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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내기 시인 최영미가 재발견한 서울 이야기 ②

오래된 거리의 냄새를 다시 맡으려, 나는 서울에 왔다

  • 최영미│ ymchoi30@hotmail.com│

오래된 거리의 냄새를 다시 맡으려, 나는 서울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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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대한 꿈을 키워준 지식창고에서, 사춘기의 내가 가장 즐겨가던 공공장소에 내 사진과 이름이 걸리고 처음 독자들과 만날 때의 감회를 나는 기억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뒤에 나는 책의 소중함을 잊었고, 1990년대 중반에 서울에서 일산으로 이사하며 결정적으로 나의 단골책방에서 멀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종로에 내렸는데, 서점이 보이지 않았다. 대형서점에 밀려 종로서적이 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간의 죄의식을 느꼈다. 성인이 된 뒤로 나부터 거기서 책을 사보지 않았으니, 할 말이 없다. 서점은 사라졌지만, 빵집인 고려당은 제자리에 있는 게 희한하다. 빵 냄새와 책 냄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던 냄새들. 잊고 지냈던 아주 오래된 거리의 냄새를 다시 맡으려, 나는 서울에 왔다.

국제도시에 왔으니 국제적으로 놀아보자

국제도시에 왔는데, 국제적으로 놀아야지. 세계시민답게 당장 21세기의 첨단통신 서비스를 신청하려다가도 새로 무얼 설치하려 사람을 부르고 절차를 밟는 일이 귀찮았다. CNN도 인터넷도 없어 갑갑하지만, 내 집에 낯선 남자를 들이기가 싫어 하루 이틀 설치를 미루며 한 달을 버티었다. 통신비도 아끼고, 이사를 즈음해 혹사당한 손목을 이참에 쉬게 하고 싶었다. 집에서 걸어가는 거리에 동사무소가 있는데 매달 비싼 요금을 지불할 필요가 있을까. 평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누구든 사용 가능한 고속 인터넷이 깔린 컴퓨터, 뿐만 아니라 팩스를 비롯해 여러 가지 기능을 겸비한 복합인쇄기도 비치되어 있으니, 동사무소에서 ‘주민센터’로 이름이 격상될 만하다. 이래서 서울이 좋은 거구나. e메일을 확인하려 하루건너,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우체국과 주민센터를 드나들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한 모니터는 큼지막하고, 이용자가 적어 글자판도 닳지 않았다. 여러 손이 닿는 물건이니 위생을 고려해 흰 면장갑을 끼고 키보드를 치는 게 귀찮아질 무렵, 갑자기 원고청탁이 몰렸다. 결국 3년 약정의 계약서에, 무슨 노비문서처럼 내 번호와 이름을 같은 종이에 여러 번 반복해 적으며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회의도 들었다. 인터넷을 설치하면서 내 손과 발이 바빠졌다. 일주일에 두 번에서 하루에 두 번으로, e메일을 확인하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주기가 빨라지면서 생활의 속도가 배가되었다. 따지고 보면 일주일에 한 번 접속하든, 하루에 두 번 접속하든 내가 처리해야 할 업무의 양은 똑같다! 그런데 예의에 어긋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그때그때 답장하느라 시간만 뺏긴다. 경우에 따라 조금 기다리면 저절로 없어질 일도 약속 잡고 다시 취소하느라 부산을 떠니. 서울에서의 시간은 춘천보다 빠르고 비싸다. 어쩌다 내게 배달된 편지를 천천히 열어보던 옛날의 여유가 어느새 그립다.

메일주소가 하나라면 훨씬 한가할 텐데. 나는 e메일 주소가 두 개다. 내가 인터넷을 배우던 초기에 사용하던 계정 외에 새로 메일주소를 만들며,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효율적인 일 처리를 위해 두 개의 주소를 확실하게 구분할 작정이었다. 하나는 주로 비즈니스용으로, 다른 하나는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라고 후배는 내게 충고했다. 그러나 새 메일주소를 사용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나의 야심 찬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으니, 나도 모르게 내가 새 주소와 헌 주소를 혼동하여, 일로 접촉하는 사람에게도 사적인 주소를 알려주고 있음을 발견했다. 하여튼 나는 야무지지 못하다니까. 비즈니스 감각이 없다니까. 내 한계를 인식하고, 다음부터는 편하게 두 메일주소를 섞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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