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5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변화하고자 하는 내면의 에너지를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삼베, 옻칠, 흙, 숯가루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재료인 자개를 활용한 칠회화전이었다. 다행히 언론에서는 ‘만져보고 입어보는 전시회’라며 나의 실험성을 높이 평가했지만,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리느라 며칠 밤을 잠 못 이루며 괴로워했다. “그래, 용기를 갖고 도전하는 것이다. 새로운 여행지로 떠나는 두려움과 떨림, 기대를 품고서….”
이런 도전 혹은 실험의 원동력은 내 수업을 듣는 젊은 학생들에서 비롯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배우는 초보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그 속에서 느끼는 잔잔한 감동은 나의 미술적 영감으로 피드백된다.
내가 주력하는 수업은 디자인 전공학생들이 필수로 배우는 기초 드로잉이다. 학생들은 하얀 백지 위에서 창조자의 기쁨을 맛본다. 나는 흔히 가장 어렵다고 하는 누드화로 첫 강의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남학생들이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그림에 집중하게 된다. 긴장을 풀도록 조용한 음악을 틀어주고는, 초보 학생일수록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을 되도록 덜 보게 하면서 모델에만 집중해 그리도록 한다.
놀라운 것은 중학교 졸업 이후 처음 그림을 그려본다는 학생들의 선이 마치 대가의 그것처럼 대담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때론 신이 내게 주신 보물 찾기에 동참한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나는 이런 일상의 발견에 신이 난다.
내가 재직하는 ‘삼성 아트 앤 디자인 스쿨(SADI)’은 학위를 요구하지 않고 시작한지라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용감한’ 학생이 많이 들어왔다. 그들은 거칠고 정제되지 않아 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백지에서 나오는 순수함을 바탕으로 무한대의 파워를 발산하곤 했다.
미술가의 상상력은 부단히 새로운 세계를 접하면서 그림에 대한 영감을 떠올릴 때 담금질이 된다. 나는 학생들에게 스케치 여행을 자주 나가라고 당부한다. 요즘은 인터넷 등으로 갖가지 영상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어 그런지 학생들이 이를 대단치 않게 여기는 듯하다.
나는 20대 때 배를 타고 제주도, 홍도 등지로 여행을 다녔다. 동양화를 전공한 나는 가끔 호남선 기차역을 돌아다니며 돗자리 안에 화선지를 둘둘 말아 옆구리에 끼고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돗자리를 깔고 붓을 들고 좌판을 벌이면 지나가는 사람들 중 한두 명은 “점 좀 봐달라”며 다가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왠지 모를 불안감 때문에 가슴이 뛰지만, 몇 번 심호흡을 하고 붓을 대기 시작하면 이내 호기심 가득한 사람들의 눈망울이 내 가슴속으로 하나씩 꽂혀왔다.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면 옆에서 구경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었고, 자신이 붙고 나서는 시야를 가린다며 사람들에게 “빨리 좀 지나가시라”고 큰소리를 치는 호기도 부릴 수 있었다.
시골 분위기가 물씬한 옷매무새의 할아버지 할머니, 어디론가 걸음을 재촉하는 아주머니, 엄마 손을 꼭 쥐고 두리번거리는 코흘리개들…. 그야말로 사람 냄새 가득한 풍경을 관찰할 수 있었다. 어느새 눈은 사진기처럼 순간을 포착하기 시작했다. 곰방대를 물고 있는 할아버지 얼굴에 굵고 깊게 팬 주름, 무거운 짐보따리에 온몸을 기대어 휴식을 취하는 청년의 눈동자, 차 시간 기다리는 지루함을 달래며 수다 떨기에 바쁜 아줌마들의 구겨진 한복…. 요즘 고만고만한 도시인들의 모습에 식상해선지 예전에 보고 느낀 그런 다양한 삶의 현장이 추억으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