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바다이야기’와 조폭 이야기

3류 건달 ‘푼돈’이 유명 건달 주요 수입원으로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6-10-13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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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가 건달들에게 일자리 주선해준 셈”
    • 오락기 제조·판매·운영에다 상품권 유통까지
    • “폭력조직 안 끼면 기계 깔기 힘들다”
    • 성인오락실로 일어선 신흥 주먹들
    • ‘왕년의 주먹’들도 ‘바다’속으로 풍덩풍덩
    ‘바다이야기’와 조폭 이야기
    강준만 교수는 최근 한 신문칼럼에서 ‘바다이야기’ 사건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이건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다. 사회와의 ‘소통 거부’가 훨씬 큰 문제다. 노 정권은 역대 정권 중 가장 ‘서민을 위한 개혁’을 소리 높여 외쳤으면서도 가장 반(反)민중적인 정책을 쓴 정권이라는 말을 듣게 됐으니, 이런 비극이 없다.”

    ‘도박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강 교수의 진단이 그럴듯하다.

    예부터 도박과 조직폭력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크든 작든 도박판 주변엔 늘 조폭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조폭은 도박에 빠져든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빌려주면서 선(先)이자를 떼는, 이른바 꽁지 수입이나 고리대금업으로 재미를 봤다.

    검찰이 동아파 두목급으로 파악하고 있는 사업가 문모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1980년대 서울 강남에서 잘 나가던 주먹인 문씨는 1990년대 초 해외도박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전력이 있다. 현지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국내에서 수금하는 과정에 폭력을 행사한 혐의였다. 이후 그는 백화점 점포 분양 등으로 돈을 벌었고 국민의 정부 시절엔 벤처업계에 진출했다.



    합법화한 도박이라 할 만한 성인오락실에 조폭이 진출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는 영광파, 부산에서는 신20세기파 등 일부 폭력조직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성인오락실에 뛰어든 조폭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전통 영역인 유흥업소나 건설 쪽에 비해 수입이 많지 않은데다 흔히 ‘양아치’로 불리는 3류 건달이 ‘푼돈’을 만지는 곳쯤으로 깔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성인오락실을 경시하는 주먹계 분위기를 바꾸는 데 한몫한 것이 바로 ‘바다이야기’ 열풍이다. ‘바다이야기’를 비롯한 일련의 사행성 게임이 크게 흥행하면서 조폭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주먹계 사정에 밝은 A씨는 “성인오락실에 손 안 댄 건달이 없다”며 “정부가 건달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해준 셈”이라고 꼬집었다.

    환전할 때 떼는 10%가 주수입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는, 업소 뒤를 봐주면서 보호비를 갈취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엔 직접 업소를 운영하거나 기계제조사에 투자해 지분 이득을 챙긴다는 점이다.

    겉모양으로는 합법적인 사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0년간 성인오락기 제조와 판매에 종사해온 B씨는 조폭의 성인오락실 진출에 대해 “건달이 자기 돈으로 투자하고 사업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 삼을 수 없다”고 했다.

    성인오락실이 생기기 전까지 국내에서 합법적인 도박을 대표한 것은 슬롯머신이다. 게임 종류나 시설 규모로 보면 카지노가 슬롯머신보다 크다. 하지만 카지노는 강원랜드가 생기기 전까지는 내국인 출입이 허용되지 않고 일부 관광호텔 등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제한적으로 운영된 까닭에 슬롯머신처럼 사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민정부 초기인 1993년 검찰의 대대적인 슬롯머신 수사는 도박업계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슬롯머신이 불법 도박으로 낙인 찍히자 전국의 슬롯머신 업소는 모두 문을 닫았다. 수사 과정에 ‘슬롯머신 대부’로 불리던 정덕진씨가 구속되고, 정씨와 범서방파 우두머리 김태촌씨의 친분이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인오락실은, 말하자면 슬롯머신 퇴출로 빚어진 도박업계의 공백을 메우는 차원에서 생겨난 것이다. 정부는 ‘돈 넣고 돈 먹기’인 슬롯머신의 도박성을 의식해 성인오락기의 경우 당첨이 되면 현금 대신 경품을 주도록 했다. 경품은 다시 상품권으로 바뀌었다.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오락실 옆에 있는 환전소에서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사실상 슬롯머신 시절로 되돌아간 셈이다.

    환전소에서는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꿔주면서 액면가의 10%를 뗀다. 이것이 성인오락실의 주된 수입원이다. 겉으로는 성인오락실 업주와 상품권 환전업자가 다르지만, 실제로는 같은 사람이거나 동업관계다. 대부분의 오락실 업주는 제3자를 내세워 환전업소를 대리 운영하고 있다.

    B씨는 “성인오락실 수입은 곧 상품권 환전 수입”이라고 잘라 말했다. 서울 강북에서 성인오락실 6곳을 운영하다 최근 폐업한 C씨도 “대부분의 오락실 업주가 상품권 환전업을 같이 한다”고 털어놓았다.

    성인오락실이 성행하는 것은 당첨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승률이 ‘바다이야기’의 경우 95~100%, ‘황금성’의 경우 101~103%로 알려졌다. 이는 검찰수사에서도 확인됐다. 승률 100%라면, 이론적으로는 1만원을 넣고 게임해 한푼도 잃지 않음을 뜻한다. 오락실 자체로는 돈벌이가 안 된다는 얘기의 근거가 되는 부분이다.

    이처럼 승률이 높은데다 예시(豫示)와 연타(連打) 기능으로 대박 심리를 부추기니 손님이 몰리지 않을 수 없다. 알려졌다시피 ‘바다이야기’의 성공 요인은 성인오락기 중 처음으로 예시와 연타 기능을 도입한 것이다.

    상품권 유통 거간꾼 노릇

    성인오락실업계에서 조폭 또는 조폭 출신 사업가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조폭이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다 대부분 합법적인 사업가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오락기 판매망에 밝은 B씨는 “성인오락실의 70%가량이 조폭과 관련돼 있다”고 추정했다. 반면 오락실을 직접 운영해온 C씨는 “언론과 수사기관에서 과장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그다지 많지 않다”며 “업주 10명 중 한 명꼴”이라고 했다.

    언뜻 두 사람의 얘기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관점이 다른 데서 비롯된 차이일 뿐이다. C씨의 얘기는 업소 운영 쪽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고, B씨의 증언은 오락기 제조 및 판매, 상품권 유통 등 전반적인 분야를 두고 언급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오락기 판매에는 ‘기본 대수’라는 게 있다. 한 업소에 최소한으로 파는 오락기 수를 말한다. 예컨대 ‘바다이야기’는 60대, ‘황금성’은 50대다. ‘바다이야기’ 한 대는 700만원대 안팎에서 매매된다.

    C씨에 따르면 ‘바다이야기’ 60대를 구비하는 데 드는 비용은 그에 필요한 상품권 구입비까지 포함하면 10억원대다. 따라서 웬만한 조폭은 자금이 달려 업소를 직접 운영하기 힘들다는 것. C씨는 “강북의 경우 깡패가 직접 운영하는 업소가 별로 없었는데, 올해 들어와 갑자기 늘었다”고 했다. 모두 ‘바다이야기’ 영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업소 운영말고도 조폭이 개입하는 영역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상품권 유통이다. 게임산업개발원에서 지정한 상품권 발행업체는 모두 19곳. 이 업체들은 서울을 비롯해 각 지역에 대리점을 운영한다.

    성인오락실 업주는 이 대리점을 통해 상품권을 구입한다. 자연히 상품권 수급을 둘러싸고 경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때 조폭이 끼어들어 양쪽을 연결해주고 중개료를 챙기는 것이다. 일종의 거간꾼인 셈이다.

    성인오락실용 상품권 한 장 가격은 5000원이고 하루에 유통되는 상품권은 업소당 최하 1만장이다. 거간꾼 노릇을 하는 조폭은 장당 100원을 중개료로 떼는 것으로 알려졌다. 1만장이면 100만원이다. 만약 중개하는 업소가 10군데라면 1000만원을 앉아서 버는 셈이다.

    서울의 영광파와 부산의 신20세기파를 비롯해 일찍이 성인오락실업계에 뛰어든 폭력조직은 대부분 상품권 유통과정에 관여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예 상품권 발행업체에 돈을 투자해 지분 수입을 챙기는 조직도 많다고 한다.

    한편 오락실 업주는 상품권 액면가의 10%를 떼기 때문에 장당 500원의 수입을 챙긴다. 그중 150원은 상품권 업체가 먹기 때문에 순수입은 350원이다. 하루 1만장이면 35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상품권 똥’을 먹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C씨에 따르면 잘된다는 소리를 듣는 오락실에서는 하루 평균 8만장의 상품권이 나간다고 한다. 10%를 떼면 4000만원이다.

    조폭은 오락기계 판매과정에도 개입한다. B씨는 “그쪽(폭력조직) 애들을 안 끼면 기계를 깔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일부 조폭의 경우 오락기 판매업자에게 접근해 기계를 시중가보다 싼값에 넘길 것을 강요하거나 일단 구입한 후 제품에 하자가 있다며 시비를 거는 수법으로 기계를 헐값에 차지하려 든다.

    영등포의 ‘오션파라다이스’와 ‘양귀비’

    오락기계 제조 단계부터 관여하는 조폭도 많다. 기계를 만들면 심의를 통과하기 전 미리 업주들에게 싼 값에 넘겨 자금을 확보한 다음 그중 일부를 심의과정에 필요한 로비자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전형적인 수법이다.

    심의 통과 후엔 기계값이 200만원가량 뛰기 때문에 초기에 싼 값에 넘긴 것은 손해가 아니다. 오락기 한 대를 개발하는 데는 약 2억원의 경비가 든다고 한다. 심의에서 통과하면 100억원대의 고수입이 보장되고, 실패하면 2억원을 날리는 것이므로 조폭들 사이에서 성인오락기 제조는 투자가치가 충분한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울에서 오락실 많기로는 종로와 영등포가 꼽힌다. 종로 일대에서는 전남 영광 출신들이 주축이 된 영광파가 오래 전부터 성인오락실을 점령했다는 게 수사기관의 분석이다.

    영광파가 처음 진출할 때만 해도 이권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시상품이 경품에서 상품권으로 바뀐 후엔 웬만한 유흥업소를 능가하는 수입을 올리고 있다. 영광파 조직원은 1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영등포 성인오락실업계에서는 몇몇 조폭 또는 조폭 출신 사업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오션파라다이스’ 주식을 많이 가진 것으로 알려진 D씨와 ‘양귀비’로 100억원대를 벌었다는 소문에 둘러싸인 E씨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두 사람 다 조직의 보스로 군림하고 있다.

    이름보다 OO이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E씨의 경우 ‘양귀비’에 뛰어들기 전에는 유흥업소 운영으로 큰돈을 벌었다. 조직으로는 중앙파가 거론되는데, 8년간 교도소 생활을 한 F씨가 두목이라고 알려졌다.

    ‘왕년의 주먹’들은 대리인 내세워

    1980년대 양은이파와 더불어 3대 패밀리를 형성했던 범서방파(혹은 서방파)와 OB파 후예들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지난 8월 서방파 행동대원 백모씨가 성인PC방을 운영하다 적발됐다.

    그에 앞서 6월엔 범서방파 부두목급으로 분류되는 이모씨가 ‘바다이야기’를 운영하는 오락실 업주를 폭행한 사건으로 구속됐다. OB파 간부 출신인 김모씨는 강남 일대 오락실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의 경우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듯 성인오락실로 급성장한 신20세기파와 이를 견제하는 ‘전통의 강호’ 칠성파 간의 다툼이 눈길을 끈다. 지난 1월 부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조폭 수십명이 패싸움을 벌인 것도 오락실 패권을 둘러싼 조직간 충돌이었다는 사실이 수사과정에서 밝혀졌다.

    대전에서는 반도파, 대구에서는 동성동파가 게임기 업체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전주에서는 전북지역 최대 폭력조직인 월드컵파가, 광주에서는 OB파가 성인오락실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때 국내 최고의 조폭 두목으로 군림했던 G씨를 비롯한 ‘왕년의 주먹’들이 성인오락실에 관여한 흔적도 발견되고 있다. ‘바다이야기’ 사건이 터진 후 G씨가 갑자기 해외로 나간 사실에 대해 언론은 내막을 알지 못해 뜬구름 잡는 보도만 했다. 주먹계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G씨는 친구를 통해 제주도에 상당수의 오락기계를 깔아놓은 것이 부담이 돼 출국했다고 한다.

    G씨와 더불어 조폭계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던 H씨도 2년 전 지인을 내세워 오락기계를 사들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H씨는 주변사람들에게 “전국 오락실을 접수해 1000억원을 모으겠다”고 호기를 부린 것으로 전해진다.

    주먹계 원로로 대접받는 I씨는 한때 상품권 발행업체 지분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I씨 역시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지인에게 지분을 팔아넘긴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3대 패밀리에서 활약했던 몇몇 유명 조폭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약속이라도 한 듯 성인오락실에 손댄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 형사과 폭력계장은 “오락실 경기가 워낙 좋아 2~3년 전부터 유흥업소와 건설 쪽에서 활동하던 조폭이 성인오락실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폭 업주도 경쟁자일 뿐”

    조폭의 주 활동무대가 성인오락실로 바뀐 것은 그만큼 오락실 인구가 많다는 뜻이다. ‘바다이야기’ 여파로 마사회와 강원랜드의 영업매출이 20%가량 줄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도는 실정이다. 조폭의 전통적 수입원인 유흥업소 경기가 위축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성인오락실이 폭력계의 수입구도를 바꾼 셈이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과거와 달리 요즘 조폭은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조직간 싸움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권의 영역이 다양해져 굳이 서로 다치는 ‘전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오락실도 예외가 아니다. 오락실 지분을 놓고 싸우는 조폭은 조무래기급이라는 게 주먹계의 중론이다. 요즘 조폭은 과거와 달리 다른 조직의 구역에도 들어가 장사를 하는데, 지분에 해당하는 ‘경비’를 상대 조직에게 지불함으로써 마찰의 소지를 없앤다고 한다.

    C씨는 “지난 몇 년간 오락실을 운영하면서 조폭에 시달린 적은 없다”며 “조폭 업주도 다른 업주와 마찬가지로 경쟁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조폭 출신 업주는 딱 보면 알 정도로 언행에서 표가 난다. 하지만 조폭을 종업원으로 고용하지 않는 등 티를 내지 않으려 나름대로 애쓴다고 한다.

    ‘왕년의 주먹’ A씨는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을 비난했다.

    “과거 정덕진 형제가 슬롯머신으로 돈을 벌 때만 해도 오락실은 양아치 영역으로 치부돼 이름 있는 건달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전국 건달이 다 그걸로 먹고 사는 형국이다. 업주들에게 무슨 책임이 있는가. 사행성 오락임을 알면서도 허가를 내준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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