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호

친절이 의심받는 사회

  • 입력2007-12-06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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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이 의심받는 사회
    어느 날, 이승 사람들이 사후 생을 보장받기 위해 천당에 가는 시험을 보게 됐다. 천당에 가는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므로, 어진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정성스러운 마음을 다하며 모두 함께 천당에 갈 수 있도록 시험의 이치와 요령을 설명하고 출제 예상 문제와 정답까지 알려줬다.

    천당은 꽤 좋은 곳이라고, 아주 오랫동안 살 만한 곳이라고 자세히 안내하며 친절을 베풀었지만 의심 많은 사람들은 어진 천사의 친절을 오히려 의심해 그 반대의 답을 적고는 결국 모두 지옥으로 떨어졌다….

    어처구니없는 얘기다. 아직 천당에 가는 시험을 치르지 않은 내가 의심받는 친절의 위기를 짧은 이야기로 먼저 풀어보았지만, 친절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신은 여전히 염려되는 바가 크다.

    친절이란 남을 대하는 마음이 정성스럽고 태도가 정겨우며 굳이 자신의 이해를 희생하지 않더라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나 그 행위가 극진함을 말한다. 친절은 인간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기도 하지만 인류 문명사의 소중한 예의이기도 하다. 따라서 친절의 근본은 친절한 행위를 의심하거나 적대시하는 일 없이 그 친절한 행위에 함께 친절로 보답하는 것이요, 익숙한 몸가짐으로 또 다른 타인에게 그 마음을 베푸는 것이다.

    친절에 대해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친절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며 모든 비난을 해결한다. 그러므로 얽힌 것을 풀어내고 어려운 일을 수월하게 만들며 암담한 것들을 즐거움으로 바꾼다”라고 했고, 유대 율법서 ‘탈무드’에서는 “영특하고 똑똑하기보다 친절한 편이 훨씬 낫다”고 했으며, 괴테는 “친절은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했다.



    또한 친절은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 경쟁력이 되기도 한다. 눈부시게 푸른 젊은 청춘들은 친절한 말 한마디로 인격을 쌓을 기회를 얻을 것이며, 친절한 말을 통한 교감으로 사랑의 밀어(蜜語)를 속삭일 기회를 얻기도 할 것이다. 결국 친절은 인류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휴머니즘의 근본인 셈이다.

    그런데 친절로 인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어떠한 심성의 사람들이 어떠한 구조적 사회에 살고 있기에 친절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것일까.

    친절의 예나 미덕을 굳이 열거하자면 동서고금에 한없겠지만 우리나라에는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속담이 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인간으로서 지닌 기본 소양과 의리로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구해주었더니 이젠 보따리 내놓으란다. 도적으로 몰릴 판이다. 정말 친절하지 말아야 할 예다.

    요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에서 행하는 상냥하고 어여쁜 행위를 무엇이라고 일컬을까. 이 역시 친절이라고 표현한다. 현대사회는 자신의 이익을 꾀하려는 행위의 친절 또한 관대하게 인정한다. 이왕이면 같은 값, 불친절한 상점의 상인보다 고객에게 감동과 만족을 주기 위해 친절한 서비스로 최선을 다하는 고객 중심의 경영철학을 가진 상점의 상인에게 마음이 더 끌리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친절을 가장한 사욕에 걸려들어 사기당하기 딱 알맞지만 말이다.

    몇 해 전 개봉된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뛰어난 미모의 금자씨가 갓 스무 살 되던 해 유괴 살인사건의 누명을 쓰고 13년간 복역을 하게 된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금자씨는 복역 중에도 자신의 주변사람들을 열심히 챙기고 도와주며 긴 복역생활을 마친다. 그러나 출소하자마자 자신을 죄인으로 만든 인물에 대하여 치밀하게 준비해온 복수극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때 그녀가 그동안 친절을 베풀며 도왔던 교도소 동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금자씨의 복수를 돕는다. 이렇듯 ‘친절’이라는 표현은 반드시 아름다운 행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가 개봉되고 난 뒤 생긴 유행어가 있다. “너나 잘 하세요”다. 친절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당신 자신에게나 잘 하라는, 친절을 비꼬아 거부하는 말이다.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라는 정중한 태도의 사양과는 분명히 다른 괘씸한 말이다. 친절을 베풀어서라도 상장 하나 받고자 하는 마음은 받아들이기 퍽 힘들다.

    우리가 친절함에 도대체 얼마나 인색해졌기에 단지 친절하다는 이유만으로 상을 받는 사회가 되고 말았나 싶다. 하지만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은 아니더라도, 불의를 보았으나 힘이 없고 용기가 없어 차마 나서지는 못했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닌 기본적인 인지상정의 친절조차 발휘 못하고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로 거부한다면 친절은 이제 그만 제발 부당한 일일 뿐이다. 제아무리 안타까운 지경에 놓인 사람을 보더라도 ‘괜한, 쓸데없는 짓 하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하며 외면해버리는 마음이 오히려 안타깝다.

    우리는 적어도 세상을 사는 동안만큼은 자연의 손님이다. 따듯한 표정으로 활짝 웃는 자연은 꽃처럼 아름답고 길가에 핀 코스모스는 흔들흔들 친절하다. 이렇듯 자연은 우리에게 늘 자비롭다. 손님으로 왔다가 손님으로 가는 우리는 불신과 거절의 모욕을 지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을 친절의 꽃 무성한 곳에 모두 버려야 한다.

    친절이 의심받는 사회
    강태민

    1962년 서울 출생

    계간 ‘서시’ 편집국장, 월간 ‘시사문단’ 공동주간

    現 시인, 수필가



    저서 : 시집 ‘저는 제가 꽃인 줄 모르고 피었습니다’ 등


    친절한 말 한마디로 빚진 마음을 갚아야 하며 친절한 말 한마디로 교양과 인격을 아름답게 쌓아야 한다. 타인의 호의와 배려에 감사할 줄 알고 흔들흔들 따듯한 미소로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설령 친절한 마음을 다했더니 상대가 무슨 수작이나 부리지 않을까 의심하는 눈초리가 역력했다 하더라도, 용서하는 일 또한 인색함 없이 인간 본연의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친절했음을 자부하기를 바란다. 친절에 대해 의심하거나, 친절을 베푼 것에 대해 후회하거나, 지난날 베푼 친절에 보상을 바라거나 하는 일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친절은 냉담하지 아니하며 싸늘하지 아니하고 이해타산을 요구하거나 희생을 강요하지 아니하며 간교하거나 무례하지 아니하다. 친절은 남을 대하는 마음이 정성스럽고 태도가 정겨우며 배려하는 마음 씀이나 그 행위가 관대하고 극진하다.

    인류 문명사회의 가장 아름다운 교양, ‘친절’이 의심받는 일 없이 인류의 가슴에 오래오래 남을 수 있도록 모두 함께 친절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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