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르고뉴 지방에 펼쳐진 광활한 포도밭.
샤르도네는 산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보트리티스, 즉 귀부 와인을 만드는 곰팡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몽하쉐의 샤르도네도 마찬가지다. 몽하쉐의 토양은 얇은 표토층 아래로 석회암 지대가 형성돼 있다. 해발고도 250~270m, 경사 10도의 완만한 구릉에 놓인 몽하쉐 토양은 배수가 잘되고 퇴적물질로 인한 광물성 자양분이 많다. 햇빛을 잘 흡수해 샤르도네에 훌륭한 조건을 제공한다. 특히 석회석 지대는 청포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러니 양조장 주인들은 늦가을까지 수확을 기다리면서도 보트리티스 걱정을 덜 수 있다. 네덜란드인 거트 크룸의 저서 ‘도멘느 로마네 콩티(Le Domaine de la Romanee Conti)’에는 DRC의 공동경영자 오베르 드 빌렝의 수확에 관한 체험이 기록돼 있다. “1990년 이후로 되도록이면 늦게 수확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풍족함과 풍성함을 얻는다.”
와인을 조각하는 미켈란젤로
생산자에 따라서는 몽하쉐가 그리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다. 잎사귀가 둥글게 말리는 병충해 피해 때문에 포도가 제대로 여물지 않아서 그렇고, 바닐라향이 너무 강해서도 그럴 수도 있다. 몽하쉐의 풍부한 질감과 향기는 새 오크통에서 강화된다. 어떤 이는 바닐라향에서 오는 미끈한 질감과 풍만한 감촉이 샤르도네의 인공적 혹은 가식적인 아름다움이라 느낀다.
샤르도네의 최고 장점은 적응성이다. 거트 크룸은 샤르도네를 이렇게 평가했다. “샤르도네는 자연환경에 잘 적응한다. 이 성격으로 인해 전세계를 손아귀에 넣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며 샤르도네 자체가 거대한 브랜드가 됐다. 포도밭에서 수확을 많이 함으로써 개성을 잃었으며, 그걸 만회하려고 양조장에서 여러 기교를 부린 통에 성격이 인공적으로 변했다. 오늘날 품질을 최고로 여기는 양조장에서만 샤르도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독일 와인가이드’를 펴내고 있는 조엘 페인은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린 한 와인 세미나에서 샤르도네와 리슬링의 차이를 일러 마치 석고와 대리석의 차이와 같다고 비유했다. 마음껏 주물러 원하는 모양대로 빚을 수 있는 석고는 오크통에 기대는 샤르도네와 같고, 고통스럽게 깎고 또 다듬어야 겨우 모양을 갖추는 대리석은 오로지 포도 성분에만 의지하는 리슬링과 같다면서, 미켈란젤로 같은 독일 현대 양조가들이 리슬링을 걸작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조엘 페인이 손꼽는 최고의 양조가 중에 ‘켈러(Keller)’가 있다. 세계적인 와인평론가 잰시스 로빈슨 역시 “독일 드라이 화이트가 얼마나 대단한지 하나를 꼽으라면 난 켈러를 추천한다. 그 와인은 매년 더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독일의 명산지는 라인강변에 몰려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토마스 만의 소설 ‘펠릭스 크룰의 고백, 1922’에는 라인계곡의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풍토로 보나 기후로 보나 험준한 맛 하나 없이 온화하며 도시와 촌락이 허다하게 들어앉아 즐거운 삶을 영위하는, 생각하건대 인간이 자리 잡은 가장 쾌적한 곳 중 하나인 저 복 받은 지대가 나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해주었다. 이곳에는 라인밸리 산맥이 거친 바람을 가로막아주며, 이곳저곳에 흩어져 그 이름만 들어도 주객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유명한 도시들이 한나절 햇빛을 받으며 번영하고 있으니, 바로 이곳에 라우언타일, 요하니스베르그, 뤼데스하임이 자리 잡은 곳이요, 도이치 제국의 영광스러운 건국 1871년 후 몇 년 되지 않아 내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신성한 소도시가 있다.”
소설의 묘사처럼 라인강 일대 풍광이 기가 막히다. 남향이라 하루 종일 해가 들어오는 강변 카페에 앉아 흐르는 강물에 쏟아지는 빛에 와인과 음식을 말아먹노라면 이보다 더 큰 호사가 없는 듯하다. 와인의 영화로 보면 독일이 결코 프랑스에 뒤지지 않는다. 리슬링의 영광은 찬란했다. 스티븐 브룩이 쓴 ‘와인백년(A century of wine)’에서 독일 와인의 영광이 명백하게 증명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가게 BBR의 1896년 가격표가 등장한다. 그에 따르면 보르도의 맹주 샤토 라피트 로쉴드 1878 빈티지가 140실링인데, 독일 루데샤이머 힌터하우스 1862 빈티지는 200실링이다. 이 외에도 라피트보다 비싼 와인이 몇 개 더 보인다. 빌헬름 1세와 빌헬름 2세로 대변되는 ‘독일의 아름다운 시절(1871~1918)’에는 독일 와인이 최고가를 이뤘다. 그때는 산업화 시기, 번영의 시기여서 독일 최고급 리슬링에 대한 수요가 대단했다. 베르사유에서 대관식을 통해 독일제국의 기상을 알린 이후로 리슬링은 최고 와인의 명성을 이어갔다. 파리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도 가장 비싼 와인으로 통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시절은 길지 않았다. 세계대전에 연이어 패한 후 독일이 잠복기에 들자, 독일 와인의 기세도 꺾였다.
중세 포도밭의 비밀을 찾아라!
독일 와인산지 중에 켈러 양조장이 있는 라인헤센만큼 윤이 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래서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의 무대가 되었을까? 라인헤센은 오랫동안 조명 받지 못한 음습한 지역이었다. 1960~70년대 엄청나게 쏟아낸 저급한 와인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었다. 주로 실바너나 뮬러 트루가우로 저그 와인(Jug Wine·1.5L나 그보다 큰 용기에 파는 저가 와인)을 만들었다. 이 지역은 모젤이나 라인가우처럼 급경사가 아니라 프랑스 부르고뉴처럼 완만한 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데, 리슬링 경작지는 당시 5% 남짓밖에 안 됐다. 라인강 기슭에 가까운 니어슈타인이나 오펜하임 같은 마을이 비교적 우수한 리슬링을 양조하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라인헤센의 중심으로 평가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