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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시론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승자의 독식 포기하고, 실천과 자기희생으로 희망을!

  • 전진우 언론인 youngji@donga.com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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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 원칙 지키되 유연하게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 전경.

남북 문제는 민족 문제이자 국제 문제다. 하나의 민족이면서 정전(停戰) 상태인 특수 관계이자 민족을 앞세우는 ‘우리끼리’만으로는 풀 수 없는 국제적인 문제다. 그런 만큼 민족에 치우치는 정서적 접근만으로는 남북 문제를 풀 수 없다. 그렇다고 한민족이라는 애증(愛憎)이 엇갈리는 정서를 외면할 수도 없다. 이 같은 딜레마의 해법은 원칙을 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국제적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제1의 원칙은 평화공존이다. 흡수통일이 비현실적이라면 우선은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결단코 허용해선 안 된다. 북의 핵 폐기는 평화의 전제조건이다. “핵무기 개발이 자위용이라는 북한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식은 평화공존의 제1원칙을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원칙이 무너지는 데서 남남(南南) 갈등이 증폭된다. 국제 공조도 흔들리게 된다.

제2의 원칙은 북의 개혁개방을 촉구하고 그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비록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절대적 상호주의는 불가능하더라도 남측의 지원이 북한 주민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김정일 세습정권의 강화에 기여한다면 ‘퍼주기식 지원’을 계속할 수는 없다. 평양 정권이 개혁개방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고 그런 말은 아예 하지 말자고 하는 무원칙으로는 세금 내는 남한 국민의 동의를 구할 수 없다.

개혁개방만이 북한이 살길이고, 그래야만 동족인 북한 주민의 비참한 삶도 개선될 수 있음이 분명할진대 그러한 원칙도 없이 무조건 포용하자고 해서야 진정한 남북관계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햇볕정책은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를 확산하고, 남북 교류를 확대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김정일 정권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국 실패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실패의 원인 역시 원칙의 부재(不在)에 있다면 당연히 원칙을 가다듬고 지켜야 한다. 그렇다고 남한 사회 구성원을 ‘친북 좌파세력과 대한민국 수호세력’으로 이분화하는 냉전적 사고로 되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원칙은 지키되 국민의 대북 자신감과 국제공조를 바탕으로 유연한 대북 정책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원칙을 세우고 그에 따라 국민을 설득하면 남남 갈등도 최소화할 수 있다. 이것이 새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이다.

‘언덕에 오르면 뗏목을 버려라’

대통령책임제의 특징 중 두드러지는 것은 승자가 권력을 독식한다는 점이다. 불과 1~2 % 차이로 이겨도 승리의 과실(果實)은 승자가 100% 가져간다. 책임 또한 모두 지지 않느냐고 하지만 무책임의 경우 그 피해는 몽땅 국민에게 돌아간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패거리 정치’다. 내 사람들끼리만 하겠다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노무현 정부의 ‘코드인사와 386그룹’을 들 수 있다.

권력은 장악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는 것이다. 장악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패거리 정치와 부패가 잉태된다. 역대 정부에서 공기업 개혁이 지지부진했던 이유를 보자. 내 사람들, 선거에서 도와준 내 편에게 공기업 사장, 감사 자리라도 나눠주느라고 개혁의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게 아닌가. YS·DJ 정권에서도 그랬고, 노무현 정권에서도 그랬다. 다음 정권은 과연 다를 것인가. 새 대통령은 분명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백 마디 개혁 소리보다 공기업에 낙하산 인사 하지 않는 실천 하나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불가(佛家)에서 이르기를 ‘사벌등안(捨筏登岸)’이라고 했다. 언덕에 오르면 뗏목을 버리라는 것이다. 벌(筏·뗏목)이란 정법(正法)을 비유한다. 정법의 뗏목이라도 응당 버려야 할 때가 있는데 하물며 비법(非法)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지 않으냐는 가르침이다. 새 대통령은 언덕에 오른 다음 뗏목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내 사람들 모두 끌어안고 논공행상을 하려 한다면 처음부터 실패를 예약하는 셈이다.

과거 정권에서는 장관 자리도 내 사람들 자리 나눠주기에 악용됐다. 그러다 보니 장관 평균 임기가 1년도 안 되는 기현상이 되풀이된 것이다. 장관이 뜨내기 신세인데 국정이 어떻게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내각은 정파를 뛰어넘는 ‘코리아 드림팀’으로 짜야 한다. 그리고 특별한 잘못이나 책임져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바꾸지 말아야 한다. 선거용으로 빼고, 선거에서 졌다고 위로용으로 앉히는 식의 인사가 재연되어서는 안 된다. 새 대통령은 이것만 분명히 해도 국민의 박수를 받을 것이다.

상식의 정치, 통합의 언어

노무현 대통령은 “작은 정부보다 효율적인 정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직속위원회가 47개나 됐고, 공무원 수는 5만7000여 명이나 늘었다. 하지만 노 정부가 효율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가. 국민의 조세부담만 가중됐을 뿐이다. 당연히 ‘효율적인 작은 정부’로 바꿔야 한다. 새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말을 앞세울 필요는 없다. 말없이 실천하면 된다. 정부 개혁은 우물쭈물하다가는 못한다. 정권 초기에 밀어붙여야 한다. 국민은 새 대통령이 어찌 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정권의 성패가 달린 일이다.

이념보다 상식의 정치를 해야 한다. 상식은 한 시대의 보편적 가치다. 보수이고 진보이고 간에 보편적 가치인 상식을 벗어나는 것은 궤변이거나 헛소리다. 국정 운영의 기본 상식은 법치(法治)다. 그러나 지도자의 리더십은 인간의 얼굴을 한 법치여야 한다. 그것은 지도자의 품격이 뒷받침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지도자의 권력 행사는 말로써 이루어진다.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전진우

1949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문학과, 서강대 언론대학원(신문학) 졸업

동아방송 기자, 동아일보 신동아부장·논설위원실장·대기자

저서 : ‘하얀 행렬’ ‘60점 공화국’ ‘서울의 땀’ ‘역사에 대한 예의’


절제되고 격조 있는 대통령의 언어는 갈등을 해소하고 세상의 분위기를 순화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리더십의 요체다. 경제를 살리는 것도, 교육을 개혁하는 것도 지도자가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정당한 권위를 회복해야 하고 최소한의 존경이나마 받을 수 있는 품격을 갖춰야 한다. 새 대통령은 마땅히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 채 갖추지 못했으면 족집게 과외라도 받아야 한다. 말로써 말 많은 대통령을 계속 봐야 한다면 우리 국민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정당한 권력과 국민의 자발적 동의가 합해질 때만이 헤게모니가 이루어질 수 있다. 새 대통령이 누구이든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각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고 희망을 주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차선(次善)의 결과이든 차악(次惡)의 결과이든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마저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신동아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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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 언론인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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