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경제정책과 사회통합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시각

한반도선진화재단ㆍ한국미래학회ㆍ좋은정책포럼 공동 주최 토론

  • 정리·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9-12-10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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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화 기회인가 위기인가
    • 사회안전망 효율인가 확충인가
    • 지방정책 집중인가 분권인가
    •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는 치열한 논쟁과 차별화를 통해 성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양자의 대화와 상생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이 때문이다.
    • 토론자들은 한국적 현실에서 보수와 진보가 갖는 의미, 양자의 가치와 정책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세계화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의 경제·문화정책과
    • 사회복지 시스템, 지방분권과 세종시 건설 등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 조영기 교수와 보수진영의 전상인 교수, 진보진영의 김형기 교수가 간사를 맡아 토론 주제를 사전 조율했다. 논의 현장을 지상중계한다.
    ■ 일 시 :2009년 10월31일 오전 10시

    ■ 장 소 :아카데미하우스

    ■ 사 회 :강대인 전 건국대 교수

    ■ 패 널 :

    [보 수]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이인재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진 보]김영정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보수와 진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경제정책과 사회통합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시각
    강대인 : 이 자리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고민해온 분들이 함께 있습니다. 서로 방법론은 다를지언정, 한국 사회가 발전해야 한다는 데 대한 진정성은 공유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보수와 진보에 관한 문제로 상당한 진통을 겪어왔고, 또 현재도 겪고 있기 때문에 양자의 대화를 통해 상생의 방법을 모색하기를 기대합니다. 우선 보수와 진보의 개념부터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보수가 추구하는 자유와 진보가 추구하는 평등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논의해보면 좋겠습니다.

    김형기 : 저는 경제학을 전공하기 때문에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수와 진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두 진영은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한때 계획경제가 진보의 방향으로 여겨진 때가 있지만, 70년 동안의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한 뒤부터 시장경제냐 계획경제냐 혹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같은 대립은 더 이상 보수와 진보 혹은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기준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어떤 시장경제, 어떤 자본주의를 추구하느냐가 문제가 되지요.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ies)를 추구하느냐 아니면 국가에 의한 적절한 개입과 시민사회에 의한 통제를 통해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인간화와 민주화의 관점으로 치유하는 조정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ies)를 추구하느냐로 구분된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시장의 역동성과 경쟁 시스템의 효율성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시장경제가 초래하는 반인간적이고 반민주적이며 불평등한 질서를 어떻게 시정하느냐를 고민하는 지점에서 진보와 보수가 엇갈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최근 박세일 교수가 이끄는 한반도선진화재단에서 공동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유주의를 시정하는 공동체자유주의를 모색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범진보진영내에서도 자유주의의 바탕 위에서 사회성 즉, 연대와 공공성을 실현하려는 사회자유주의도 논의 중이라는 점에서 양자 간의 대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전상인 : 김형기 교수 말씀에 동의합니다. 보수와 진보는 자유 대 평등, 성장 대 분배, 시장 대 계획 등의 기준으로 구분될 수 있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대북(對北)관계 면에서도 차이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토론 제목 ‘보수와 진보의 대화와 상생’에서 보듯, 두 진영이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면 꽤 많은 공통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은 소위 진보 대 보수의 차이가 민주화의 후유증 혹은 대선 같은 각종 정치 행위의 병폐로 인해 상당부분 왜곡돼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들여다보면 진보와 보수 사이의 콘텐츠상에 확연한 구분이 없고, 있더라도 제가 보기에 그렇게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동안 진보 대 보수의 이분법이 구조화되고 악화되고 첨예화되는 현상, 그러니까 실제보다 더 정치화되는 현상이 생긴 것은 다분히 민주화 이후 권력 혹은 정치화된 논리에 편승한 측면이라고 보는 거지요. 오늘 토론자 대부분이 학계에 소속돼 있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권력과 지식이 결합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점 때문에 진정한 보수 대 진보의 논쟁이 굉장히 어려워졌고요. 오늘 자리가 그런 문제를 분명히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김호기 : 저는 이념 문제를 다룰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오해를 피하기 위해 토론에 앞서 우선 개념을 명확히 정리하고 싶습니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네 가지로 짤막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따져볼 것이 진보와 보수인데요, 양자는 자유와 평등, 변화와 안정 중 어디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지에 따라 구별됩니다. 보수는 자유와 안정, 진보는 변화와 평등에 무게중심을 두는 쪽이지요. 좌파와 우파는 아까 김형기 교수가 적절히 지적하셨듯이 자본주의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갈립니다. 성장과 분배, 국가와 시장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지요. 우파는 시장과 성장에 무게중심을 두고, 좌파는 국가와 분배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을 구별해야 하는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진보와 보수의 개념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수와 진보를 단순히 변화와 안정이라는 기준으로 나눈다면 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진보적인 성격을 띠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는 진보적 우파인 것이지요. 반면 마르크스주의를 여전히 강조하는 그룹들은 보수적인 좌파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한국적인 특성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은, 전상인 교수가 지적하신 것처럼,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상당히 관련돼 있습니다.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지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는 여기에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문제도 추가됐습니다.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박정희 시대를 비판적으로 보며 신자유주의 역시 비판적으로 보면 진보라는 겁니다.

    세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보수와 진보의 하위범주들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현재 기준에서 보수에 두 그룹이 있다고 봅니다. 안보적 보수와 시장적 보수입니다. 전자의 그룹은 박정희 시대의 발전국가론을 여전히 보수의 핵심 가치로 봅니다. 후자의 그룹은 신자유주의를 핵심적 기반으로 보지요. 저는 한나라당 안에도 이 두 그룹이 양분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그룹의 경우도 대략 자유주의적 진보그룹과 마르크스주의적 진보그룹으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를 온건진보, 후자를 급진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이 그룹들의 관계입니다. 저는 시장적 보수와 자유주의적 진보는 사실상 비적대적인 공존이 가능하다고 보는 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개방 문제라고 봐요. 자유주의적 진보그룹으로 볼 수 있는 노무현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지 않았습니까. 이 과정에서 급진 진보그룹은 노무현 정부를 향해 보수라고 비판했지요. 반면 안보적 보수와 급진적 진보는 언제나 첨예하게 맞서왔습니다. 가장 예각적으로 나타난 것이 대북 문제이고, 종부세 같은 주거 문제나 외국어고 폐지 같은 교육정책에 대한 생각도 첨예하게 갈리지요. 다시 말씀드리자면 우리나라에서 보수 대 진보에 대해 논의하려면 이런 기본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경제정책과 사회통합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시각

    이명희

    이명희 : 저는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기준으로 국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수 우파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언제나 실패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역사로부터 배워야 한다. 역사는 선조들의 성공과 시행착오의 축적인데 그것의 총체, 즉 역사의 총체가 국가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시장보수든 안보보수든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국가를 소중히 유지하고 발전시켜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지요. 근래에 역사 문제를 두고 진보와 보수 진영이 팽팽하게 대립했는데, 그것은 국가에 대한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기존 교과서가 좌파적 시각을 담고 있다고 비판하며 교과서 수정 노력을 펼치고 있는) ‘교과서포럼’의 지식인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발전시키려는 분들입니다. 오늘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에 대해 얘기하려면, 이들이 국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반드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태수 : 이명희 교수의 말씀에서는 진보가 국가의 정체성이나 정당성을 부정한다는 뉘앙스가 읽히는데요, 사실 국가나 공공부문의 역할을 대단히 중시하는 것이 좌파 내지는 진보의 특성입니다. 우파 혹은 보수는 개인의 역할을 중시해 작은 정부를 강조하고요. 우리나라에서 좌파나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지난 국가나 정부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과 역할을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 정부의 역할이나 국가 역할의 적정성에 대한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정부와 국가는 엄연히 구분되지만, 거칠게 말해서 정부가 국가를 대변한다고 봤을 때, 과거의 국가는 좌파적·진보적 시각으로 볼 때 제 역할을 못 했습니다. 그 점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뿐, 결코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지요.

    이명희 : 아까 김호기 교수가 우파와 좌파의 하위범주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좌파에도 국가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인정하는 그룹과 국가를 계급의 하위범주에 놓고 부정하는 그룹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파에도 국가가 개인을 침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고, 국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고 믿는 부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국가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 사회에서 좌와 우, 혹은 우파나 좌파 안에서 서로를 구별하는 굉장히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김영정 : 이명희 교수 말씀은 국가론의 영역으로 여기서 논쟁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이미 워낙 많이 논의됐던 주제이므로 오늘은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강대인 : 차라리 한국 근현대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역사 이해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더 건전하고 유효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컨대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면 어떨까요.

    강석훈 : 대한민국을 어떻게 볼 것이냐, 대한민국의 지난 역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서 그 얘기만 해도 오늘이 다 지나갈 것 같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상생을 이뤄내고자 한다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상대방의 가치에 비해 우월하다는 식의 접근 방식을 버리고, 오늘 한국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냐, 과학적이냐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가장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각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한국 사회가 물질적 부(富)라는 토양을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쪽으로 가기 위해 어떤 시기에는 보수적인 방법론이 동원될 수도 있고, 다른 시기에는 진보적인 방법론이 동원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사안 사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의논하면 좀 더 차이가 분명해지고 또 어떤 면에서 같이 갈 수 있는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인재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를 보면 소위 보수든 진보든 모두 교육 고용 분배 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거든요. 이 부분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접근방식에서 차이가 난다는 겁니다. 따라서 구체적인 문제를 대할 때 시장주의적으로 접근해야 하느냐 아니면 좀 더 사회적 연대성을 강조해야 하느냐 하는 측면에서 논의를 풀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까 김호기 교수께서 보수와 진보를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누셨는데, 저는 스스로를 시장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친(親)시장이라는 것은 사실 한국 사회에서 상당히 급진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요. 친시장은 친기업이 아니고 친국가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친시장은 결코 수구가 될 수 없고, 반대로 진보진영에서 하는 얘기와도 상당히 거리를 둡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슈 중심으로 얘기를 나눠야 보수와 진보가 사회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대해 보다 뚜렷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형기 : 그전에 정리하고 갈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친(親)북한이냐 반(反)북한이냐, 혹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와 같은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이분법적인 대립구도를 이제 극복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진보 내에도 반북한 진보가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 보장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진보그룹이지요. 대한민국의 정통성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국은 우파만 한 것이 아니잖아요.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이나 기업가만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국민이 참여하여 만들었지요. 이러한 점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 문제를 기준으로 삼아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논의할 것은 산업화 세력이 얼마나 인권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소홀히 여겼는지, 또 민주화 세력은 중산층을 형성한 한국의 경제성장과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역할을 제대로 인정했는지와 같은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대화를 통해 보수와 진보가 역사적인 화해를 하고 미래를 보는 것이 오늘 토론의 목적이지요. 그런 점에서 일단은 낡은 대립구도를 청산한 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시장이냐 국가냐,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볼 것이냐 등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이슈를 바탕으로 논의하면 좋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의미

    경제정책과 사회통합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시각

    강대인

    강대인 : 보수와 진보가 한국 사회에서 혼란스럽게 된 단서는 6·25전쟁이라고 하는 뼈아픈 민족적 비극과 남북한의 대결 구도에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보수 진보에 덧씌워진 이념이라는 것을 떼어내고 양쪽이 주장하는 가치 문제만을 갖고 얘기하면 분명히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보수적 가치나 진보적 가치가 더 나은 삶이나 우리 국가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면 문제를 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명희 : 보수 세력 입장에서 봤을 때 진보 혹은 좌파 세력 내에는 여전히 반(反)대한민국 세력이 있습니다. 좌파의 주류들도 분명히 그것을 구별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대한민국의 체제 속에서 살아가려고 한다면 대한민국을 긍정하고 그 정통성 위에서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호기 : 저는 사회학 연구자로서 우리 사회에 ‘뉴라이트’가 기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진보 세력에게 북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강제한 것이지요. 그들의 활동을 통해 진보 세력 내에서 종북주의(從北主義)를 둘러싼 논란이 생겼고, 이후 북한 문제에 대한 명확한 차이가 나타나게 됐습니다. 저 역시 종북주의에 대해 누차에 걸쳐 비판했고요. 문제는 이렇게 정리된 후에도 여전히 뉴라이트 세력들이 이념논쟁으로부터 뭔가 정치적인 이익을 얻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그 패러다임 안에서 진보 세력을 과도하게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인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닌지, 개인적으로 의구심을 갖고 있어요. 이념 문제에 관해서는 시민적 상식의 수준을 따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근의 사회 분위기를 보면, 시민들은 보수 정치세력이나 보수 지식인들에게 ‘더 이상 북풍(北風)은 없다’는 분명한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시민적 상식을 안다면, 보수 세력은 북풍을 통해 더 이상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겁니다. 진보 세력에게 주는 경고도 있습니다. ‘더 이상 도덕적 우월성은 없다’는 것이지요. 한동안 민주화세력은 도덕적 우월성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었지만,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통해 시민들은 민주화 세력에게 더 이상 도덕적 우위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어요. 이런 시민들의 관점에서 이념 논란을 정리해야 합니다.

    김형기 : 아까 이명희 교수가 진보에게 반대한민국 세력, 친북한 세력과 연계돼 있는 부분을 확실히 정리하라고 요구하셨지요. 우리의 요구는 그쪽 역시 수구와 단절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담론이 있어야 진정한 뉴라이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묘하게 수구와 결합한 뉴라이트는 라이트(우파) 자체를 망칠 수 있고 대한민국 장래에 굉장히 부정적인 효과를 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잘못된 이념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대화 초반에 그런 점에 대해 합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정책과 사회통합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시각

    토론에 참여한 진보 진영 학자들. 왼쪽부터 김형기, 이태수, 김호기, 김영정 교수.

    전상인 :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저희들은 소위 뉴라이트 대표자격으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뉴라이트의 공과를 따지는 일은 적절한 주제가 아닙니다.

    김영정 : 진보 쪽 얘기하면서 북한 문제와 연관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수학자 가운데 양자를 자꾸 연관시켜서 진보학자들은 뭔가 이상한 생각을 할 것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거예요.

    이태수 : 거듭 말씀드리지만, 학문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북한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한 이슈가 아닙니다. 북한이 베일에 가려 있었을 때는 그쪽이 사회주의체제라는 점에서 평등과 공동체의 가치가 구현되는 것으로 막연히 생각한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실체가 드러나고, 사회주의적인 이념이 전혀 투영되지 않는, 철저하게 독재적이고 반인본주의적인 국가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대부분의 학자 내지는 좌파로 분류되는 사람들 내에서 이 문제는 끝이 났어요. 그래서 그 문제가 더 이상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아까 강석훈 교수가 제안하신 대로 제가 꿈꾸는 사회에 대해 얘기한다면, 저 역시 ‘물질적 부를 토대로 각 개인의 가치가 실현되는 사회’라는 지향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실현시키면서 사는 복된 사회’도 꿈꿉니다. 그것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시장과 개인과 자유를 중시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공동체와 평등을 더 중시하는 것이 옳은지를 각론에서 따져야겠지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데, 아까 김호기 교수께서 말씀 도중 민주화세력이 곧 진보세력인 것처럼 언급하신 부분입니다. 사실 ‘민주화세력=좌파=진보’는 아니지요. 민주화운동은 반독재의 문제이므로 개념 구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강대인 : 그동안 보수적 가치나 진보적 가치라고 하는 것이 현실 정치 세력들과 결합되면서 많은 오해를 낳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진보진영에서는 소위 북한 문제에 분명하게 선을 긋고, 보수진영에서는 수구와 단절하는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그럼 이제 여러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첫째로 논의할 것은 세계화 문제입니다.

    세계화, 위기인가 기회인가

    경제정책과 사회통합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시각

    토론에 참여한 보수진영 학자들. 왼쪽부터 이인재, 이명희, 강석훈, 전상인 교수.

    강석훈: 세계화를 이야기하려면 일단 이 문제가 한국 사회나 한국 경제에서 선택변수인지 아니면 이미 주어진 변수인지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세계화가 한국이 거부할 수 없는, 일종의 주어진 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세계화 자체에 대해 논의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세계화의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역기능을 최소화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고 봅니다. 경제학 이론을 놓고 봤을 때, 세계화는 한 국가의 복리(welfare)를 증가시킬 가능성을 제시할 뿐, 그 자체가 복리를 증가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세계화가 가져올 수 있는 국가 복리의 증가분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이용할 것이냐, 세계화가 진전될 때 세계화의 수혜계층으로부터 피해계층으로 이익(benefit)이 전달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토론하고 싶은 것은 세계화를 잘 이용하기 위해 한국 사회가 갖춰야 할 제도와 규범의 문제입니다.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세계화는 1997년 외환위기에서 보듯 오히려 재앙(disaster)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세계화를 받아들일 때 조금이나마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논의해보면 좋겠습니다. 저는 경제적인 면의 세계화는 급진적으로(radical) 진행하되, 사회나 문화와 연계된 부분은 좀 더 관리가능한(manageable) 수준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강대인 : 강석훈 교수는 세계화가 필연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진보 쪽 학자들도 그 부분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김호기 : 저도 세계화가 한국 경제의 상수(常數)라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상 개방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세계화는 기회인 동시에 위기입니다. 기회의 측면을 먼저 말씀드리면,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이에 맞춰 산업구조를 재편할 경우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문제는 이런 기회의 반대편에 사회 양극화라는 위기가 있다는 점이지요.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한 나라 안에서의 사회 양극화뿐 아니라 전 지구적인 차원의 양극화도 빨라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등 여러 나라는 탈규제,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국가 역할 축소 등의 전략을 쓰고 있지요. 그러나 지구에는 프랑스, 덴마크, 네덜란드와 스칸디나비아처럼 세계화가 강제하는 경쟁력 강화와 더불어 개별 국가가 유지해야 할 공공성과 형평성을 강조하는 대응 모델도 있습니다. 미세하게 들여다보면 조정시장경제 국가들의 세계화 전략이 좀 다르다는 말이지요. 이런 국가들은 지난해 9월 미국발(發) 금융위기에서 비교적 충격을 적게 받았습니다. 반면 같은 유럽에서도 독일처럼 완전히 미국식 모델을 받아들인 국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이런 점에서 우리는 후자 국가들의 신자유주의 대응 전략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여전히 민영화나 노동시장의 유연화 같은, 구식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4대강 정비’로 대표되는 토건국가적 계획까지 고수하고 있지요. 저는 이명박 정부에 부여된 경제적 과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의 확충과 산업구조 재편을 통한 양극화 해소에 있다고 보는데, 현재의 경제 정책으로는 이 부분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진보 진영도 비판받을 점이 있습니다. 급진진보의 경우 여전히 세계화를 거부하고 있는데, 이것은 실현 불가능한 낭만주의적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온건진보의 경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사례에서 보듯,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요. 그들은 성장 및 분배의 이중의 선순환 구조를 추구했습니다. 선한 측면에서 보자면 적극적인 대외개방을 통해 사회복지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두 정부의 기본구상이었던 것으로 보여요. 문제는 현실로 나타난 것이 사회 양극화의 강화였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및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진보 보수 모두 세계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인재 : 세계화가 기회인 동시에 위기인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위기는 소득분배 악화로 나타나지요. 우리나라의 통계를 보면 모든 소득분배지수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습니다. 지니계수(소득이 어느 정도 균등하게 분배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의 경우 외환위기 전에 0.27 이었던 것이 이듬해 0.32까지 치솟았습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급상승입니다. 상대적 빈곤율, 그러니까 중위소득 50% 미만이 전체 국민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5% 정도 증가했고요. 세계화가 진행되고 경쟁이 심화되면 소득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요. 미국에서는 같은 대졸자 그룹 안에서도 소득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그룹 내 격차가 벌어지는 동시에 그룹 간 격차도 벌어지고 있어 굉장히 심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사회보험 시스템의 전면 개편이라고 봅니다. 세계화 이후 과거와 전혀 다른 형태의 위기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이를 관리할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표상으로는 오히려 양극화가 심화되고 소득분배지수가 악화됐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보험제도와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경제정책과 사회통합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시각

    이태수

    이태수 : 저 역시 세계화가 이미 주어진 것이고, 우리에게 기회인 동시에 위기라는 부분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세계화의 본질과 본성을 바라보는 데 있어 진보와 보수 사이에 입장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세계화는 사조적으로 신자유주의이고, 경제적으로는 초국적 자본의 이해가 관철되는 것이며, 정치적으로는 미국 패권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위기의 측면이 훨씬 강하고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는 노무현 정부가 세계화를 기회 쪽으로만 본 점이 안타깝습니다. 세계화만 하면 미국과 끝장 승부를 봐서 결국 이길 수 있고 거기서 엄청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봤는데, 어떻게 보면 그런 판단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것이지요. 세계화는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거기서 야기되는 위기의 양상에 주목하면서 기회로서의 가능성보다는 위기의 가능성에 더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전상인 : 세계화의 위기적 측면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략적인 세계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보수 진보 양쪽 모두 동의할 거라고 봅니다. 다만 이 교수 말씀 가운데 세계화가 미국 패권주의의 발현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미국 패권주의에 의한 것이라면 앞일을 예측할 수 있고 대비도 쉬울 텐데, 지금은 미국조차 고삐를 놓친 상태로 보이거든요. 저는 우리 모두가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세계화의 게임’안에 들어가게 된다는 점이 이 위기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형기 : 진보 쪽에서도 세계화를 미 제국주의가 이끌고 있다고 보는 건 아닙니다. 다만 세계화의 주체가 다국적기업이고, 그 기업들의 본사가 주로 미국에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일단 그런 힘으로 출발했다고 보는 거지요. 지금 진보의 관심사는 세계화가 주어진 조건이라고 할 때, 그 안에서 어떻게 사회통합을 강화할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위험관리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아까 강석훈 교수는 경제적 세계화를 그냥 두고 사회문화 쪽은 관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위험관리 측면에서 볼 때 오히려 관리해야 하는 부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