.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로 나올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미 FTA에 개성공단 제품이 포함될지 여부도 개성공단의 장래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미국은 못하겠다고 하고 우리는 한국산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요.”

    ▼ 북한 당국자들을 만나 보면 한국 기업을 유치해 경제발전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보입니까.

    “북한 당국자들은 남한 기업이 많이 들어오기를 희망한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빨리 뭔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남북경제 협력관계를 맡은 일꾼들이죠. 북한에서는 군부의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하는데, 저는 군부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지 들어볼 기회가 없었어요.”

    과격 노조에 국민이 맞서

    ▼ 포항지역 전문건설노조 사태의 와중에 사망자가 발생해 지금도 실랑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포스코 본사를 점거한 노동자들이 퇴거한 뒤에 현장에서 압수된 물건들을 보면 전쟁터 같더군요. 쇠파이프 2000개, 각목 500개, 액화석유가스(LPG)통 6개로 무장하고 국가기간 산업을 마비시켰는데도 정부가 초기에는 미온적으로 대처했습니다.

    “포스코 폭력사태가 생기기 전까지는 올해 들어 노동문제가 꽤 안정됐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태를 보고 실망했죠. 정부가 앞으로 폭력에 대해서는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믿어보려고 합니다. 산업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과격한 폭력을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 한국에서 노동운동이 과격해진 원인이 뭘까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노동운동의 역사가 길지 못합니다. 노동운동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 1987년 6·29 선언 이후입니다. 딱 20년 됐죠. 길다고 보면 긴 세월이고, 서구와 비교해보면 짧은 기간이죠. 이제 노동운동의 전환점이 올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최근 미국 뉴욕월가에서 열린 국가투자환경설명회(IR)에서 활동하고 돌아왔는데요. 투쟁 일변도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노동운동의 바람직한 변화로 봅니다. 민주노총 위원장도 IR에 함께 갔더라면 더 좋았겠죠. 사실 우리의 노동운동은 기존 노조원에게만 이득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는 수많은 젊은이 처지에서 보면 노동운동이 일자리 창출에 오히려 역행하고 있습니다. 노사가 협력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위원장을 둘 다 잘 아는데 개인적으로 만나면 좋은 분들이죠. 그런데 집행부 간부들이 위원장에게 과격한 방향으로 압력을 가한다면 위원장이 처신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노사관계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위원장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되고 집행부 간부들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산업계의 견해는 어떤 것입니까.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상임위를 거쳐 법사위에 가 있습니다. 경제계는 새 법안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기업에 부담을 주게 되죠. 한번 고용하면 평생 철밥통 차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비정규직은 고용의 유연성을 보완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새로 개정된 법은 2년 후에 해고하든지, 아니면 정규직으로 채용하든지 양자택일을 요구합니다. 고용의 유연성에 역행해요.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 결국 사람을 안 쓰는 쪽으로 갈 테니 오히려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이것도 못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판 아닙니까.”

    3등 무용론

    ▼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를 정부에 건의했다지요.

    “투자를 위해 풀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없습니다. 일본에 비슷한 제도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지금 모든 나라가 투자를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당에 왜 투자를 못하게 막습니까. 얘기가 안 되죠. 투자가 결국 일자리 창출로 귀결되는 것 아닙니까.”

    손 회장은 최근 개교한 용산국제학교의 재단이사장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제학교의 교육여건이 나쁘다고 불평해왔다. 이에 따라 서울시가 남산 자락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부근 7000여 평 부지를 무상임대하고 산업자원부가 100억원가량의 건립비용을 지원해 8월17일 개교한다. 용산국제학교는 지하1층, 지상3층 규모로 1000여 명의 학생이 교육받을 수 있다. 체육관, 수영장, 도서관과 400여 명을 수용하는 대강당, 300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을 갖췄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중국 상하이나 베이징보다 교육여건이 나쁘다고 불평합니다. 그래서 정부와 서울시가 국제학교를 여러 개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용산뿐 아니라 경기도 수원, 부산에서도 준비하고 있어요.”

    ▼ 삼성부터 시작해 CJ그룹까지 CEO를 오래 하셨는데요. CEO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첫째, 기업의 비전을 잘 설정하고 그것을 전파해서 구성원들이 다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전략가로서의 역량도 갖춰야 합니다. 셋째, 인재를 많이 길러야 합니다. CEO는 변혁의 리더가 돼야 합니다. 기업이 장수하려면 항상 변화해야 합니다.”

    ▼ 어록(語錄) 중에 “고객은 대개 2개의 상품 중에서 선택한다. 3위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말이 인상적이더군요.

    “혹시 댁 근처에 편의점 없습니까? 거기 가서 진열대를 살펴보세요. 거기엔 많아야 대개 1, 2, 3위 상품 정도를 겨우 올려놓을 공간이 있죠. 4, 5위에는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그런 뜻에서 1, 2위 상품이 돼야 한다고 말한 거죠.”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4월 발표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자산총액 기준에 따르면 CJ그룹은 공기업을 제외하고 재계순위 18위다. CJ의 전신 제일제당은 설탕, 조미료, 밀가루를 만들던 식품회사였다. 1995년 삼성그룹 분리 후 사업을 다각화해 지금은 식품과 비식품 분야의 매출 비율이 50대 50이다.

    비빔밥으로 세계 진출 계획

    제일제당은 1960년대에 조미료 ‘미풍(味豊)’을 내놓고 ‘미원(味元)’과 피 말리는 ‘전쟁’을 치렀다. 최고경영자들의 자존심까지 가세했다. 시중에는 삼성 이병철 회장이 모든 분야에서 다 이겼는데 조미료와 신문만 1등을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미원’은 조미료의 대명사가 됐다. 손 회장은 1993년 제일제당 대표이사를 맡고 나서 임창욱 미원그룹(현 대상그룹) 회장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불필요하게 적대적으로 싸우지 말자고 합의했죠. 미원과 미풍이 격렬하게 싸우면서 막대한 광고비를 써 방송국만 좋은 일 시킨 거죠. 그런데 나중에 임창욱 회장과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사돈이 됐어요. 세상일이란 알 수 없어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씨(삼성전자 상무)와 대상그룹 임 회장의 장녀 세령씨가 1998년 결혼했다. ‘조미료 전쟁’을 벌인 영호남 기업간 혼사여서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지금은 가정에서는 ‘미풍’을 거의 안 쓰죠. 천연조미료 ‘다시다’로 대체됐어요. ‘미풍’은 이제 중국음식점과 식품공업용, 그리고 수출로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 CJ그룹의 비전은 어떤 것입니까.

    “세계 일류의 생활문화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음식문화,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산업을 통해 국민의 행복을 증진한다는 비전을 설정했습니다. 식품 제조, 외식 사업과 생명공학 분야는 전통적으로 하던 것이죠. 삼성에서 독립한 후에는 영화, 음악, 극장사업, 케이블TV 같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추가됐습니다. 케이블TV는 M넷, CGV,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비롯해 7개 채널을 갖고 있습니다. 지역방송(SO)도 서울 양천구, 인천, 부산 해운대, 창원, 부천 등 상당히 많습니다.

    CJ홈쇼핑도 잘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민영방송 ‘SMG(상하이미디어그룹)’와 합작 투자한 동방CJ는 상하이의 성공을 발판으로 장쑤성의 주요 도시인 쑤저우,항저우,우시에서 홈쇼핑방송을 송출할 계획입니다.”

    그는 한국의 비빔밥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음식이라고 했다. 비빔밥이 햄버거나 피자처럼 간편하면서도 맛도 좋고 영양도 골고루 갖춰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는 것이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카페 소반’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비빔밥으로 세계시장 진출을 꾀하는 일종의 카페테리아다. ‘카페 소반’의 비빔밥은 두부, 쇠고기, 불닭, 삼겹살 같은 주재료를 중심으로 각종 채소와 나물류 등 9가지 이상의 재료에 자체 개발한 고추장을 넣어 비빈다. 고슬고슬한 밥과 신선한 재료, 그리고 달콤한 맛과 매콤한 맛이 적당히 어우러졌다.

    ‘초우량 기업의 조건’이 교과서

    손 회장은 1남1녀를 뒀다. 아들 주홍씨는 CJ그룹에 근무한다. 입사 3년차 사원이다. 딸 희영씨는 동덕여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로 아직 미혼. 좋은 직장에 다니는 여성 가운데는 결혼이 늦어져 부모의 걱정을 키우는 사람이 종종 있다.

    “걱정합니다. 그런데 딸도 다 컸으니까….”

    ▼ 무척 건강해 보입니다. 비결이 있습니까.

    “특별한 비법은 없죠. 식사량을 잘 조절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합니다. 딱 이 세 가지죠. 식사를 많이 했을 때는 한 끼 거릅니다.”

    ▼ 여가에는 주로 어떤 취미를 즐기는지요.

    “가끔 골프를 합니다. 텔레비전 영화도 자주 보고.”

    그는 편안한 골프를 좋아한다. 드라이버 샷의 비거리는 짧지만 우드 샷이 일품이어서 거리를 보완한다. 어프로치와 퍼터는 수준급. 골프 스코어에는 신경 쓰지 않고 페어웨이에서 나누는 대화를 즐기는 편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를 꼽아보라”고 하자 주저 없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들었다. 최근 본 영화 중에서는 ‘왕의 남자’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CJ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한 영화다. CJ는 국민 네 명 중 한 명꼴로 보았다는 ‘왕의 남자’에 투자해 60억원을 벌어들였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체인 CGV는 전국에서 최다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니까 설탕재벌 제일제당이 어느새 영화재벌로 변신한 셈이다.

    ▼ 경영학도나 기업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경영학 서적이 있다면.

    “1982년에 나온 책인데, 톰 피터스와 로버트 워터먼이 공저한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입니다. 교과서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 첫 해에 700만부 이상 팔렸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각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출판된 경영서적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을 조사한 결과 이 책이 1위에 선정됐다.

    ▼ 경제관련 정보를 주로 어떤 경로로 얻습니까.

    “대부분 신문을 통해 얻죠. 한국 신문들의 경제기사 내용이 꽤 괜찮습니다. 또 경제전문가들과의 대화, 경제 강연회를 통해서도 새 정보를 흡수합니다.”

    ▼ CJ 이재현 회장이 사부(師傅)로부터 독립해 그룹을 끌고 갈 준비가 다 됐습니까. 대기업 2세들 중엔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많은데, 이 회장은 경복고, 고려대 법대를 나와 ‘토종 경영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더군요.

    “이 회장이 이제 40대 중반을 넘겨 훌륭한 경영인이 됐습니다. 외국 대학을 나오지는 않았지만 영어도 아주 잘합니다. 한때 씨티뱅크에서 근무했으니까요. 국제적으로 비즈니스하는 데 조금도 손색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가 과장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만나본 외국인들한테 들었어요.”

    삼성가의 장손(長孫)인 이 회장이 씨티뱅크에 근무하는 것을 뒤늦게 조부(이병철)가 알고 “재현이를 왜 남의 집살이 시키느냐. 삼성으로 당장 데려와라”고 말해 제일제당 경리부 사원으로 입사했다. 손 회장은 “기업인은 금융 실무를 알아야 하므로 씨티뱅크에서 3년 정도 근무한 것이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통 접촉이 없어서…”

    손 회장이 저녁을 들며 이야기를 계속하자고 제의했다. 대한상의회관에서 가까운 중국식당 태평로클럽까지 걸어서 갔다. 손 회장과 삼성 본관 앞을 지날 때 필자가 “삼성전자와 그룹 구조조정본부가 서초동으로 이사 가면 이 사옥들은 금융계열사들이 쓴다더군요”라고 말을 건네자 손 회장은 “이사 간답니까”라고 반문하며 “그쪽 사람들과 통 접촉이 없어서…”라고 했다.

    손 회장은 필자에게 “술 하십니까”라고 물은 뒤 비서를 시켜 중국대사에게 선물로 받았다는 ‘수이징팡(水井坊)’을 가져오게 했다.

    “그전에는 ‘주구이(酒鬼)’를 좋아했는데 ‘수이징팡’이 한 단계 위라고 하더군요. 고급 고량주를 마시면 숙취가 없는 점이 좋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깨끗하지요.”

    CJ는 중국에 투자를 많이 한다. 중국 음식에 중국 술을 들며 중국 투자 일화가 이어졌다.

    “중국 공무원들이 낮술을 잘 마셔요. 언젠가는 세관·공항 공무원들과 점심을 들었는데, 중국 사람들이 반주(飯酒)를 세게 돌렸어요. CJ 중역이 그 술을 받아먹다가 몸을 못 가눌 정도가 됐죠.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이제 일하러 가야겠다’며 툭툭 털고 사무실로 갔어요.”

    다섯이 ‘수이징팡’ 한 병을 다 마시고 한 병을 더 가져와 절반가량 비웠다. 동석한 대한상의 간부들은 “회장님이 오늘 일정이 빠듯해 피곤한데다 기분이 좋으신지 평소보다 술을 조금 더 하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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