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장면에서 우리는 삶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몇 가지 아이러니를 마주한다. 그 하나는 경마 예상지다. 경마장 주변이나 심지어 스크린 경마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경마 예상지는 경마 참가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복음서다. 그들은 두어 가지 경마 예상지를 사서 손에 들고 줄을 그어가며 우승마를 예측한다. 심지어는 모든 종류의 예상지를 다 산 다음 그들이 중복으로 추천하는 말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안쓰러운 풍경이다. 만약 경마 예상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정말 우승마를 예측할 수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다. 이런 분들은 대통령직인수위에 모셔다가 그 ‘나눔의 철학’에 대해 강연을 들어야 할지 모른다. 자신이 우승 가능한 말을 가려낼 능력이 있는데도 자신의 ‘초능력’을 다른 이들을 위해 나눠 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은 절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경마에 참가하지 않는다.
결과를 잘 예측하면서도 자신은 경마를 하지 않고 소중한 정보를 예상지로 만들어 헐값에 파는 것이라면, 스스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막중한 기회를 나머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셈이니 나눔의 철학이 있는 분들이고(예상지 판매수익이 경마에서 우승마를 적중시켜 받는 배당금보다 많을 리 없다), 혹여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전망을 파는 것이라면 비윤리적이고 반도덕적이라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다. 설마 자신도 모르는 일을 아는 척하며 그런 예상지를 파는 분은 없을 터이니, 이분들을 어찌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증권가와 경마장의 ‘천사’들
시야를 좀 넓혀 보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는 이런 분들이 곳곳에서 불을 밝히고 있다. 오늘도 증권방송에는 수많은 전문가가 나와서 대박을 외치고 최고의 종목을 찍어준다.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 ARS나 인터넷 회원으로 가입하면 당장이라도 수십배의 수익을 안겨줄 황금종목들을 추천해주겠다고 한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경제신문의 하단에는 ‘어리석은 개미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증권시장 황제’와 ‘미다스 손’의 주말강연 광고가 실리고, 그들은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교재비’ 몇 만원 정도는 지참하는 것이 예의”라고 말한다.
그뿐인가. 신문과 방송에 등장하는 무수한 부동산 전문가 중에도 정작 본인은 변두리 전셋집을 못 벗어나면서, 꼭 집어서 어느 지역 어느 아파트가 올라가고, 어느 동네 어느 집 앞마당에 땅을 사두면 자손만대 땅값이 오를 것이라 일러주는 선지자가 넘쳐난다. 이들도 ‘빛과 소금’은 아니더라도 최소 ‘플래시와 간장’ 정도는 된다.
방송 출연, 그로 인해 유명세를 이어가는 저작활동, 신문기고 등에서 발생하는 보잘것없는 수입에 만족하면서 최고의 기회들을 정작 본인이 잡기보다는 타인에게 베푸는 사람들, 이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전문가들이다. 그 점에서 보면 필자도, 심지어는 족집게라 하는 증권회사 임원이나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들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